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서른 다섯 중증당뇨병, 내 삶은 더욱 행복해졌다

국도형의 [인생탐구영역] 첫 번째이야기- 관점과 태도의 중요성

공복혈당수치 300

당화혈색소 11%

서른 다섯, 중증당뇨병 진단.


2020년 1월 , 서울 노원에 위치한 을지대학병원 로비에서 나는 갈 곳을 잃은 채 얼어있었다.

아직도 한참 창창할 나이 '서른 다섯' 

새벽까지 술마시고 조기축구회를 나가도 쓰러지지 않고 풀타임을 뛸 수 있는 나이(물론 나는 제외..)에 중증 당뇨병 진단을 받고 말았다. 평소 동생들에게 '후회할 일은 시작도 하지 말라'고 조언해 오던 나인데 후회를 뛰어넘어 회한이 밀려왔다.  


매일 피우던 담배, 당연하게 들이켰던 술, 관대했던 100kg 넘는 내 몸무게, 삶의 일부분이었던 야식까지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였으리라.


일반사람의 공복혈당이 100이하인 것을 감안한다면 거의 3배가 넘는 당수치가 나온 것이었다. 담당의로 배정 된 내분비내과 교수님은 나를 호되게 야단쳤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간수치부터 다른 결과들을 종합했을 때 비만에 의한 당뇨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병을 만든 것이라고..


사실, 새해 벽두부터 병원에 찾아 간 이유는 당뇨 때문이 아니었다. 세 달 전부터 목에서 고음이 나오질 않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해도 밝고 했으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를 고쳐보고자 이비인후과를 찾아간 것이었다. 내시경 검사 같은 것을 했는데 후두 양쪽에 오돌토돌한 종양이 발견되었다.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자 악성종양(암)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조직검사 이후 종양제거술을 받게 되었다. 바로 이 조직검사의 사전 단계로써 심전도 검사를 포함해 다양한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조직검사는 전신마취 상태에서 진행) 이 검사에서 높은 간수치와 높은 당수치가 발견 된 것이었다. 


나는 평소 병원을 가지 않는다. 무료로 제공 받는 정기검진조차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운명론자이다보니 한 번 사는 인생 어차피 죽을 사람은 뭘하든 죽게 되어있다는 토테미즘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뭐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실제로 편한 부분도 있고.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무엇이든 잘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타고 난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너무 고달펐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해야했던 필연적 선택이었다.(이후의 글에서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계속 밝히겠다.)


하지만 왠일인지 내가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유독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마 전,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반신마비를 겪게 된 우리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큰 병에 걸릴 경우 내 개인의 불행을 떠나 주변인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다 주는지 너무나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끊어야 했다. 술, 담배, 음식(특히 밀가루..), 노래부르기, 늦게 자기 등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것들이 이제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날 부터 1월 22일 수술하는 날까지 약 2주동안 생전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겪게 되었다. 모든 일에 있어 무기력했고 누구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사춘기 소년 마냥 전부 다 귀찮고 싫다는 느낌이라고 해야될까. 


당뇨 진단 이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음식량 조절과 식단부터 바꾼 것이었다. 당뇨병이라고 고기를 아예 못 먹는다 하거나 그런것은 아니었기에 적당한 육식은 가능했으나 문제는 밀가루 음식이었다. 밀가루 음식을 먹지 못한 다는 것은 남들에게는 몰라도 나같은 뚱보들에게는 거의 사형선고 수준이다. 치킨, 떡볶이, 피자, 짜장면, 라면 맛있는 음식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하나 같이 밀가루가 들어간다. 여담이지만 세상이 얼마나 공평한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쾌락을 얻는 대신 꾸준히 건강을 잃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한 것은 하루 만보 걷기 였다. 우리 집은 도봉구 쌍문동이고 사무실은 강동구 암사동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엔 몇 번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차가 고장났을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차를 놓고 다닌 적이 없다. 이 때 나는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차를 타고 편히 다니는 대신 시간을 내서 따로 운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차를 놓고 불편해지는 대신 따로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인가... 물론, 가장 완벽한 정답은 차를 놓고 다니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던 내 마음상태에선 약간의 타협점은 필요했다. 결국 테스트용으로 차를 두고 집에서 창동역까지 걸어간 다음 지하철로 암사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네이버 지도를 켜보니 우리집에서 창동역까지의 거리는 1.7km, 현관까지부터 계산하면 2km정도 되었다. 중간에 환승을 하고 암사역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것을 계산하면 대략 왕복 하루 5km 정도는 걸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실제로 걸어보니 거리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대략 7~8천보를 걸을 수 있었다. 비록 1만보에는 못 미쳤지만 하루 1천보도 걷지 않았던 나에겐 출퇴근만으로도 충분히 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온 우울증 때문에 뭔가 적극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힘들긴 했지만 걷다보니 우울감이 좀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자 의식적으로 더 하게 된 것 같다.


세 번째로 한 것은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 근데 이 부분은 생각보다 쉬웠다. 어차피 수술 전후로 술먹는 것은 미친짓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고 다행히도 술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참을만했다. 담배 또한 절대 못 끊을 줄 알았던 것과는 달리 평소 주말에는 아이 때문에 입에도 대지 않아왔던 탓인지 크게 생각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네 번째로 한 것은 야식 끊고 일찍자기였다. 우울증 덕분에 야식은 생각나지 않았고 희안하게도 음식조절을 하며 안하던 걷기 운동량을 늘린 탓인지 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 왔다. 


