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배산임수(背山臨水)에 그림 같은 전망을 찾아 헤매는 경우를 자주 본다. 좋은 땅을 찾으려 하는 것이 잘 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그런 땅은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곳일수록 땅값도 비싸려니와, 기껏 어렵게 땅을 구했어도 혹시라도 난개발이 시작되면 그 어떠한 절경도 오래가리란 보장이 없다. 땅이란 상대적인 차이는 다소 있을지언정 애초부터 명당, 길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미망이 아닐까 싶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지었던 ‘어사재(於斯齋)’ 기문을 읽어보면 집 지으려는 이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할지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지니지 않은 사물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의식해 자세히 보고는 ‘이것’이라고 한다. ‘이것’이라는 것은 이미 얻어서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손에 넣은 것이 내 바람을 채우기에 부족하다면 만족시켜 줄만한 것을 바랄 수 없게 되어, 그것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천하의 공통된 근심거리다.” (정약용, 어사재기)
다산은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 모두 내 몸 가까이, 바로 ‘이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서 ‘이것’이라 함은 시간적으로는 미래가 아닌 ‘지금’을, 공간적으로는 다른 곳이 아닌 ‘여기’를 일컫는다. ‘저것’에 현혹되어 그 꿈을 좇느라 평생 동안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정작 ‘이것’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고 공허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앉아 있는 위치만큼 높은 곳도 없으며, 내 몸이 점유하고 있는 현재 위치가 곧 세상의 중심인 셈이다. 나를 중심으로 만물의 현상이 작동하고 일상의 삶이 전개되는 이곳, 지금 바로 여기가 “지극한 존귀함이 존재하는 곳”이요, “천하의 선이나 미가 모두 ‘이것’으로써 극치를 이루니 ‘이것’ 위에 다시는 더 할 것이 없다.”라고 주장할 만하지 않은가?
실제로 ‘여기’의 뜻을 되새겨봄직한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역관을 지낸 임희지라는 분의 집 이야기를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그 분은 물속에 뜬 달을 즐기려 하였으나 집터가 하도 작아 서까래 몇 안 되는 작은 집을 짓고 나니, 빈터라곤 반 이랑도 남지 않아 연못 만들기가 마땅치 않았다 한다. 게다가 울안에는 샘물조차 나지 않아 참으로 난감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처지에 굴하지 않고 사방 몇 자 안 되는 못을 기어이 만들어, 그 안에 쌀뜨물을 모아 부어 놓고 못 가에서 휘파람을 불며, “내가 수월(水月)이라 자호(自號)한 뜻을 저버리지 않으리니, 달이 어찌 물을 가려서 비추리오?”라고 노래하였다 한다. 아! 비록 맑고 깊은 물은 아니었겠으나 뿌옇고 탁한 물속에 뜬 우유 빛 달의 정취를 즐기려했던 집주인의 풍류를 어찌 괴벽이라고만 탓할 것인가? 보잘것없이 초라하기만 한 ‘이곳’이지만, 기꺼이 즐기며 누리고자 했던 ‘저기’의 꿈을 이루어내려 했던 ‘어사’의 정신이 살아있으니 말이다.
그런 눈, 그런 마음으로 풀 한 포기, 사소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그 집과 끈끈한 인연을 맺어주려 한다면, ‘이것’이 곧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풍경으로 바뀔 수 있다. 집주인 또한 그렇게 살아 숨쉬는 ‘이곳’의 정취와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주거의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집을 짓되 ‘이곳’에서 취할 바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드러내어, 때로는 추억 속에 담기도 하고 때로는 꿈속에서도 새록새록 즐길 수 있을만하다면,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지, 이상적인 낙원이 ‘저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이곳’만이 지닌 독특한 지리를 잘 살펴보면, ‘이곳’을 기쁨으로 노래할만한 것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저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향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이것’만의 진정한 가치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어사(於斯)’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비로소 집다운 집을 얻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다. ‘어사(於斯)’,어사, 어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