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공부, 학위, 글쓰기

쓸모의 증명?

by 한시영

함께 밥을 먹던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게 어떨지?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문화 인류학? 심리학도 어울리네요.


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에 입학한, 말 그대로 까마득한 선배였다. 재학생 시절, 수련회 집회가 끝나면 동문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회사 일을 마치고, 졸린 눈을 비비는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수련회에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굵직한 행사마다 그는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내가 졸업한 후에는 주로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이어 갔다. 아이를 키우며 든 단상과 일상의 기록, 해마다 새해에 올리는 다짐같은 글에 그가 종종 좋아요와 댓글을 남겼다.


일년에 두어 번, 동문과 재학생이 한데 모이는 홈커밍데이에 가면 그는 늘 말했다. 글은 계속 쓰고 있지요? 계속 쓰세요, 글이 참 좋아요. 안부를 묻는 내게 나이 오십이 넘어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얼마 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그는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라며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이리 힘들 줄 몰랐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북토크 자리에서였다.


그가 내민 책에 사인을 해 주자, 그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지역 공동체 라디오에 섭외하고 싶다는 제안을 꺼냈다. 이번에 출간된 시영 작가의 책과 글쓰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몇 주 뒤 남편과 함께 그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안진FM’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은 사무실이었다.


공간이 좀 작죠? 정부에서 주파수를 공식으로 받긴 했지만 운영은 시민 활동가들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는 다소 영세하지요. 그래도 꽤 많은 주민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


라디오 녹화한 게 벌써 두 달 전이네요. 오늘은 무슨 강연이에요?


중독자 자녀로 살아온 경험이랑, 시민 사회에 바라는 점을 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네요. 그나저나 재혁은 오늘 휴가 낸 거죠? 거의 시영이 전담 운전 기사네. 시영이 잘 되면 뭐, 기사해도 되죠.


기사라는 말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운전할 때만 대화가 되거든요. 시영이가 휴직이라지만, 애들 챙기고 읽고 쓰고… 회사 다니는 저만큼 바쁜지라.


안산에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첫 책이 나온 뒤 강연을 의뢰했던 기관이 마침 그가 사는 곳에 있었다. 기관에서는 종종 나를 강연자로 불렀고,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 그는 점심 자리를 먼저 제안하곤 했다. 근황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그런데 시영 작가는, 더 늦기 전에 공부를 시작하는 게 어떨지?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공부요? 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배우고 싶은 건 많죠. 트라우마 쪽도 궁금하고, 좋은 문학 작품을 좀더 깊게 읽는 방법도 배우고 싶고요. 종종 단기 강의 듣는 걸로 달래고 있어요.


아, 내가 말한 것은 학위를 가질 만한 그런 공부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학부 이상의 공부를 해야 인정해주니까요. 시영 작가도 계속 글을 쓸 것 같은데 회사를 그만 두게 된다면 여러 기회를 붙잡기 위해 학위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듣자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이번 강연을 앞두고 담당자에게 조심스럽게 강사료 지급 기준을 물어 본 날이었다.


아, 작가님. 저희도 더 드리고 싶은데요. 공공기관이다 보니 기준이 워낙 타이트해서요. 학위는 학부가 최종이신 거죠? 더 고려해 볼만 한 게 있는지 찾고 싶어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죠? 너무 죄송해요. 저희도 잘 챙겨드리고 싶은데…


