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
흰머리 정수리를 둥글게 남기고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한 할머니가 군중들 앞에 앉아있다. 그는 65년 동안 남긴 자신의 영화와 예술에 관한 창작 생애를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2019」의 첫 장면으로부터 나는 구십을 넘긴 아녜스 바르다를 만났다. 말투와 표정에서 낙관적인 열정가의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1928년 벨기에서 출생한 그는 독일의 프랑스 점령 시기에 가족들을 따라 파리로 터전을 옮긴다. 사진 공부를 마친 후에는 1954년 첫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제작하게 된다. 그 시작으로 바르다는 프랑스 영화산업에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리며 평생 다양한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주변부적 인물 취급을 면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제작비 마련이었다. 더구나 탄탄한 시나리오와 상업적 성공을 이루려는 영화인들과는 달리 그가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쟁으로 얻어야 했던 힘겨운 분투가 있었다.
2019년 마지막 모습에서 바르다가 대중들에게 전한다.
“그래도 숱한 해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것이 있어요. 저한텐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영감 창작 공유죠.
영감이란, 왜 영화를 만들까? 어떤 동기, 어떤 생각, 어떤 상황, 어떤 우연이 욕구를 낳아 영화란 일을 하게 할까?
창작이란, 어떻게 만들까, 어떤 방법과 구성이 좋을까, 혼자 할까.... 창작이 실제 작업이죠.
세 번째는 공유입니다.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아닌 보여주는 거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공유의 실례죠. 이 세 가지가 절 이끌었어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요.
저한텐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집안일에 매여 있다는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제 자신을 집에 딱 붙여놓고 시작했죠.
그리고 새로운 차원의 탯줄을 상상했어요.
마침 집에 90미터 길이의 비상용 전선이 있었는데,
딱 그 정도의 공간 내에서만 <다게레오타입>을 촬영하기로 결정했어요.
전선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 거죠.
그 공간 내에서 제게 필요한 걸 모두 찾아내고,
그 이상은 절대 탐험에 나서지 않는 거예요.
이 아이디어가 저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줬죠. "
-아녜스의 말, <시네마 Cinema>204호 1975.12-
바르다는 배우 앙투안과의 사이에서 첫 딸을 임신하자 당시 그 사실을 알게 된 앙투안은 종적을 감춘다. 같은 해 만난 자크 드미가 바르다의 아이 양육을 돕게 된다. 둘은 훗날 영화인으로서 동지이자 평생의 동반자로 남는다. 14년 후 아들 마티외 드미가 태어난다.
영화 제작에 불태우던 감독 생활에서 다시 엄마로 돌아온 바르다는 어쩔 수 없는 제약으로 공백기를 겪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1972년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가 태어나 기뻤지만 나의 일에 제동이 걸린 것에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아이를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를 할 수 없다는 게 슬펐죠.’
그 현실을 딛고 넘어서고자 했던 작품이「다게레오타입」이다. 독일 방송국에서 영화 한 편을 제작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가사일과 어린 마티유 데미를 돌보느라 집에 갇혀있다시피 했던 바르다는 곰곰이 생각한다. 이런 제약들 속에서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지, 과연 내가 가진 창의성을 다시금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생각을 전환하기로 한다. 나와 같이 집과 육아에 숨 막혀하는 여성들에게 원하는 일을 발휘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리라 마음먹는다.
집을 떠날 수 없을 바에 필름에 담을 만한 그림을 집 근처 이웃들에게서 찾았다. 집에 있던 90미터짜리 전선을 끌고 나가 가게 주인들에게 전기를 제공하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카페와 빵집, 아코디언 가게, 양복점, 정육점, 식료품점 주인들을 만났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몸짓을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은 작품을 내놓는다.
여성 영화감독에게 주어진 여성의 조건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당면해야 할 문제였다. 바르다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성으로 겪어야 할 현실적 모순에 대해 입을 연다.
“사람들은 흔히 일하는 여자와 가정을 꾸리는 여자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말해요. 저 역시 일하는 여자인데 그중 특히 예술을 업으로 삼은 여자들을 두고 ‘자기만 아는 괴물, 자의식 과잉의 이기주의자’ 이런 식으로 부르며 가족에게 헌신하지 않는다고 프레임을 씌우죠. 그럴 때마다 저는 반문해요. 나는 다 원하는데?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아 기르는 한편 나의 예술 작업을 하며 커리어를 쌓고…, 왜 타인의 삶을 그렇게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미리 규정하죠?” -아녜스 바르다-
지금도 지구 절반의 여성들 중 엄마가 된 이들이 여전히 직면하는 문제다. 선택이 아닌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부대낌,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늘 닿아 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바르다의 작품세계는 여성의 몸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1962년에서 1972년 프랑스의 여성운동 물결 속에서 점진적인 변화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작품으로 녹여낸다. 직접 쓰고 연출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서는 임신과 낙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폴린과 수잔이 등장한다.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던 억압된 사회에서 두 여자는 적극적인 우정과 연대를 나눈다. 폴린의 입으로 들려준 노래는 바르다의 ‘보다 나은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강력한 선언이라는 걸 알았다. 화를 내며 투쟁하는 대신 유머와 통찰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
바르다의 작품에는 전 생애에 걸쳐 관통하는 주제들이 다양하다. 여성, 이웃, 거리의 사람들, 소수자들에게서 영감을 얻는 사람, 영화를 도구삼아 삶을 예술로 만드는 멋진 사람이다. 다시 구십의 아녜스 바르다의 얼굴을 떠올린다. 끊임없이 영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 살아낸 거대한 흔적들과 함께.
<참고자료>
-영화 및 다큐-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200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2018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2019
-도서-
「아녜스 바르다의 말」 마음산책 2020
김정희 (읽고 쓰고 그리는 사람)
엄마가 된 예술가들의 생애를 찾아 글을 씁니다.
가사와 육아와 꿈과 일 사이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