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노인

<2025년 초고령사회 한국 : 노인복지의 현실 >

by 빈성

“어머!, 아저씨 죄송해요."

버스 안에서 아이의 어머니가 내게 황급히 사과했다, 아이가 장난치다 내 신발 위로 과자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떨어뜨리고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의 아이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사실 나는 그 당시, 아저씨라고 하기엔 고작 23살 청년이었다. 그 “아저씨”라는 한 마디가 과자보다 더 충격이었달까. 아이의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았지만, 속으로는 ‘나라의 부름으로 군대를 다녀왔을 뿐인데, 나도 이제 아저씨구나..’라는 서글픈 생각이 맴돌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 두 분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그분들의 목소리는 아이가 떠들 때와 비슷한 데시벨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그들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순간, 나 역시 마음속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끝내 아랑곳하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버스 안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져만 갔다.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두 어르신이 내릴 때까지 지속되었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저렇게 예의가 없는 건지 얼굴이나 한번 보겠다는 삐딱한 심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한 어르신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이상한 장치는 뭐지? 그것은 다름 아닌 보청기였다. 나는 그제야 큰 목소리를 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고, 황급히 찡그린 얼굴을 감추었다.


아이들의 소란은 귀여움으로 받아들이면서, 어째서 노인의 행동은 다르게 느껴졌을까? 이 작은 차이는 어쩌면 우리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단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의 가능성을 본다. 서툰 행동도 "배워가는 과정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노인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가능성 대신, 그저 "민폐"라는 단어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선은 노인이 가진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보다는 그들을 소란스럽고 불편한 존재로 단정 짓게 만든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고령화 문제를 이야기하고,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알린다. 하지만 이런 숫자와 데이터가 현실 속 노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더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그들을 보지 않으려 한다. 마치 "늙음"이라는 단어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인은 단순히 나이 든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에게 참 많은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내가 배고팠을 때 나에게 떡을 나눠 주신 분도 이웃집 할머니였고, 수영장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할 때에도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바로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였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 나에게 어떠한 보상 없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그들은 바로 어르신들이었다.


버스 안에서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고, 어르신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나는 이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의 자리에 설 테니까.


실수하는 아이들을 보고 미소를 짓는 것처럼, 노인들에게도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불편했던 내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작은 변화. 이런 사소한 것들로 우리는 더 나은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만큼이나 노인들도 우리 사회의 일부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자주 떠올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