그렇게 2주정도 지난 뒤 수술을 받게 되었고, 다행히도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더욱 큰 희소식은 종양은 암이 아니라 사마귀 같은 양성 종양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아직도 목이 완전히 다 낫질 않아 가끔 쇳소리가 나지만 수술 직후 목소리가 거의 안나왔던 수준에 비하면 양반이다. 다음날은 거의 수화로 대화를 해야했으니까.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거의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현재의 내 삶의 만족도는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최상' 이다. 살면서 이런 날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다. 


우선 음식량을 조절하면서부터 기분나쁜 식후 포만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전에는 밥만 먹으면 먹을 때 빼고 거의 다음 끼니때까지 배가 불러서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지금은 적당히 먹고 빠지니(?) 식사 이후의 일정은 보통 기분좋게 시작하게 된다. 회사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시작한 순간부터 허리사이즈가 줄고 숨쉬기가 편해졌다. 거기에 한달에 거의 7~80만원씩 나가던 기름 값이 10만원 이하로 줄어든 것은 덤이다. 꽉 껴서 못 입던 바지를 지금도 입고 글을 쓰고 있다. 술 담배를 끊고 나니 아침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마다 숙취와 타르가 몸에 축적 된 찝찝한 느낌으로 기상을 하고 하루를 맞이했는데 지금은 껀덕지가 없으니 아침마다 상쾌하게 일어난다. 부쩍 들어간 내 배를 쓰다듬으며 일어나면 기분도 좋아진다. 신기하게도 이런 날들이 이어지니 우울증도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말 그대로 신체와 정신 건강 다 좋아진 느낌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분명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중증 당뇨병에 걸렸고,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절제 된 삶을 살고 있다. 매일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실시간으로 당체크를 해가며 몸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 안에 놓여있지만 내 삶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행복하고 건강해졌다.


이번 일을 겪으며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한가지 깨달음을 완벽하게 얻게 되었다. 우리 삶 어떤 '사건'에 있어 좋고 나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의 문제이지 일어난 사건 자체가 내 삶에 생각보다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과 보름전만해도 나는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는 사람이었고, 당뇨병 진단을 받고 암 의심까지 받았을 땐 출근도 하기 싫은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겪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과 20여일만에 마치 다른 사람마냥 내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그 이유는 공교롭게도 같은이유, '당뇨병'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 

혹시 나와 같은 뜻하지 않았던 일들로 인해 걱정하고 고민하고 이로인해 불행해하고 있진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 일은 정말 불행한 일인가? 그 일이 해결되면 더 행복한 결말이 숨어있을 가능성은 없는가? 그로인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나는 '당뇨병'이라는 사건을 두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과적으로 당뇨병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만든 것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내가 내린 결론일 뿐이다. 내가 당뇨병환자란 사실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삶에 있어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과거 한 비행기 테러사건 당시, 출발 전 날  숙소에서 상한 빵을 먹고 배가 아파 비행기 시간을 놓쳐야 했던 어떤 이는 배탈 때문에 비행기 티켓을 날렸다며 화를내며 숙소로 돌아왔지만 이내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파됐다는 소식을 듣고 상한 빵 조각에 머리숙여 감사함을 표했다고 한다.   

  

이처럼 좋은 일이 있으면  그로인해 나쁜 일도 생겨나고 나쁜 일이 있으면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 삶이고 인생이다. 로또에 당첨 된 사람들 대부분이 쉽게 생겨난 돈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되 듯, 눈 앞에 보이는 어떠한 쾌락이 때로는 그것을 절제함으로 인해 얻게 될 수 있는 많은 장점들을 가리게 만든다. 그래서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주제를 잠시 바꿔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겠다.  브랜드 가치란 시간이 지나 잘 유지 될 수록 더욱 높아지는 속성을 지닌다. 10년 된 뼈다귀 해장국집보다 30년 된 뼈다귀 해장국집이 가격도 비싸고 양이 적지만 장사가 더 잘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려면 브랜드를 잘 만드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 버티려면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어난 사건에 집중하지 말고 그것을 해석하는 내 관점과 태도를 나에게 유리한 형태로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좋지 않은 일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불행한 순간을 더 행복하기 위해 겪었던 과정으로 바꿔낼 수 있다.


높은 개인브랜드 가치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길 원하는가? 평소 잘 버티는 연습을 하라. 잘 버티는 연습을 하기 위해선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만들어버리는 긍정적인 관점과 이에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연습을 하냐고?


 조언을 하자면 모든 일에 명과암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최대한 밝은면을 강조하여 받아들이길 바란다. 남들이 비현실적이고 낙관주의자라고 욕하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한다. 주변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당신처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십중팔구 당뇨병에 걸려서 우울증에 걸렸던 나처럼 사건을 좋게 해석하려는 태도 자체가 연습이 안 된 사람들이다. 모르는 사람 얘길 듣고 그것을 따라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남들은 이것을 멘탈관리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노하우이다. 끊임 없이, 될 때까지 의도적으로 밝은 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그래야 적어도 당뇨병 걸린 사실가지고 이 정도 떠들어 재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좋지 않은가? 미친놈 같아도 행복하면 장땡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