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바퀴가 돌아도, 절대 포기할 순 없어요.

by 빈성
첫눈 오던 날, 집 앞


2024년 11월 27일, 첫눈 오던 날


올해의 첫눈이자 역대급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날, 나는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일본식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뜨끈한 라멘 국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길을 걷던 중, 횡단보도에서 빙판길을 오르지 못하고 애쓰는 휠체어 탄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얼어붙은 땅으로 인해 바퀴는 헛돌았고, 누가 봐도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사실, 그 길을 지나치는 사람은 나 포함 총 2명이었는데 한 분도 지극히 나이가 있어 보이셨기에 누가 봐도 내가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갈 때도, 휠체어 탄 할아버지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연신 바퀴를 굴려댔다.

"저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의 뒤로 가서 힘껏 휠체어를 밀었다. 그런데, 워낙 빙판길이라 성인 남자인 나조차도 발이 미끄러지고, 눈에 박힌 휠체어는 쉽게 움직이질 않았다. 몇 차례 시도 후 가까스로 그를 눈 속에서 끄집어내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할 일을 끝내고 다시 발걸음을 떼려는데 자꾸 노인이 눈에 밟혔다. 노인의 두 팔이 이미 너무나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노인은 근처 역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가던 방향과는 반대였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던 상황이니 그를 좀 더 도와주기로 했다.


눈길 위에서 비틀거리던 휠체어를 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그저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내가 특별히 착하거나 도덕적이라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지하철역까지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되었는데, 노인이 입을 열었다.

ㅡ여기서부터는 눈이 녹아 있어서 괜찮아요. 제가 끌고 갈 수 있어요.

ㅡ아, 안 힘드세요? 끝까지 가드릴 수 있는데..라는 말에도 연신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ㅡ그럼 조심히 가세요.

ㅡ저기.. 정말 감사해요! 고마워요, 고마워.


그는 한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체는 움직이지 못한 채, 고개만 까닥거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예의를 갖춘 모습으로 진심 어린 감사표시를 보여주셨다.


나는 그가 다시 힘차게 바퀴를 굴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멋지게 사시네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아이러니한 게 내가 다가가고 말을 거는 순간마저도 그는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도 자신이 끌 수 있는 공간에서는 정중히 도움을 거절했다. 그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2024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 올해도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나는 끊없는 성장을 위해 수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또 부딪쳤다.

그리고 지금은 약간의 번아웃(bornout)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휠체어를 끈 노인을 보며, 누군가는 말한다. "폭설인데, 안전하게 집에나 계시지, 왜 나오셨어요..."

그의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그는 헛바퀴가 돌아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살이가 누구에게나 참으로 어려운 시기라고 해요. 그럼에도 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요.
제 앞에 어떤 어려움들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또 부딪칠 거예요.
안전하게 집에만 있을 순 없잖아요. 주어진 환경에 순응 하지 않고, 제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어요.

꼭 이겨내고 싶어요.

휠체어를 끈 그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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