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4권, 스러져가는 땅

토지 읽기 1부 4권

by 한시영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국민과 영토, 주권으로 이뤄진 어떤 집단 혹은 체제의 붕괴만이 아니다. 한 개인을 지탱해온 세계관, 인간사에 있어 분명 옳다고 믿었던 어떤 상식과 도리가 함께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하늘과 땅처럼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겼던 세상이 스러지는 과정, 토지 4권이 이 한 가운데에 서있다. 몰락한 양반이어도 양반이라는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김훈장의 육체적 쇠약은 비단 나이 듦에 따른 노화가 아니다. 자신과 동일시 해온 그 500년 종사의 몰락이 그의 정신적, 육체적 쇠락을 앞당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에 나라가 망했다며 분노를 표현하는 김훈장. 마을에서 ‘어르신’이라 불리는 그는 결국 가문의 대를 잇고자 데려온 양아들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너는 대가 끊기지 않기 위해, 쥐 죽은 듯 엎드려 있으라” 라고 말한다. 조준구에게 가 왜 나서지 않냐고 몰아붙인 것과는 참으로 모순되는 처사다. 그 모순과 이중성이 결국 그 자신을 무너뜨린다.


악은 악을 알아보는 동시에 기피한다는 진실이 이번 화를 관통한다. 서희의 집을 어떤 마음의 가책 없이 차지해버린 조준구. 그에게 붙어 기세등등 자신의 권세를 부린 삼수, 그들의 파트너십이 결국 끝이 났다.


상대가 자신에게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시작한 관계. 서로를 수단, 그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악의 한계. 악은 서로 상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결국 불신이라는 필연을 맞닥뜨린다. 삼수의 배신을 딛고 조준구의 배신이 삼수를 죽음에 처하게 한다. 두리와 삼월을 강간한 악행을 저질러 온 삼수이기에 그의 죽음이 안타깝진 않으나 못내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믿는대로 옳다 여긴 대로, 자기 안의 악을 따라 맘껏 행한 그는 또다른 악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는다.


이 나라의 땅을 터전 삼아 부쳐 먹던 이들이 떠나간다. 그들은 떠나는 것인가, 떠나게 되는 것인가. 이들이 살지 못하게 된 조선이라는 땅이 겪게 될 고초가 입을 벌린 맹수처럼 이 앞까지 성큼 왔다.


성경 속 선지자 예수는 여러 마을을 돌며 병자들을 고친다. 그 중엔 앉은뱅이도 장님도 귀신들린 자도 있다. 예수의 치료 사역 중에서 나는 귀신들린 자를 고치는 장면에서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며칠을 굶고 소리를 지르고 온몸을 피가 나게 긁던 이들이 “나가라” 라는 신의 아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속에 있던 보이지 않는 영들이 돼지무리에게로 간다. 그 돼지무리가 강가에 빠져 죽는다. 이렇듯 성경 속에서는 귀신들린 자가 많이 나오고 토지에서도 마찬가지다. 흉년 때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못해 정신이 나간 토지 속의 인물, ‘서서방’을 보며 성경에 기록된, 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귀신들린 자들이 떠올랐다.


약 2천년 전 먹지 못해 그저 ‘귀신들린’ 사람들로 불려졌던 이들이 이 한국에 150년 전에 이 땅에 있던 것이다. 로마의 통치 아래 나타난 예수라는 자,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십자가에 그를 매단 군중들. 그 군중들에게는 ‘예수’라는 선지자라도 있었지만 토지 속의 이들에겐 누가 있는가? 그들에겐 시류에 따라 나라를 팔아먹고, 세금을 쥐어짜내어 걷어들이는 아귀같은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책 속 인물인 서희와 봉순, 길상과 상현, 병수까지. 이들이 가진 젊음에 마음이 아프다. 세상사가 정확하게 인과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 노력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곳이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지>에 나타난 그 당시 구한말은 그저 양육강식의 힘에 의해 스러져가는, 모든 것이 붕괴되어가는 중에서도 힘의 옆에 붙어 떨어지는 콩고물들을 주워먹고, 부와 권력을 쌓아가는 이들이 살아남는 시간이다.


어떤 미래도 상상할 수 없는 무력한 젊음에 갇힌 이들의 처지에 나까지 무력해지는 것만 같다. 젊음을, 청년을 담지 못하는 땅에 결코 미래는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단순한 기우일 뿐일까.


칠성이가 살인죄로 처형되고 임이네와 재가한 용이마저 사라진 상황. 세 아이들과 임이네는 월선의 집으로 향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용이와 불륜 관계인 월선이. 월선의 집을 차지한 임이네를 보면 생존 자체가 이 여자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만 같다. 물론 생명체의 일차적 욕구는 당연 생존이겠지만,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임이네의 결정은 무서우리만큼 단호하고 정확하다. 자신과 아이들의 살 길을 정확하게 찾아나선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불편하겠지만, 임이네의 행동이 도리가 아니라고 그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칠성이가 죽고 마을을 떠난 임이네 아이들을 누가 먹였는지. 윤보와 조준구네 집을 마을 장정들과 턴 후 사라진 용이가 없는 집을 누가 지키는가. 산까지 올라가 사냥꾼에게 치마를 걷어 양식을 얻어내고, 비록 자신의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인 월선네로 찾아가 아이들에게 따스한 밥을 먹이는 것도 임이네다.


나라를 빼앗긴 이들이 나라 밖을 향해 나서는 시간. 매서운 바람과 스산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 사는 세상 속의 찬란함과 기이함이, 경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서희는 더이상 어른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내주었던 어린 아이가 아니다. 이제는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대한 값을 치뤄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의 선택은 어떤 희망을 혹은 불화를 가져올 것인가. 평산리를 떠나는 그들의 걸음이 지치고 무겁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작은 소망,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 생명에의 강렬한 염원을 본다.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을 잊은 바보같은 이들이 이 나라에 종지부를 찍었으나,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이 땅에서의 역사도 그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이어질 것이다. 이 나라는 언제나 약한 듯 보이나 질기고 질긴 이들에 의해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