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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Mar 09. 2021

장식에 대하여 (4)

바로크 건축이 내게로 왔다



Asambrothers church, 1773,  Munchen, Germany



사람에게 장식이 소중하듯 집도 마찬가지다. 건축에서 장식이라는 오래 된 화두를 떠 올릴 때면,  나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을 거론하곤 한다. 혹자는 바로크의 과도한 장식을 예로 들어 이를 르네상스 말기의 병적인 현상처럼 치부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표현 욕구가 자유롭게 분출된 장식 요소를 새로운 공간, 새로운 가치체계를 드러낸 독자적인 성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건축의 체계에서 장식을 본질적인 측면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쪽으로 전개되는 논쟁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장식 자체에 대한 윤리적 가치판단 여부가 아니라, 어떠한 장식이든 선택된 양식의 문법에 얼마나 잘 통합되느냐 하는 시스템의 논리를 더욱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수많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전체적인 경향이나 흐름에 따라 평가하고 기술하는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한 때 나는 바로크 양식이라 불리는 성당 건축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성당들은 대부분 무엇이 건물을 지탱하는 뼈대이며 무엇이 덧붙인 장식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 뿐 아니라 내 눈을 압도하는 것은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각종 장식으로 범벅된 총체적인 현란함과 수다스러움, 그 자체였다. 푸르스름하거나 불그스름한 빛이 지배하는 공간 속에 너절하게 나열되어 있는 수많은 회화와 조각품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일이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는데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토록 많은 것인지, 저자거리처럼 그렇게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그런 성당 안에서 분심 들지 않고 차분하게 기도하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할 형편이었다.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모독하듯이 공간 곳곳에 속절없이 넘쳐나는 과도한 장식 앞에서 나는 매번 주체할 수 없는 허무와 슬픔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함량 미달의 바로크 성당들을 보면, 장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더더기요, 언제든 갈아치워도 될 법한 껍데기 요소로 전락해 있다. ‘이유 있는 장식’, ‘꼭 필요한 장식’, ‘빛나는 장식’의 기미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무늬만 바로크 양식일 뿐, 시스템에 전혀 통합되지 못한 장식을 보는 괴로움은 짙은 화장에 너저분한 악세사리를 늘어트린 늙은 여인을 보면서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연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스성당 외부 전경Wieskirche


하지만, 뮌헨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비스 성당(Wieskirche, 1746-1749)을 본 순간 나는 바로크, 로코코 양식 전체를 싸잡아 그 가치를 폄하하려 했던 생각이 얼마나 속 좁은 편견이었는지를 크게 깨달을 수 있었으니, 세상 넓은 줄 모르고 폭 넓은 검증조차 해보지도 않았던 죄가 컸던 것이다. 나이 30이 다 되어서 독일 뮌헨 지방의 건축가를 만나러 갔다가 그의 권유로 우연치 않게 이 성당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바로 ‘눈부신 장식’으로 보석같이 빛나던 바로크 성당이 있었으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바로크 양식에 대한 종래의 불신을 떨쳐버리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기꺼이 ‘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바로크 건축물을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수준이 미치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 가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던 것이다. 뚫어지게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건축의 가치요 의미이거늘, 마음이 저처럼 차갑게 돌아서 있었으니, 젊은이 눈에 쉽게 들어왔을 리 만무했을 터. 간혹 건축 역사책을 들춰보다가 비스 성당건축에 눈길이 머물었을 수도 있었으련만, 그조차 그리 되지 못했던 듯하다. 


비스 성당은 전형적인 농촌 주택과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덩치도 그리 크지 않아, 종탑부분을 제외하면 높이도 그리 위압적이지 않으며, 외관도 벽체 표면을 몇 개 부위로 나누어 모울딩으로 처리하여 바탕색을 다르게 칠하는 정도의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다만 성당 몸체를 이루는 볼륨은 길이나 폭과 높이 사이의 비례로 보아 길지도, 높지도, 넓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성당치고는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수수한 외관만으로는 낯선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발걸음을 재촉시킬만한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성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부 공간에 진입하면 사정은 완전히 반전이 되고 만다.  


백색의 고결한 치장 벽면위에 금빛, 옥빛, 감빛으로 이어지는 갖은 장식들의 경쾌하고 아름답던 실내 공간! 벽면과 기둥 사이 측면에 감추어진 채, 화사하게 빛나던 벽감 속의 고귀한 가구(독서대, 연단 등)들과 조각을 이루는 세부장식들! 그리고, 그 장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보여줄 만큼 충분한 양의 햇빛이 여과되도록 벽체 상단을 반복하여 재단해 놓은 커다란 창들! 무엇보다도 성당 내부에 환희로 넘쳐흐르던 그 빛의 바다! 물기를 툴툴 털어내며 튀어 오르는 생선처럼, 공간을 에워싸는 수많은 형태요소들은 저마다 


비스성당 내부전경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띄고 있었다. 고달픈 일상의 삶에 시달리거나 관성의 늪에 깊숙이 빠져버려 이제껏 미쳐 누려보지 못했었을 내 몸 속의 감각들을 일제히 일깨울만한 장치들이 곳곳에 범람하고 있었다. 공간은 다소 얼이 빠져있던 나를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곁에 다가와 “음! 자네 왔는가? 어깨와 목에 힘 좀 빼고 쌓였던 긴장도 풀 겸 어디 새털처럼 한 번 훨훨 날아보지 않으시겠나?” 은밀한 유혹(?)의 손길, 그 촉감을 느끼는 듯 했었다. 정령 이 빛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 짓눌렸던 내 영혼의 상처와 고통을 깨끗이 씻어 보리라는 욕구가 어찌 사치에 불과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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