김현두 스토리
나는 확신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어떤 독자보다도 학창 시절 공부는 내가 더 못했을 거라고.
(이걸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다니..)
나는 정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1년간 재수를 하고도 내 수능 성적표에는 '5'라는 숫자가 즐비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방대에 입학했다.
신입생 입학식날, 3월의 그 시원한 공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코를 거쳐 몸속으로 들어오는 그 시원한 공기는, 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아마 지금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 뭐지? 재수를 하고도 지방대에 입학했는데,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행복해하는 거야?'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이 글에 담겨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 큰 영감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김현두 이야기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친구들과 축구, 야구,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 중 내가 던지는 유머 한 마디에 친구들 모두가 빵 터질 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친구들과의 어울림, 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학생으로서의 부담감을 잊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넘어가니 친구들의 대화 주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축구에서 대학으로, 게임에서 수능으로.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모두의 관심사는 온전히 대학과 수능이 되었다. 이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농담이 돌기 시작했다. "너는 OO 대학교나 갈 놈", "지방대 가면 인생 망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들이 빵 터질 때, 나는 함께 웃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방대는 가지 말자.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자. 미친 듯이 노력해 보자!!'
그렇게 내 수능 성적표에 잭팟이 터졌다.
7.7.7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이러한 결심을 하고, 코피 나게 공부를 해서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방대나 전문대 들어가서 취업이라도 잘 준비해 봐"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했다. '지방대에는 절대 갈 수 없어'. 그렇게 나는 재수를 결심했고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했다. 누가 그랬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렇게 모두가 봄노래를 부르며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 때 나는 머리를 삭발하고 삭막한 분위기의 재수학원 복도를 걷게 되었다.
나는 머리를 삭발하면서 결심했다. '진짜 죽어보자. 진짜로 인생을 바꿔보자. 지방대에 가면 인생 패배자가 될 거야. 재수까지 한 이상, 무조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야 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제목에 스포가 되어있다.
지방대 입학, 그런데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도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두근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정신줄을 놔버린 걸까?
다시 재수를 시작한 시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재수를 시작하고 각종 인터넷 강의와 책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마침 등록한 재수학원이 '독학 재수학원'이라 기본적으로 인강을 통해 자율 학습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인강 강사진들의 사진을 볼 때, 모두가 이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내 강의를 들어~ 내가 너의 인생을 바꿔줄게'
축구 게임에서 각 포지션별로 베스트 선수를 뽑듯, 나도 각 과목별로 1타 강사분들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벌써 SKY 대학 정문이 내 눈앞으로 아른 거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강사분들이 분명히 쉽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으나, 내 머리로는 수업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초가 없는 상태로 수능 인강을 들으니 전부 외계어로 들릴 뿐이었다. 머리는 점점 멍해졌고 내 눈의 힘은 풀려갔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던 시간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국어? 영어? 모두 아니었다. 바로 인강 강사님들의 '동기부여 시간'.
1타 강사님들은 강의력도 뛰어나지만, 엄청난 동기부여 실력을 지녔다. 단 몇 마디로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정승제, 이지영, 이충권, 조남호 선생님이었다. 이중에서도 특히 이지영 선생님. 나중에 만나 뵙게 된다면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셨어요'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분이다.
이지영 선생님은 강의 도중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나는 꿈이 있어. 자본주의의 다음 이데올로기를 창시하는 거야." 나는 정말 놀랐다. 무엇에 놀랐을까? 꿈의 크기? 아니다.
바로 '눈빛'
강사님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의 그 눈빛. 나는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던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나도 저 눈빛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저런 눈빛으로 살 수 있을까? 수능 1등급을 받으면 될까? 명문대에 진학하면 될까?' 모두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발걸음은 서점을 향했다. 집 앞 초원문고라는 서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 앞에 배치되어 있었던 수능 문제집 코너를 지나 자기계발 코너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나는 수능 교재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를 펼쳐 들었다. 처음에는 뻔하고 추상적인 이야기에 한숨을 내뱉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운명적인 문장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꿔야 한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자기계발을 돕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다. 그리고 나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꿈을 찾는 과정을 거치니, 어느새 11월 수능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지방대 생이 되었다. 꿈을 가진.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지방대'가 아니었다. 바로 '꿈과 희망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렇게 나의 진짜 여정이 시작되었다. 수백 권의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미친 듯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를 SNS 콘텐츠로 발행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이 일어났다. 전국, 그리고 해외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 생겨난 것이다. 내가 뭐라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자책, 종이책, 상담, 교육 코스 등을 만들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것은 책을 출간하니 나의 모교(대학)에서 나를 강연자로 불러준 것이었다. 그렇게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로와 자기계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꿈이 생기고 그것에 몰입하니, 인생은 기적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28살이 되었을 때, 내 인생에서 정말 큰 이벤트를 맞이했다.
21살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학교 앞 라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지점에서 일하던 여자 알바생이 우리 지점을 도와주러 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첫눈에 반했다.
내가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랑 사귀면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지?'
신은 공평했다. 나는 수능에는 실패했지만 사랑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이상형과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28살,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아래와 같은 것들을 일찍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집 마련 하고 싶다
-아이는 언제?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결혼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그중에서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커리어'였다. 책임질 가정이 생겼기에 마냥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계속 자기계발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 도전해 큰 성과를 낼 것인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나의 분야에서 성공해, 나중에 더 떳떳하게 성장과 성공 같은 자기계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꿈이 생겼다.
나의 적성, 흥미, 의미 모든 것을 따져보았을 때 '커뮤니티'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기계발 콘텐츠를 발행하고 상품을 판매하면서, 결국 내가 행복을 느꼈던 포인트는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설계하고 기획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나는 5년 안으로 대한민국에서 '브랜드 커뮤니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냥 묵묵히 나의 꿈 길을 걸어보려 한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브런치에 저의 성장 과정을 공유하겠습니다. 저의 과정이, 독자분들께 큰 용기와 영감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