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권을 읽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by 한시영





사람들이 죽는다. 먹을 게 없어 죽고 병이 돌아 죽는다. 흉년은 있는 자 없는 자를 가리며 왔지만 전염병은 그렇지 않다. 윤씨 부인과 봉순댁, 김서방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죽어나간다. 기대거나 비빌 곳 없는 이 땅의 민초들의 생은 말 그대로 한, 그 자체다.


아비는 살인죄로 사형, 어미는 목을 매달아 죽은 한복이. 무당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는 월선이. 흉년에 굶어죽고 제 때에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정신병을 앓는 서서방. 도처에 널려있는 한 많은 이들을 품어줄,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줄 이가 없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은 그렇게 인색해져간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선한 두만댁이어도, 아무리 마음 좋은 윤보 목수여도, 사람 좋은 용이어도, 당장 자기를 비롯해 자식들이 굶으면 보이는 게 없으니까. 오직 중요한 것은 당장 끼니를 잇는 것.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당장 자신의 배고픔이 채워지고 난 뒤의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살인자 평산의 아내 함안댁의 죽음, 그 장례를 치뤄준 이들이 있다. 역병이 돌아 병에 걸린 시체들 곁에 가는 것이 금기시된 때에도 병에 걸려 죽은 강청댁의 시신에 염을 하고 그 시신을 들고 나온 이들이 있다. 국가와 지도자들이 너무나도 쉽게 외면해버린, 어떤 도덕과 염치같은 질서. 위급한 순간에 그들이 가장 먼저 저버린 것들을 가장 낮은 곳의 이들이 지켜낸다. 이 땅은 어쩌면 그들에 의해 연명되어오고 질기게 이어온 것 아닐까.


전쟁이 터져 난리가 났을 때 다리를 끊고 남으로 홀로 도망간 지도자를 가진 나라, 적이 쳐들어왔을 때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임금을 가진 나라, 침략한 나라에게 홀가분하게 나라를 팔아버린 고관대작들이 판치는 나라에서. 받은 것도 쥐뿔 없는 이 나라의 백성들은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켰다.


야만과 굶주림과 흉년의 시대에 나는 어떤 이가 될 것인가.


나는 그 속에서 도덕과 신의와 누군가를 향한 우정을, 지킬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자신이 없다. 목숨과 관계 없는, 돈과 관계 없고, 내가 살아가는 것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가장 먼저 버릴 이가 나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나라가 필요하다. 염치가 있고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생각할 관료가 필요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앞으로 다가올 서희의 앞날이 아슬아슬하다. 이 아이의 미래가 국운과 맞닿아있을 거라는 이동진의 말. 결국 조선은 일본에게 완전히 지배되고 수탈되고 고통받는 것을 알기에 서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본의 수탈에 의해 발겨벗겨지는 이 국토는, 이 땅에서 차별을 당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길 이들의 삶을 닮아있다.


역사 앞에서 등잔불처럼 위태로운 개인의 삶. 하지만 끝없이 터를 닦고 자식을 생산하고 역사를 지속시켜온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악착같은지. 늘 임이네를 통해 묘사되는 그 잡초같은 생명력이 대단하기도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 생명력 조차 흉년과 전염병과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순간에 언제든 사그러들 수 있는 약한 등잔불 같은 것. 이것이 인생이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죽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해가 뜨고 달이 뜨듯 세상은 늘 그렇듯 돌아간다.


세상의 야멸참과 그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호의 속에서 인간은 빚을 지고 빚을 갚고 살아간다. 나는 얼마만큼의 빚을 졌는가, 얼마만큼 갚아나가고 있나.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토지는 나를 보게 한다. 토지는 우리네 삶이며 설움이다, 라는 작가의 서두의 말이 떠오른다. 그 삶을 읽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