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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Mar 02. 2021

장식에 대하여 (3)

껍데기의 허망함이여!

                                   

졸작, 손때 묻은 장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이론 장판 위에 엎드려 누워

나이론 장판 위의 화려한 꽃을 본다

아침으로 저녁으로 걸레질을 해봐도

보이는 것은 다만 꽃무늬

얼룩덜룩한 꽃무늬

지루한 올 여름의 이 장마 통에

구석구석 습기 찬 얼룩은 어디 있는가

썩어가는 곰팡이는 어디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러나 모두 다

가려져 있구나

가려져서 모두 다 보이지 않는구나

꽃이여 꽃이여

나이론 장판 위의 목단 꽃이여

누기와 곰팡이를 겉으로만 가리려는 목단 꽃이여

아침으로 저녁으로 빗자루질을 해봐도

보이는 것은 다만 꽃무늬뿐이로구나

울긋불굿한 꽃무늬뿐이로구나

(김명수, ‘나이론 장판’)


김명수의 시 ‘나이론 장판’을 읽다보면 가려진 장판 속과 겉의 적나라한 모습을 애써 외면한 채, 그 위에 퍼질러져 잠만 잘 잤던 나 역시 한 떨기 목단 꽃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사느라 무심했을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목쉰 항변이 뒤범벅되어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어디 목단 꽃, 나이론 장판뿐이겠는가?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 빈껍데기가 더 요란하지 않은가? 바야흐로 내용보다 껍질이 대접받고, 실속보다 이름값을 소중히 여기는 세태가 만연해 있는 듯하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그맨 ‘럭셔리 강’을 아시는지? 연변 출신 따발총 변사에서 일약 자본주의 성공의 화신 명품족으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우리 모두를 배꼽 잡게 했던 주인공.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숨도 안 쉬고 내리 꿸만한 유려한 입담은 가히 입신의 경지에 오른 듯, 그의 내공은 오리주둥이처럼 뾰족하게 내어 밀은 세모입술에 온 통 모아져 있음에 틀림없었다. 헐렁한 몸매와 빼도롬한 얼굴로, 발밑부터 머리 끝 까지 명품들을 하나하나 타령조로 으스대며 꼴값 떠는 모습만으로도, 럭셔리 강의 캐릭터는 겉멋에 몰두해 있는 세태를 보기 좋게 비틀고 꼬집어보였다. 


그는 명품족이 갖추어야 할 외형적인 조건은 다 갖추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명품들은 더러 이름을 들어본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처음 들어 본 수상쩍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뇌리에 박힌 명성만으로도 탐욕의 오금이 저려오기에 충분한 브랜드들이다. 거기다 한국식 이름은 촌스러워 보였는지, 럭셔리 강으로 개명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니, 품새로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 보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럭셔리 강은 그럴 듯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명품을 지닌 이에게서 당연히 기대되는 품위와 언행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가 치장한 몸매를 보라! 체형에서 얼굴 모습에 이르기까지 결코 귀골이라 할 수 는 없는데 다, 특유의 입 구조 때문만으로도 실격이지 않은가! 그의 옷매무새나 옷감, 색깔의 선택에서부터 악세서리에 이르는 코디네이션의 부조화,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천박한 언어와 방정맞은 품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그를 귀족이라 할 수 없다. 럭셔리 강이라는 캐릭터는 겉과 속의 극단적인 부조화를 드러내어 희화화한 전형인 셈이다.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저게 껍데기가 판을 치는 우리네 현실이요 그가 바로 또 다른 내 모습이며 내 이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슬퍼진다. 빈껍데기 속에 감추어진 우리 속마음은 속절없는 울음을 감추며 살아갈 뿐이다. 때로 럭셔리라는 껍데기를 함부로 내려놓고 살수도 없는 삶의 굴레가 버겁기만 하다. 럭셔리 강의 덜렁대는 몸짓과 헐렁한 옷춤 사이로 시린 바람이 불고 있다. 껍데기의 허망함이여!  


서까래에 조각하고 기둥 벽을 단청하고 창문에 무늬 놓고 깁을 바르고 비단 장지에 깁 휘장으로 꾸민 집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고, 흙벽에 띠 풀 처마 새끼 돌쩌귀에 옹기창문 대자리 바닥에 거적문으로 꾸민 겨우 기거할 수 있는 집에서 스스로 본성을 기를 줄 아는 사람은 적다. 여우 가죽 토시에 범 가죽 저고리를 입고 기름진 고기를 삶아 먹고 회쳐 먹으며 울긋불긋 찬란한 옷에 눈이 부시고, 달콤하고 연한 음식이 살갗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나, 거친 털옷에 가죽 띠를 띠고 미숫가루와 명아주를 먹으며 거칠고 담박한 의식으로 겨우 굶주림과 추위를 막고 살면서 능히 분수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재주를 자랑하고 문구를 수식하고 문장을 빛내는 것은 녹사(祿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며, 말은 뜻이나 통하고 글은 뜻에 맞는 것을 취하며 성정(性情)은 솔직하고 몸과 낯빛을 바르게 가지는 자는 남에게 요구하는 것도 없고 타물에 거스르지도 않는 사람이다. 

[최한기(1803-1877), 기측체의(氣測體義),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그렇다. 최한기의 명남루수록을 보아도 외관 장식에 관한한 예나 지금이나 시속(時俗)의 부침(浮沈)이나 사람들의 태도와 성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대개는 화려한 장식을 선호하는 편이 있는가 하면 거칠고 담박한 채로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을 오히려 덕으로 여기는 편의 두 부류가 있다는  말이다. 이 둘은 장식이 왜 필요한가와 장식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는 가치관과 분수에 맞는가하는 문제이며 후자는 미학과 품격이 함께하는지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럭셔리 강의 경우는 단연코 최악의 사례라 할만하다. 껍데기에 휘둘리지 않고 장식을 제대로 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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