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읽고 언제 쓰세요?

연휴의 끝을 붙잡고 씁니다

by 한시영


연휴가 반갑지만은 않다. 먹이고 재우고 입혀야 하는 아이들이 둘. 그들과 붙어 지내는 일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에 가깝다.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자근자근 피로가 쌓이는 하루. 그치만 그 가운데에서도 웃음이 새어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공기를 연습하던 둘째가 며칠 만에 네찍기에 성공하는 순간. 엎드린 내 옆에 자리를 잡고 해리포터를 읽는 첫째의 모습.


”엄마, 소설은 원래 이런 건가? 문장이 엄청 간지러운데. 문장이 나를 간지럽히는 것 같아.“


아이가 간지럽다던 그 문장을 소리내어 같이 읽는 일. 그런 일들이 길고 긴 연휴를 무사히 지나오게 한다.


그렇게 사흘 내내 아이들을 담뿍담뿍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목욕탕에 가서는 뽀독뽀독 씻기고 꼬옥 안아주었다. 할머니를 보러 가서는 키가 컸다, 의젓해졌네, 라는 말들을 듣고 배도 마음도 두둑해져서 집에 왔다. 어느새 연휴 마지막 날이다.


책만 다섯 권, 노트만 세 권을 챙겨 카페에 왔다. 사실 ‘왔다’ 라는 동사로는 다 담을 수 없다. ‘도망쳐 왔다’ ‘기꺼이 왔다’ ‘겨우 왔다’ 조금이라도 읽고 쓰고 오라는 ‘남편의 도움으로’ 이런 부연 설명이 붙어야 할 것만 같다.


정말로, 늘, 한결같이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올 때면 마음이 무겁다. 이래도 되나, 뭘 대단한 걸 하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내 시간을 채워도 되는 걸까?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할텐데.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이것저것을 신중하게 집어 가방 속에 넣는다. 요즘 읽고 있던 책, 머리를 식힐 만한 책, 시사 주간지, 필사노트, 초안을 쓸 노트… 가져가서 결국 반도 펼쳐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마음만 앞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욕심이 그득그득 붙은 자의 어깨가 무겁다.


카페에 도착한 뒤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읽고 싶었는지, 이 시간이 내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어떤 진실은 그것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이 된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이 둘을 기르고 회사에 다니면서 언제 읽고 언제 쓰세요? 그럴 듯한 답을 하고는 싶지만 거기에 그럴 듯하게 붙일 대답이 없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 읽고 쓸 뿐이라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투철하게 글을 써내려 가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가만 있자, 그렇게 글을 밥벌이로 삼은 이들이 어떻게 일상을 꾸렸나. 일하지 않아도 되는 막대한 유산을 받았을까. 혹은 아이를 돌보고 먹일 다른 파트너가 있었을까. 내놓는 글마다 돈으로 환산되는 끝내주는 글들을 써냈거나.


그저 허겁지겁 닿는 대로 읽고 쓰는 나를 보면 어딘가 어설프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장 먼저 쓰는 글이 이런 것들이다. 허겁지겁, 급한대로, 마음 속 체기를 덜어내려고, 흩어져버리는 순간들을 잡으려 쓰는.


머리를 다시 묶으려고 손을 뒤로 하자 올록볼록한 머리가 만져진다. 집에서 나가기 전 내 뒤에 달라붙어 둘째가 한참을 땋은 머리다. 이 머리를 한 채로 나와버렸다. 이제는 가져온 책과 노트를 꺼낼 때다. 펴지 못하면 꺼내놓기라도 해야지. 이렇게 연휴가 간다. 연휴의 끝을 붙잡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