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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r 02. 2022

대리사회에서 대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리인간, 김민섭


대학이 어떻게 맥도날드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오늘 소개할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라는 책을 펴낸 이후 8년 넘게 몸을 담았던 대학이란 공간에서 스스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대학원생 및 시간 강사의 삶에 대해 쓴 적이 없었기에 그가 낸 책은 화제가 되었죠. 책으로 인해 그는 누구보다 요란하게 대학을 나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떠나게 만든 것은 기득권이 만든 시스템이 아니라 그와 같이 갑보다는 을에 가까웠던 동료였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죠. "지방시 쓴 사람은 너지? 어서 빨리 교수님들께 찾아가서 사과해!"


몇 년 전 출장 갔던 학교에서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습니다. 후배는 이틀 전에 아빠가 되었다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진심으로 후배를 축하해 주며 동시에 지금 출산 휴가를 쓰고 아내와 아이 곁을 지켜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요즘은 남자도 출산휴가를 2주까지 쓸 수 있습니다.)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본인이 속한 곳은 학기 중에 출산 휴가를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시스템의 학교가 있냐고 관리자와 대화를 해서 너의 권리를 찾으라고 흥분을 하자 오히려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꼭 관리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이 출산휴가를 쓰는 문화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도 조직을 위해서 그 권리를 쓰지 못했으니 너도 쓰지 말라는 식의 논리라고 할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라도 그곳에 있으면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출산 휴가를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조직이든 오랫동안 귀속되어 있으면 조직과 나를 동일시하게 됩니다. 성실하게 직장 생활에 임했을수록 나도 모르게 관리자의 마인드로 모두를 대하게 됩니다. 후배의 동료들 역시 자신을 학교라는 조직과 동일시했을 것입니다. 작가는 '지방시'라는 책을 내고 난 뒤에 내심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너도 참 힘들었겠다. 사실 나도 힘들었어." 그래서 자신의 책이 시발점이 되어 대학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조금씩 바뀌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공격을 그 시스템에 속한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청춘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겠다는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를 떠나보내고 남아 있던 동료들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시간강사, 대학원생에 대한 잘못된 처우를 만든 시스템의 문제이니깐요.


아직 저는 '지방시'라는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리사회'라는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시간강사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민섭 작가의 글을 접하기 전까지 한 번도 대학원생, 시간강사들의 생활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평생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 정도로 알고 있었죠. 한편 대학 시절 내내 저는 학과 사무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활동했습니다. 혹시라도 장학금을 못 받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죠.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을 경우 근로 장학금을 중복으로 수령할 수 없습니다. 복학 이후 한 번도 성적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저는 매 학기 근로장학생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근로장학생을 신청한 진짜 이유는 학과 조교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제가 만난 두 분의 조교선생님들은 저의 학과 선배이면서도 박사 과정 대학원생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군 입대 전에 만났던 S 조교 선생님은 마음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해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될 경우에는 꼭 밥이나 술을 사주셨고, 제가 군입대할 때도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으라고 무려 '5만 원'이나 용돈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막연하게 대학에서 조교로 일을 하면 쏠쏠하게 월급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시간강사, 대학원생의 실체를 알게 되었죠. 지금까지 시간강사가 그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을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대학에서 8년 동안 강의와 행정 업무로 노동을 했지만, 대학은 그에게 재직증명서 하나 발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은행에서 대출도 불가능했죠. 4대 보험도 보장해 주지 않았기에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아빠가 되자 어떻게든 4대 보험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투잡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늘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4대 보험이 이렇게 절실한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강사로서 일을 하며 그가 한 달에 벌어들인 수익은 고작 80만 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방학을 하면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이란 거대한 괴물은 학생과 교사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그들에게 열정페이만을 강요하고 있었죠.(제가 스무 살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 달 동안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어들인 수익과 같습니다. 주유 아르바이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보수가 턱없이 적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 시간 이후에 그는 맥도날드에서 탑차 일을 하며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 대신 글로벌 대기업인 맥도날드에서 그를 노동자로 인정해 주었죠. 그곳에서 그는 4대 보험을 적용받았으며, 명절 때 선물도 받았고,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유로 축의금까지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며 대학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공간이라는 그의 믿음에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대학에 머무르는 동안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스스로 주체의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했거든요. 하지만 대학은 그를 노동자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학에서의 자신을 '유령'으로 규정했습니다. 자신의 삶 가까이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부조리를 몸소 겪으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대리기사가 된 교수님


