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작은 일기, 황정은

by 한시영

12월이 되면 꼭 황정은의 <작은일기>를 읽으려고 했다. 그래놓고 읽지 못했다. 바빴다기 보다는 외면했던 것 같다. 작년 12월 3일 이후 광장에서의 소설가의 기록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괴로운 시간이었으니까. 어느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솔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황정은 작가 좋아해?


좋아한다고 답하니 황정은 작가가 쓴 작은 일기를 읽었단다. 잘 보이는 데에 꽂아 두었더니 내가 아니라 정작 아이가 먼저 읽었다. 책이 어땠는지 물으니 재밌었다고. 계엄 이후 황정은 작가 마음이 어땠는지, 광장에 나갈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와있었다고. 글이 짤말짤막해서 읽기가 쉬웠다고. 엄마도 꼭 읽어보라고.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며 <작은 일기>를 챙겼다. 내 자신의 다짐이 아니라 아이의 행동이 다시금 나를 읽는 자리에 앉힌다.


12월 3일 계엄 선포라는 헤드라인 뉴스를 보았다. 몇 시간 뒤 여의도로 날아가는 헬기소리를 들었다. 계엄 해제안이 통과되고(통과 되기 까지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새벽 세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갔다. 출근한 이들 모두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무실 한 구석이든 탕비실이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어젯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 이후로 탄핵안 가결, 권한대행 탄핵, 내란 수괴 체포까지.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한 날들이었다. 일차 윤석열 체포가 이뤄지던 날 일곱시 출근인 나는 유튜브 생중계를 보며 지하철을 탔다. 열차 안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체포를 하러 가는 사람들, 체포를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까 무서웠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 부끄러웠다. 누군가가 다칠까봐 화가 났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사람.


회사 로비에 들어설 때까지 화면을 끄지 못하고 자리에 와서야 휴대폰 화면을 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며 나간 안국역에서는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의료협동조합, 마을, 학교 친구들. 광장에서 아는 이들을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웠다. 발을 동동 뛰며 손뼉을 쳤다. 안국역에서는 탄핵 구호만 울려퍼지지 않았다. 금번 계엄사태로 드러난 정치권의 민낯과 더불어 사회 대개혁의 의제가 외쳐졌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눈을 맞추며 윤수일의 아파트, 로제의 아파트, 질풍가도 같은 노래에 몸을 흔들며 신나게 뛰었다.


종종 아이들에게 전화가 와, 엄마 어디냐고 보고싶다는 전화를 받을 때는 아이들이 몹시 보고싶어졌다.


그리고 주말에 교회에 갈 때는 늘 날이 서고 긴장이 되었다. 연령대가 높은 사람이 많은 교회 구성 상 계엄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했다. 교회 식당에서 탄핵을 주도한 이재명 대표가 내란세력임을 주장하는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는 사람의 방송이 들려왔다. 교회의 어린 아이들을 예뻐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어른이었다. 그들과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현실을 새삼 느꼈다.


아이가 읽으라는 책을 읽고서 아침부터 말이 길어졌다. 우리 모두가 함께 겪은 읽을 이렇게 남겨준 일에 빚을 진 것만 같다. 그날의 국회의사당, 광화문, 남태령까지. 광장이 되었던 곳을 떠올린다. 올해 겨울은 지난 겨울과 같지 않을 것이다. 집에 오면 아이와 이 책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