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가고, 복직은 90일 남고.
복직이 90일 남았다. 90일인지 94일인지는 모른다. 우선 백일 보다는 덜 남았다는 것, 구십 일 언저리라는 것만 느낌으로 알 뿐.
둘째 아이가 학교에 갔다. 나로선 둘째인데도 불구하고 첫째 때보다도 걱정이 더 많았다. 훨씬 겁이 많았고 낯을 가렸고 불안도가 컸으며 낯선 환경을 힘들어했으니까. 교실에 혼자 들어갈 수는 있을지, 급식은 먹을지, 학교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입학한 지 3주차가 되자,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이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내게 있었음을 깨닫는다.
겁이 많다기 보다 겁이 많아 보였고, 낯을 가리는 듯 했고 낯선 환경을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1반이 된 아이는 지난 4년간 1학년 담임을 맡으며 꽤 엄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부장 선생님이 걸렸는데, 자기는 오히려 이 선생님이 좋다고. 한계를 명확히 알려주는 단호함이 아이에게 더 편한 걸까. 처음 며칠은 교문 앞에서 헤어지는 걸 힘들어해서 자꾸만 가다가 되돌아와 안겼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잘 간다. 참관 수업을 갔는데, 수업 시간에 종이로 만든 피자를 누구와 먹고 싶은지 발표하는 시간에 다른 친구 두 명이 현이와 먹고 싶다고도 말했다. 나름 친구들과도 사이 좋게 지내는 듯 하다.
초등학교에 간 아이는 이전보다 밝아졌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더 활기차지고 있다. 입학 전 다니게 될 택견에 가서 시범 수업을 들으며 자기는 피구도 게임도 하기 싫다며 계속해서 내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던 아이였는데. 어제 택견장에 데리러 갔더니 엄마는 좀 나가 있으란다. 겉에서 보니 중앙에서 피구를 가장 열심히 한다, “야 너 거기, 그렇지! 야 여기로 패스해!” 가장 시끄러운 것도 이 아이다.
마을 생활을 하는 덕분에 집앞에 나가도 기본 두세 명 이상의 어른을 마주친다. 입학 전에는 수줍어 인사도 못했던 아이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아는 것만 같은 얼굴이 보이면 소리치며 인사를 건넨다. 엄마가 없고 친구들끼리만 있는 상황에서는 더 크게 인사한다고 누가 말해주기도 했다.(아마 반가움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나 저 사람 안다? 라는 표현인듯) 걱정이 기우로 확인되자 이제서야 흐뭇하게 미소가 번진다. 물론 아직은 3주차이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하여 마음이 놓인다.
무엇보다 학교 끝나고 가는 개똥이네 놀이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머지, 입학 후 몇 주간은 집에 가지 않는다고도 울었다. 개똥이네서 얼음땡도 해야 하고, 사방치기, 공기, 비석치기, 친구들과 하는 카페 놀이, 레고… 할 게 너무 많아 마음이 바쁜데 엄마는 자꾸 일찍 와서 자길 데려간다며 저녁에 만나는 내게 도통 웃어주질 않는다. 학교에 입학하고 시작한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두발자전거 타기’다, 첫째 때는 엄두도 못냈는데 둘째가 되니 한 발자국 내딛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아직은 아이에게 커 보이는 20인치자전거를 보조바퀴도 없이 들이밀었다. 2주 정도 주말에 타자 이제 얼추 탄다. 넘어지고 손바닥도 까지고, 쓰러진 자전거를 세우는 일도 아직은 벅차 보이는데 옆에서 잠자코 보고 있는다.
“어차피 혼자 탈 거니까,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일어나고 하는 것은 혼자 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일으켜줘, 세워줘, 했던 아이도 단호한 내 말에 이제는 알아서 자전거를 세우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의 성장이 일어날 공간에 내가 머물렀음을 떠올린다. 어떤 성장은 무질서와 혼돈, 비어진 자리, 고통이 있는 자리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나 염려 없는, 질서 없는 공간 안에서 사람이 자라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잘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견하고 챙겨주고 지나친 격려와 칭찬, 사랑을 가장한 간섭(실은 내 불안의
해소)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것도 다 사랑이었으니까- 라며 합리화하면 내 자신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사랑도 분명 사랑이겠지만, 나로서는 좀더 위험하고 거침없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길들여지지 않고 때론 당돌한 그런 아이들과 내가 되기 원한다.
학교에 입학하고 둘째는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거의 세네 살 때부터 영어를 시작한 첫째와는 너무나 다른 속도다. 둘째는 첫째와 기질이 다르기도 했고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녔기에, 최소한 영어 교육만큼은 입학 후로 미루고 싶기도 했다. 영어 영상을 따라 노래를 부르고 영어책을 함께 읽고 있다. 아이와 영어공부를 할 때면 자꾸만 마음이 급해진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컨텐츠를 들이밀고 그 안에 넣어주고 싶어서.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이가 선택하는 것일테다.
나는 그저 조금씩이어도 꾸준히하게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어디까지나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런 공부가 어떤 생각의 재료가 되거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이 아이에게 흘러가길 바랄 뿐. 그럴려면 나 역시 매 순간 공부하고 돌아보고 지겨우리만큼 나 자신을 응시하고 뜯어고치고 때론 받아주고 후퇴하고 전지하고 머무르는 일이 필요함을 되새긴다. 아이 입학 이야기에 말이 길어졌다.
3월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밖에 없는, 시작하기 좋은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