그는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머물던 대학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이 그에게 등을 돌렸겠지요. 직접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대한민국 조직 사회에서 얼마나 가혹하게 내부고발자를 다루는지는 영화나 소설과 같은 여러 서사들을 통해 접한 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문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대학에서 물러난 것이 그에게 작가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로 뛰어든 그는 책상에서 읽은 책의 지식을 거리의 노동을 통해 지혜로 환원할 수 있었죠. 그래서 '대리사회'와 같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는 '대리운전'을 선택했을까요? 물론 저도 지인들에게 지금 직장에서 잘리거나 학교가 망하면 택시, 대리, 배달, 택배와 같은 운수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 진담 반 농담으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진지하게 택배 하시는 분들의 업무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그들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고 있고요. 얼마나 업무를 주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고충이 있는지도 말이죠.) 그 역시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무래도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 때문에 대리운전을 선택했을까요?


그는 대학에서 벗어났지만 자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저녁 시간이 되면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것이죠. 직업 중에 대놓고 '대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대리운전'이 유일합니다. '대리'는 남을 대신해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죠. 심지어 회사에서는 '대리'라는 직책도 있습니다. 대리운전은 운전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행위와 차주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언행을 통제해야 합니다. 심지어 차주가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해 악취가 나더라도 그는 창문조차 열 수 없었습니다. 운전은 내가 하고 있지만,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이죠.


그는 대리기사를 하며 세 가지 통제를 경험합니다. 그 세 가지는 '행위, 말, 사유'입니다. 행동과 말을 통제 당하면 결국 사유도 통제당하게 되지요. 그 대목을 보며 사실 우리도 대리운전기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노동이라는 것이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파는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만든 틀이 아닌 조직이나 사회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직장에서 상사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네, 알겠습니다, 맞습니다."입니다. 이길 수도 없는 쓸데없는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웬만하면 그 세 단어를 이용해 상황을 모면해 왔죠. 그러다 보니 저 역시 오랜 세월을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살아왔음을 몇 년 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허울뿐인 소통 시스템 안에서 결정권자의 논리를 확인해 주는 수단으로만 존재해 왔죠. 아이러니하게도 몇 번 성급하게 저의 목소리를 냈다가 중국에 있는 국제 학교로 가게 되는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한 발자국 물러서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주체적인 자세로 지금껏 운전을 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차 밖에서 바라보니 뒷좌석에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진짜 차의 주인이 타고 있을 수도 있다고요.


스스로 한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을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77쪽




글쓰기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바를 찾아가자



이 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조직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제가 직장에서 맡고 있는 업무들은 누구나 쉽게 대체가 가능한 일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도라면 누구나 '나이스, 생활기록부, 대입전형, 학적, 정보공시' 등과 같은 학교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 일은 사유할 필요가 없어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하는 첫 번째 일은 매뉴얼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매뉴얼에도 없으면 나이스 콜센터, 에듀파인 콜센터, 또는 담당 장학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됩니다. 저 역시 거대한 교육 시스템을 대리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도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수업만큼은 제가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나다움'을 놓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에 제가 제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글을 쓸 때입니다. 사실 제 글을 글이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기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내가 경험했던 일, 고민했던 일, 누렸던 일 등을 인스타, 블로그 등에 기록을 하면서 제가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글을 읽고 누군가가 즐거워하고, 조금이라도 유익한 정보를 얻어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김민섭 작가 역시 글을 썼기 때문에 자신이 해 왔던 모든 일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대리기사의 삶에 대해서도 저는 모르고 살았겠지요. 왜냐하면 저는 차가 없거든요. 차를 소지했을 때도 술 약속이 있는 날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했습니다. (20년 넘게 술자리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한 번도 대리기사를 부른 적이 없으니 대구의 수많은 대리기사님들께 괜히 죄송하네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대리운전을 하면서 작가가 경험했던 갖가지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대리 기사님은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까에 대한 의문점도 해소했고요. 작가님의 경우 결국 아내분과 2인 1조가 되어 함께 대리기사 활동을 했죠. 육아를 두고 아내와 다투었던 저자가 함께 대리기사 일을 하며 부부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연도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선하고 반듯하게 보이는 김민섭 작가 역시 육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아내와 싸웠던 이야기를 보며 저의 부끄러웠던 과거도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만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강태공, 허생처럼 아내에게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떠넘기려고 했거든요. 지금도 내 삶을 살겠다는 명목으로 제가 해야할 일을 누군가에게 대리하려고 하는 것은 없는지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책의 추천사를 장강명 작가가 써 주었습니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주는 표현력이 뛰어난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가 이 책의 장점을 한 마디로 잘 요약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반성하게 하면서도 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한 문장을 존경한다.


