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과 쿠팡

탈팡을 향해 가는 길

by 한시영


최근 미드 하나를 재밌게 보고 있다. 오래전 방영했던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로, 본편보다 백 년 앞선 시대를 다룬다. <왕좌의 게임>을 몇 번씩 정주행하며 수백 년에 걸친 세계관과 인물들을 외우다시피 했기에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문제는 곧 죽게 될 인물에 내가 지나치게 마음을 주게 된 것. 왕족이지만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자신의 권력을 약한 이들에게 쓸 줄 아는 그는,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이 났다.


그의 이름은 바엘로르. 왕국의 왕위 계승자인 그는 지방의 한 마상시합장을 찾는다. 여정은 늘 그렇듯 위기를 불러오는 법. 그와 함께 길을 나선 망나니 조카가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폭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극의 주인공 던칸이 그것을 말리다 왕족을 다치게 해, 왕족상해죄로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그때 바엘로르가 개입해 사형 대신 결투재판의 기회를 그에게 준다. 결투를 위해 자신과 함께 싸울 이를 구해야 하지만, 떠돌이 기사 던칸 옆엔 그 누구도 서지 않는다. 그때 바엘로르가 말을 타고 등장해 그의 편에서 싸운다고 말한다. 시합장 안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한다.


그 장면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드라마를 이어 보지 못했다. 그가 곧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편에서도 주인공급 인물들을 가차 없이 죽여온 작가를 경험해 왔지만 이번 죽음은 마치 처음인 듯 버거웠다. 정해진 결말 앞에서 자꾸만 만약을 떠올렸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훌륭한 왕이 되었을지, 그의 선량함과 지혜가 백성들의 삶을 조금은 덜 비참하게 만들었을 거라는, 결코 오지 않을 미래를 상상하며 서러워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멍하게 서서 바엘로르를 떠올렸고, 드라마가 정 보고 싶을 때면 그가 결투에 등장하는 씬만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러다가도 흠뻑 애수에 젖은 마음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는 순간이 있었는데, 화면 위의 쿠팡플레이 아이콘이 보일 때였다. 국내에서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선 해당 시리즈를 독점 방영하는 쿠팡플레이에 가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모 모양의 로고가 보일 때마다, 이걸 보려고 작년에 탈퇴한 쿠팡에 다시 가입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재가입한 뒤에도 두 명의 쿠팡 노동자가 더 죽었다는 사실도 함께 따라왔다. 그 죽음들 앞에 책임 있는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이 아직 없다는 사실까지.


그동안 쿠팡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흐린 눈을 한 채로 덮어왔었다.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며 전날 주문하면 아침에 오는 그 배송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작아진 실내화 때문에 발이 불편하다는 아이를 위해 결제를 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실내화가 와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었고, 나는 일하는 엄마라 아이를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 내부자 고발로 재조명된 고 장덕준 씨의 사망 사건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


2020년,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숨진 쿠팡 노동자 장덕준 씨. 죽기 직전 그의 일주일간 근무 시간은 주 6일 62.2시간이었다. 교대 없는 6일간의 야간 근무. 그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으나 쿠팡은 이후 장 씨의 사망 원인이 다이어트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 씨가 ‘열심히 일하지 않은’흔적을 찾으려 애를 썼다. 유족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CCTV 영상을 임직원 수십 명이 모여 분초 단위로 검토하고 8가지 카테고리(물 마시기, 대기, 잡담, 서성이기 등)로 분류한 파일을 만들었다. 그 기사를 읽은 날은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잦아들고 날이 따뜻해 옷차림이 얇아진 날이었다. 그날 나는 곧바로 쿠팡을 탈퇴하고 앱을 삭제했다. 그야말로 상쾌하고 가뿐한 ‘탈팡’이었다.


멤버십을 해지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소비가 줄었다. 이전보다 느려진 배송은 소비의 속도를 늦췄고, 물건의 필요를 너머 쓸모와 지속성을 생각하게 했다. 불편했어도 나쁘지 않았다. 나쁜 기업, 정확히는 노동자의 죽음을 지우려는 기업의 서비스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1층 공동 현관 앞에 쌓여있는 이웃들의 쿠팡 배송 꾸러미를 볼 때면 아직도 쿠팡을 쓰는 사람들이 있냐며 분개했다. 이렇게 무관심하니까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거라고, 저런 기업의 서비스는 모조리 불매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공동 현관을 지나쳤다.


그랬던 내가, 미드를 보기 위해 내 손으로 다시 앱을 설치하고 멤버십에 가입했다. 탈퇴한 지 한 달 반 만의 일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업데이트되는 에피소드를 기다리며 한 주를 보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쿠팡 플레이 앱을 터치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설렜는지. 하루 종일 지친 몸이 재생 버튼을 앞에 두고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불편감을 지긋이 눌러야 했다.


쿠팡은 이미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었다. 월 7,890원이면 쿠팡플레이 영상 무제한 시청부터 로켓배송, 30일 내 무료 반품, 쿠팡 이츠 무료 배달이 가능했다. OTT부터 쇼핑에 음식 배달까지 생활 전반을 파고든 거대한 생활 인프라, 플랫폼 기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편리와 재미를 누리느라 이도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전에는 쿠팡을 쓰지 않는 일이 덤으로 주어지는 빠른 배송을 포기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당연하게 누리던 생활의 편리함을 빼앗기는 일처럼 느껴지게 됐다.


