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어르신~ 계세요? 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도시락 드리려고요!”
3초, 10초, 30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문 너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져만 갔다.
단념을 하고 복도를 빠져나갈 찰나에,
저만치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철컥.
문은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열린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나는 헐레벌떡 달려갔다.
“아!, 어르신 계셨군요. 복지관에서 왔어요.”
어르신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말을 한다.
"그냥… 문 열고 들어오지 그랬어... 나는 문을 늘 열어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르신은 먼지 쌓인 차디찬 현관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문을 받치는 그의 손은 떨렸고,
순간, 나는 괜스레 죄송해졌다.
나는 노년기를 맞이해 본 적이 없기에, '문을 열기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멀게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문을 하나 여는 데도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참여한 것이지만, 대상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나의 행동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되려 상처만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봉사를 하는 그날은, 부득이한 기관의 사정으로 도시락이 아닌 '대체식'이 제공되었다.
3분 카레, 짜장, 햇반…
혹시나 마음 상하시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지. 이것도 어디야.”
불만이 없으신 건가. 아님 기대가 없으신 걸까.
그 짧은 말 한마디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점심시간은 지나만 가고, 전달해야 하는 음식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뭐든 지 빨리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며 자라온 나와,
천천히 살아가는 어르신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듯했다.
나는 문을 두드리고, 어르신은 문을 여는 그 몇 초 동안,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배웠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말,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 눈에는 미처 보이지 않는, 그의 하루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게를 품고 있을까.
난 지금껏 자라나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노인에게는 그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 문화 속에서 그들에게 상처만 주지 않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외되고, 버려지고,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의 미래가 이들과 다를 바 없다면, 나는 과연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르신들의 마지막 여정을 보는 나의 시선이,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사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