'대리사회'라는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거대한 폭력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분노와 증오의 감정 대신 선량함이 담겨 있다는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김민섭 작가의 글이 지닌 힘이거든요. 그의 글을 읽고 제 자신을 되돌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은 또 한없이 따뜻해집니다. 사실 르포 형식의 책을 보면 워낙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아 책을 읽는 내내 제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민섭 작가의 르포 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외롭고 고된 대리기사의 일과를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만 작가 특유의 다감한 문체로 인해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많았습니다.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면서도 인간다움이라는 따스함을 잃지 않은 작가의 시선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스스로 다짐했던 바를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글로 작성함으로써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공헌하고 나 스스로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다는 효과도 있습니다. 우선 나의 욕망과 상식이 나의 것이 맞는지 늘 경계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으며 열심히 공부했고요, 취직을 하고 난 이후에는 누구보다 직장 상사의 말씀을 열심히 따르며 살아갔습니다. 30대에는 언론과 교육으로 주입이 된 자본주의 세상이 만든 거대한 룰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국가, 조직, 단체와 나를 동일시하며 나의 이웃과 동료들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를 하되 그 분노를 나와 같은 을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 시스템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만들고 꾸준히 사유를 해야 합니다.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살아야하는 당위성을 또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주체로서 대우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책에서는 대리기사를 '요정'으로 표현합니다. 대리기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요정들은 너무 많지요. 당장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을 때 거리가 깨끗한 이유는 누구 덕분일까요? 이른 새벽부터 거리를 청소해 주시고 쓰레기를 수거해 주신 요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요정이 아닙니다. 노동하는 인간입니다. 나의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낼 수 있는 것도, 매 끼니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 나의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대리사회'입니다. 현재 시스템 안에서 나의 일을 누군가에게 대리할 수밖에 없다면 그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품격은 나의 언행에서부터 나타난다는 점을 명심하며 나의 품격을 높이고 싶습니다. 각자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고 고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대리사회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린 대리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저의 삶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라는 의문점을 갖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유를 통한 실천을 통해 나와 닮은 누군가가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교수자가 강의실의 유일한 주체가 되어 말을 쏟아내는 순간 그 안의 학생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가 되어 버린다. 34쪽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35쪽


스스로 한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을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77쪽


순간의 감정으로 욱, 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타인의 수고를 농락하는 이들이 더 밉다. 양쪽에서 전화를 받아 누가누가 먼저 오나 경주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 거리를 내달려 온 이들을 취소 문자 하나로 돌려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일상의 '갑질'이다. 96쪽


나의 신체는 타인에게 귀속되고 아내 역시 그 길을 따라온다. 하지만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면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대리하면서 동시에 주체로서, 그러니까 '부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113쪽


학자를 꿈꾸는 한 인간을 위해서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내가, 남편이, 그리고 자식들이 동원된다. 137쪽


강태공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아내를 원망했다. 허생 역시 아내에게 7년 동안 홀로 물동이를 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내에게 자신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강요했다. 151쪽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을은 계속해서 동원되고 희생될 것이다. 183쪽


내가 아는 한 대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전근대적인 공간이다. 대학은 학생과 졸업생을 노동에 동원하면서도 그들을 숨은 노동자로 만든다. 말하자면 내부의 '대리인간'을 양산해 낸다. 나는 8년 넘는 시간 동안 대학에서 학생이자 노동자로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노동자로서의 감각을 느껴본 일이 없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가장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 199쪽


나는 두 달 전에 쓴 글의 원고료와 어제 한 대리운전의 품삯을 같은 날 지급받는다. 어느 편이 더 상식과 합리인지는 명확하다. 타인의 운전석이, 우리가 믿는 그 어느 합리적인 공간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을 주체로서 대우한다. 206쪽


아마도 곧 노래와 음식을 넘어 또 다른 대리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다시 열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리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개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노할 것이다. 다만 그 분노가 개인을 향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214쪽


지식과 노동을 계속 양손에 들고 교차방문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의외로 대단히 멋진 삶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246쪽


그저 경계에서 한 발 나아간 것뿐인데 마치 자신이 비판하던 시스템의 대리인이 된 것처럼 사유하고 말한다. 249쪽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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