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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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강연과 유튜브 채널 '아는 변호사'로 알게 되었고, 최근 유퀴즈 출연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지훈 변호사의 책을 읽었다. 제목도 신박한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이다. 책 내용이 좋고 울림이 있어 두 번에 걸쳐 읽었고, 좋은 문장들은 필사까지 했다. 얼마 전 미혼자들로 구성된 후배들과의 모임에서도 이 책을 추천했을 정도이다.
혹시 제목만 보고 이혼을 장려하는 책인가 오해할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혼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한 번 정도 이혼을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 제목에 혹할 수밖에 없다. 미혼자일 경우에도 이왕이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바람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결혼을 하든 혼자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이라는 것. 어디까지나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결혼도 하는 것이고, 이혼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알고 그 방향으로 함께 갈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야 큰 어려움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제기한 문제를 심각하게 듣지 않거나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사람과는 결혼해서는 안된다. 또한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가령 나의 외모, 직업, 부모, 학력 등등)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행복한 부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갖고 불만을 늘어 놓는 사람과는 빨리 헤어져야 한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어디까지나 선택의 중심은 언제나 '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저자는 인생의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논어를 공부하고 있다. 단순히 논어에 담긴 가르침을 수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아류논어'로 삶의 깊이를 다지고 있다. 게다가 공부한 내용을 다시 세상과 나누기 위해 '아는 변호사'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의 책을 읽는 내내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우 그 질문 앞에서 공자가 아닌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칸트가 떠올랐다. 칸트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 주장했다. 가령 밤 12시에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도 신호를 지켜야 하는 것이 칸트가 내세우는 도덕적이며 인간이라면 추구해야 할 삶이다. 교통질서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약속이다. 그럼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만든 준칙이 필요하다. 아울러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이 세운 삶의 준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교사라면 관리자가 보든 말든, 성과급에 반영이 되든 말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꾸준히 실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일정한 시간에 따른 자기만의 루틴을 철저히 지켰던 사람이다. 시계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파악했다는 에피소드는 너무 유명하다. 칸트는 누가 시켜서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한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정한 삶의 준칙을 따르며 살았을 뿐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자신의 삶의 규칙을 찾지 않는다. 외부의 권력이 자신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나를 탐색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내 삶의 규칙을 정립해 나간다.
때로는 그 준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직장에서 독서 모임을 만든 적이 있다. 동료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잘 안되더라도 일단 시도하고 도전해 보자는 삶의 준칙을 정했다. 감사하게도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멤버들을 모을 수 있었고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내실 있게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그런데 아무리 비밀스럽게 모임을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직장 생활이 얼마나 편하면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냐며 모임을 주도했던 나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다고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나다운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다운 삶이라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타인의 미움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저자인 이지훈 변호사는 14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현재 이혼 6년 차에 접어들었다. 20대 때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고려대 법대 편입 시험, 사법고시, 중국 칭화대 석사 과정 국비 유학 시험까지 모두 합격하며 목표했던 바를 모두 이루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펌까지 입사한 그녀에게 세상이 준 다음 숙제는 결혼이었다. 20대 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을 했던 그녀는 결혼 이후의 30대에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30대가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직장과 가정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과 가정 모든 곳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가정에서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밑바닥이라는 자각을 했던 순간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녀는 퇴사와 이혼이라는 선택을 한다. 퇴사와 이혼은 그 어떤 누구도 인생에서 겪고 싶어 하지 않는 부정적인 경험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크나큰 실패이자 상실이기에 모두가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퇴사와 이혼은 여전히 흠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공부를 했을까.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는 자기만의 삶의 태도를 정립하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인생수업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이혼 후에 그녀가 어떻게 나를 바로 세우고 자유로운 삶을 향해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정도 나와 있다. 본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변호사로 활동하며 만난 다양한 사례들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과 함께 등장한다.
책에 등장하는 질문 중 나의 흥미를 끌었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정도면 결혼 상대자로 충분?
2. 성격이 안 맞아도 조건이 괜찮아요.
3. 돈은 없지만 둘 다 젊으니 어떻게든 되겠죠.
4.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면 하고 후회할래요.
5. 남들도 다 이러고 산다는데 내가 유별난 건가요?
6. 웬만하면 싸우지 않아요. 그래야 평화롭거든요.
7. 시집 때문에 못 살겠어요.
8.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았습니다.
9. 이혼 대신 졸혼을 하면 안 될까요?
10. 이혼 후의 삶이 두렵습니다.
책에서 던지는 이런 질문은 결국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통찰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저자는 이혼 후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논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혼' 역시 누구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실패 중 하나이다. 꼭 이혼이 아니더라도 100세 인생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회복탄력성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누구는 끝없는 수렁에 빠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 차이가 '수신', 즉 나를 바로 세우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내가 바로 선 사람은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
결국 인생이란 평생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욱 행복하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좋은 사람들을 내 곁에 두고자 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 꼭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원'이란 책에서도 나오지만 사람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정립하기 전에 가장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은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한 적이 없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모르는 사람은 늘 불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애인이 없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외로운 게 아니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몰라서 불안하고 외로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 학창 시절부터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깐 대학을 가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집을 샀다. 생각하는 힘을 잃은 사람은 결정조차 세상과 타인의 판단에 맡기려고 한다. 담임 교사에게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 달라는 고3 학생도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한 학생일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지 못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나 역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부모님부터 찾았다. 조금이라도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남 탓부터 했다. 지금도 골치 아픈 사안들 앞에서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습성이 생겨서 고민이다. 물론 배우자와 충분히 상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좋은 자세다. 하지만 내가 결정해야 할 판단까지 배우자에게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자세다. 결국 나답게 살아야 가장 이타적일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가족을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 책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추천한다. 누구와 함께할지 아직 결정을 하지 않은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최소한 어떤 사람을 피해야 하는지를 공부할 수 있다. 신중하게 이혼을 고민했고 현재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각자 인생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아무리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에 나 자신이 없다면 껍데기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종영을 한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 떠올랐다.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마당이 있는 넓은 저택에서 병원 원장 남편을 둔 주란(김태희)은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평생을 엄마와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멀어진 자기 부정이었다. 나를 바로 세우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된 엄마 역할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녀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온다. 허울뿐인 가정을 버리고 그 과정에서 벌이진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내려놓고 나서야 주란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드라마는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서 존재하던 두 여인이 주체적인 삶을 찾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책과 드라마를 통해 '한 번뿐인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한가?'라는 질문 위에 섰다. 그 답은 '나답게 사는 것', '나부터 바로 서는 것'에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이라도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세운 삶의 준칙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자 하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깨어야 새로운 세계에서 자유를 누리며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문장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상실이 없는 새로운 시작은 불가능합니다. 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