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의 고통 응시

by 한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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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고통이라도 저급한 동기보다는 고귀한 동기에서견디기가 더 어렵다면(달걀 한 알을 얻기 위해 새벽 한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꼼짝 안 하고 서 있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고귀한 덕보다 저급한 덕이 어떤 면에서역경과유혹과 불행의 시련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나폴레옹의 군사들. 군사들의 사기를 유지 혹은 진작하기 위해 잔혹한 방식이 사용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낮은 쪽이 강하다는 법칙을 증명하는 한 가지 예이다. 중력은 그 법칙의 상징이다.


식량을 얻기 위하여 늘어선 줄. 같은 행동이라도 동기가 고귀할 때보다는 저급할 때가 더 쉽다. 저급한 동기에는 고귀한 동기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다.저급한 동기에 부여된 에너지를 어떻게 고귀한 동기로 옮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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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하는 자세. 반드시 나 자신 아닌 다른 것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은 암소가 발목에 찬 족쇄를 끌고 가다가 무릎이 꺾이고 마는 것과 같다. 그 경우 자기 안의 에너지를 풀어주기 위해 거친 힘을 동원하느라 오히려 에너지가 손실된다. 열역학적 의미에서의 상쇄. 위로부터가 아니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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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도 자기와 똑같이 고통 받기를 바라는 욕망. 사회가 불안정한 시기를 제외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원한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게 하는 한 가지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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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가혹한 상황이 인간을 저급하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감정들이 제공하는 에너지는 그 양이 제한되어 있기 떄문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야만 할 대, 에너지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저급한 감정들(두려움, 욕심, 혹은 기록을 세우거나 외적인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의 힘을 빌리게 된다.

도중에 뒤돌아 선 많은 경우가 그러한 한계로 설명된다.

선을 사랑해서 고통스러운 길로 들어섰지만 결국 한계에 이르러 타락하고 마는 사람들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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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우리에게 빚진 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줄 거라고 우리가 상상한 것이다. 그 빚을 탕감해줄 것.
사람들이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등리는 것은 신의 자기희생을 본받는 일이다.

나 역시 나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용서다.


- <중력과 은총> 중에서


시몬베유의 책을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베유의 수많은 책들 중 우선 두 권, <중력과 은총>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을 빌려왔다.


19세에 프랑스 철학 교수자격 국가시험에서 사르트르를 제친 수재이며 천재. 시몬베유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 천재성이 윤리적 삶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대부분 자기 안전 지대 안에서 사유하기 마련이지만, 베유는 자기 밖의 고통을 응시했고 그것을 위해 은총을 갈구했다. 34년의 짧은 생을 살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실제로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되고,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고 공장 노동의 후유증에 걸리고 결핵에 걸린다. 그 와중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음식 섭취를 줄이고 결국 영양실조로사망한다.


내가 지금 읽는 글들은 베유 사망 이후에 발간된 것들이다. 그저 일기로 끄적였던 글들을 그의 동료들이 모아 출간했다. 글을 출간하는 자체를 베유는 영혼을 파는 것이라 느꼈으니까. 글을 팔고 얻는 ‘명성’ 자체를 폭력으로 이해한 사람이기에 충분히 이해갈 법한 처사다. 혼자 보기 아까운 문장들이 많아 아침에 읽은 문장 몇 개를 공유해볼 예정. 세상이 시끄럽고 마음이 번잡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