지난 주말에는 내내 미뤄두었던 에피소드를 봤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결투 재판에서 큰 부상을 입은 바엘로르가 죽었다. 막상 그의 죽음을 마주하자, 눈물이 흐르긴 했어도 생각했던 것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상대가 비록 가상 속 인물일지라도 지난 몇 주간 실컷 울적해하며 나름의 애도 작업을 한 탓이었을까. 막상 괜찮은 내 모습이 씁쓸했다. 가상이든 현실이든 누군가의 죽음에 쉽게 무뎌지는 것만 같아서.


바엘로르를 죽게 한 장본인, 그의 망나니 조카는 결투 중 사타구니에 치명상을 입어 불구가 된다. 악인이 받는 죄의 대가는 정도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통쾌함이 있다. 오히려 이야기는 현실보다 성실하게 악인을 벌한다. 인과응보가 재현되는 질서 있는 세계.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지난 6년간 스물다섯 명의 노동자가 죽은 이 기업은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사람이 죽었어도 변한 것은 없다. 내가 잠든 밤에도 불이 켜진 물류센터에서는 수십 개의 계단을 오가며 짐이 든 카트를 나르는 이들이 있다.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트럭에 물건을 싣고 배송을 세 번씩 반복하며 도로를 달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할당된 배송량을 채우기 위해 빠르고 급하게 도로와 배송지를 오간다. 그리고 매일 새벽, 그들이 내려놓는 물건과 식재료에 의지하여 나의 일상이 굴러간다.


그저 나쁜 기업의 서비스를 불매하면 그만일까. 쿠팡은 이미 국내에서 9만 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고, 여러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쿠팡의 물류 센터 유치에 매달리고 있다. 내 주변만 하더라도 가족을 간병하느라 낮 시간을 비우기 어려운 이들에게 쿠팡 새벽 알바는 안전함을 따지기 이전에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된다. 취업 전 몇 달, 혹은 입대 전 잠시 물류 센터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들린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불편했던 지점은 내가 이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플랫폼 안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자도 아니다. 드라마를 볼 때도 그랬듯, 나는 그저 철저한 외부자요 관전자였다. 바엘로르의 죽음에 슬퍼했어도 마상시합에 나가 다치거나 죽는 것은 이야기 속 인물들이지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쿠팡에서 벌어진 일들과 무관한 사람인가. 나는 분명히 연루되어 있다. 돈을 지불하고 그 안에서 편리함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


나처럼 쿠팡에서 쇼핑을 하고 OTT를 보고 음식 배달을 시키는, 유료 멤버십 회원은 1400만명이 넘는다.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서도 어쩌지 못한 채 쓰는 이도 있다. 쿠팡을 쓴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드라마를 보기 위해 쿠팡에 재가입한 일이 악행이라고 말할 수 없듯, 내 이웃들이 현관 앞에 쿠팡 배송 물건을 쌓아두는 일 역시 나빠서가 아니다. 문제는 알고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다. 이 시대의 소비자로 살면서 나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어디까지 부끄러워해야 하며,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 걸까.


작년 1월, 쿠팡 심야 노동에 관한 국회 청문회에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이 그 사유였다. 그는 트럼프 취임식 기금에 100만달러(14억원)를 후원했다. 이외에도 2021년 부터 2025년 9월까지 약 157억을 로비로 지출했다. 돈은 한국에서 벌지만, 로비는 미국에서 하는 것. 이런 쿠팡의 진심 어린 노력은 결실을 맺는 중인데, 미국의 의회와 벤스 부통령은 연일 ‘쿠팡’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 중이다. 미국 기업 쿠팡이 한국에서 규제 같은 장애물에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도록 쿠팡의 로비는 계속되고 있다.


갈 길이 멀어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쿠팡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국회 역시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통해 독과점 남용을 제도로 막을 출발점에 서 있다. 야간 노동 문제 역시 사회 곳곳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착한 소비자로 남는 일? 착한 소비자, 아니 적어도 그럴 듯한 소비자로 사는 일은 평생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의지나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돈, 여유와 같은 자원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던 도중 나는 두 번째 탈팡을 감행했다. 첫 번째 탈팡이 한 달 반 만에 끝난 짧은 소동이었다면, 이번에는 성공적 탈팡으로 남길 바란다. 지난 겨울, 공동 현관 앞의 배송 꾸러미를 보며 들었던 분노를 떠올린다. 그것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나쁜 기업을 향한 정의감과 불편함들이 있었겠지만 나 자신은 착한 소비자라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 믿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쿠팡에서 산 것은 두루마리 휴지였다. 평소에 쓰는 것보다 더 도톰한 4겹 프리미엄 라인을 골랐다. 다음 날 현관 앞에는 늘 그랬듯 휴지가 놓여있었다. 포장지를 뜯자 겹겹이 농축된 향기가 집안에 퍼졌다.



*세븐킹덤의 기사


* 참고 자료

- 시사인 949호(25.11.25), 956호(26.1.13자), 958호(26.1.27), 960호(26.2.10)

- 한겨레 기사, 쿠팡 ‘지역 일자리 창출’ 많다지만…“단기계약 위주” “처우 열악”(25.12.17)

- 중앙일보 기획 연재, '2026 쿠팡해부' 기사 5편

- 오마이뉴스 유튜브, '쿠팡 과로사 장덕준의 마지막 CCTV'

- JTBC 유튜브, '과로사 폭로한 제보자... 쿠팡의 증거 파기'

- KBS 유튜브, '산재 인정 못해, 쿠팡 23건 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