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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r 05. 2022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빠의 겨울 방학 육아 일기


2020년 4월 말에 '매일 아침 써 봤니'라는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의 첫 글을 찾아 읽어 보니 신선하다. 첫 글부터 겁도 없이 1일 1포스팅을 선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슬럼프나 포기 없이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영천소년이란 닉네임과 나의 정체를 아는 몇몇 지인들은 나를 향해 '대단하다, 독하다' 등의 칭찬에 가까운 감탄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렇게 표현하는 그들에게 당신들도 주말부부였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아내와 장모님이 주중에 나 대신 아빠 역할을 해 주셨기 때문에 대구에서 나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역할을 대리했기에 주어진 자유였다.



2020년부터 총각 시절 때처럼 퇴근 이후의 모든 시간이 나의 자유 시간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20대 때의 나와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만약 내가 아빠가 되어 육아의 고충을 겪지 않았다면 나를 위한 시간의 소중함을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무한히 나에게 시간이 주어질 거라고 믿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삶 이상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아빠가 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본격적인 아빠의 삶이 시작되며 나의 시간을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아내와 다투었던 이유 역시 한정된 하루라는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나의 것을 더 차지하려고 발버둥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유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하루 중 온전히 쓸 수 있는 내 시간이 무척 적었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기꺼이 나의 시간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겨우 숨을 돌릴 시간이 날 때는 지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거나 의미 없이 휴대폰을 보며 소파에 누워 있었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되는 자유 시간을 어떻게 나를 위해 써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게 되었고, 평일에 조금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자 지금까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던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 나를 충만하게 하면서,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나의 욕망들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루틴이란 이름으로 독서, 글쓰기, 운동, 모임, 영어 공부 등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혼자서 주중에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관성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주중에 건실하게 쌓아둔 나의 루틴을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에도 실천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주말이나 방학 때와 같이 가족과 함께 하는 날들만큼은 잠시 나를 내려놓고 그들에게 집중하고자 했으나 내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할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번 겨울 방학은 조금 더 가볍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만 보 이상 걷기, 매일 영어 회화 한 챕터씩 외우기, 매경 신문 기사 5개 이상 읽고 스크랩하기, 감사일기 쓰기 등과 같은 루틴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1일 1포스팅도 잠시 접은 상태다. 1월 중간에 출근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만큼 새벽에 일어나 확보한 시간만으로 매일 완성된 글 한 편씩 발행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 대신 새벽 시간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지금 여기를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로서 나는 아이에게 주말에만 잠시 집에 들르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런 존재였다.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외투를 꺼내 입자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아빠, 지금 대구 가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아이 입장에서도 매번 아빠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감정 소모가 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빠와 정서적인 거리를 어느 정도 둘 필요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항상 일상을 함께 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에게는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태도를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이라도 아빠와 남편 역할을 충실히 해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주, 나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아내가 다른 지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나에게도 독박 육아의 찬스가 생긴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두 가지를 지키고자 다짐했다. 먼저 기분이 태도가 되도록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화가 나는 내 감정을 잘 관찰한 후에 그 화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멀리 두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몰입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앞으로 주어진 1주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에게 굳이 유치원 돌봄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아빠와 집이든 바깥이든 함께 놀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들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더니, 오전이나 오후 중 한 번은 유치원 돌봄에 참가해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밝혔다. (아이의 그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3시간이면 운동도 할 수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충분하다. 또한 학교 업무를 해야 할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다.)


사전에 아내로부터 아이 등원 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소리를 듣고 무척 긴장했었다. 하지만 내가 출근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다 보니 느긋하게 등원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를 꼭 유치원에 보낼 필요도 없기에 아이가 늦장을 부리면 굳이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했다. 덕분에 아이에게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아이에게 언제 등원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았다. 아이가 오전 9시에 등원하겠다고 하면 부랴부랴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고, 오후 1시에 등원하겠다고 하면 느긋하게 아침 식사 뒷정리를 하고 점심을 준비했다. 등원할 때는 아이에게 원하는 하원 시간을 물어보았고, 어떻게든 그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아이가 원해서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기에 등원할 때도 웃으면서 아이와 헤어질 수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유치원에 적응을 잘해 친구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무척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동시에 하원 후에 아이와 무엇을 하고 어떤 간식을 줄 지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설렜다.


한편 지난주부터 잠자기 전에 질문 놀이를 하고 있다. 돌아가면서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한다. 그 대상이 좋으면 "저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질문을 하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높이 들며 "저요"라고 대답을 하는 식이다. 우리 가족 모두 긍정적인 편이라 웬만하면 어떤 항목에도 "저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아이가 유일하게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질문이 있다. 바로 "박형준 좋아하는 사람?"이란 질문이다. 아들의 표정을 보면 장난기가 가득하다. 일부러 아빠를 놀리기 위해서 손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실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어젯밤에도 질문 놀이 게임을 했다. '여행, 딸기, 우주, 파스타, 목욕, 숫자, 비행기, 호텔, 바다' 등 많은 항목들이 나왔고, 우리 가족은 저마다 신나게 "저요!"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다가 "박형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질문을 아내가 했다. 당연히 평소대로라면 아들은 침묵을 지킬 것이고 나와 아내만 "저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아들은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폴짝 뛰면서 "저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부연 설명으로 "나 박형준 좋아해요, 이제 아빠가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아들에게 직접 좋아한다는 말을, 그것도 아빠가 아닌 인간 박형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의 만족도도 크게 올라갔다. 학기 중에는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오면 아이가 잠들기 직전까지 엄마만 찾아서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아빠인 내가 있어도 엄마에 대한 아들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주말 동안 육아에 대한 짐을 덜어주려고 해도 아이가 엄마 껌딱지이면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이제 아들은 아내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나에게 잘 다가오고 나와 잘 어울려 논다. 여전히 절대적인 존재감인 엄마를 넘볼 수는 없지만, 아들이 나를 따르고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행복하다. 요즘은 유튜브를 볼 때도 내 옆에 앉아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으며, 몸으로 놀 때는 엄청 신나한다. 당연히 아이가 나를 향해 쓰는 말도 곱고 예쁘다.


아빠에 대한 아이의 감정이 호의적으로 바뀐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첫 번째로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늘었다는 것에 있다. 일요일 밤마다 아빠가 떠나지 않고 다음 날 아침에도 함께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 듯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지 못했다. 몸은 아이 옆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아이와 노는 척을 하면서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신문기사를 보거나 이웃이 내 글에 달아주는 댓글에 신경이 가 있었다.


이제는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그에게 집중한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잠시 나의 시간을 내려놓는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허락을 받았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아무리 부모 자식의 관계라도 사랑 표현을 해야 아이가 마음을 연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시간을 너를 위해 기꺼이 쓰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너의 시간을 위해 나의 시간을 잠시 멈추겠다는 의지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나와 아들은 내일이 되는 순간 소멸되고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소중해졌다. 목마 태워달라고 하고, 엉덩이에 베이비로숀 발라 달라고 스스럼 없이 바지를 내리고, 아빠에게 안아 달라고 달려들 때 온몸을 쉽게 내맡기는 만 4살 꼬맹이인 현재 아들의 모습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시간을 멈추고 상대의 시간에 맞추는 것임을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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