그녀는 연신 쩔쩔매며 지방자치인재개발연수원 기준으로 책정되는 강사비라 어쩔 수 없다고 전화로 설명했다. 강사비에 대한 언급이 그간 좋지 않은 식으로 흘렀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강사비가 적다거나 더 달라는 말을 내가 꺼내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은 뒤, 그가 언급한 강사비 기준을 검색하니 금액이 상세하게 나와있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학위, 경력, 자격증 항목을 하나씩 충족할 수록 금액이 올라갔다. 같은 행사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강의를 해도, 학위에 따라 강사비가 서너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어딘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준을 충족할 만한 것들이 내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였지만 그 기준에 딱 들어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안에서도 높은 칸에 올라 의심의 여지 없이 강연장에 서서 가장 높은 값이 매겨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사실 나는 좀 후회를 해요. 회사를 정리를 하고 오십이 넘어 고전 문학으로 박사를 했는데, 대학원을 학부보다 낮춰 갔거든요. 좀 쉽게 가자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요. 소위 말하는 스카이에서 했더라면 기회가 훨씬 많았을 겁니다. 공부도 그렇고 연구나 강연에 쪽에서도요.


제가 글을 쓰는 글방에서도 이런 고민을 해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갈 지, 아니면 밖에 머물며 내 길을 개척할지. 문학에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등단하면 그 자체로 작가의 이력과 실력을 증명해 주니까, 그것을 통해 기회를 얻겠죠.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려면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형화된 기술이 필요하고, 개성이 약해질 수도 있고요. 말씀하신 대학원 공부도 이런 면에서 고민이 되네요. 그런데 무엇보다 공부에 필요한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고요.


아, 돈이요. 장학금 제도는 꽤 잘 돼 있어요. 문제는 시간이지요. 둘이 맞벌이에 아이들도 아직 어리니. 시영 작가가 이제 서른 일곱인가요? 그 나이가 마지노선 같아요. 사십을 넘기면 교수랑 나이가 같거나 많아져서 일을 시키기 부담스러워하거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권하고 싶었어요. 글을 쓰면서 강연 같은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면 좋으니까요.


평소 깊게 생각해온 주제가 아니었는데도, 그가 꺼내는 대학원 이야기에 마음이 들떴다. 마치 오래 전부터 꿈꿔 오던 게 공부이고, 갖고 싶은 게 학위인 사람처럼 조바심이 났다.


지난 날 출신 학교나 회사 이름을 대며 얼마나 많은 순간을 편하게 넘겼던가. “제가 무슨 일을 하고요,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삶을 살았냐면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됐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편한가. 학교 서열이 높을 수록 회사 규모가 클수록 질문은 줄어들었다. 개인의 능력보다 간판을 먼저 보는 구조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 이름들이 주는 안온함을 누렸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은 배움 그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주는 위치였는지도 모른다. 학위라는 이름으로 설명을 면제 받는 사람. 높은 값이 확실하게 매겨지는 사람.


그 위치가 기회를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얼마만큼 올지 모르는 막연한 기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얼만큼 내놓을 것인가. 글 쓰는 삶을 지키려 택한 공부가, 오히려 글을 밀어낼지도 모른다. 학계의 문법에 맞춰 글을 쓰고, 연구 주제에 맞춰 관심사를 조정하다 보면 내 글을 쓸 시간이 얼마나 남게 될까. 이쯤 되니, 사실 나는 제대로 된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작가로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을 잠재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책을 몇 권 펴내고 그 인지도로 강연과 수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확실한 작가가 되지 못할 바에는 학자라도 되려던 마음이었는지. 작가도 학자도 아닌 그 애매함에 대한 두려움인지. 그렇다면 그 불안에 추동된 움직임들, 학위와 자격증을 따고 경력을 쌓는 일이 뭐 그리 나쁜 것일까 하는. 학위를 따려고 시작한 공부여도 그 안에서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어느새 남편과 그는 편의점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남편이 회사에서 관리하는 점포 수와 인건비 상승으로 밤새워 점포를 지키는 점주들의 이야기였다. 매출, 임대료, 인건비 등의 숫자들이 오고 갔다. 나는 식은 파스타면를 포크로 돌돌말아 입에 넣었다.


자 일어나야죠. 시영 작가도 강연 준비해야되잖아요.


그와 주차장까지 함께 걸었다. 이거 이상하네, 내가 초대했는데 내가 배웅을 받네. 강남구청에서 동양 고전 수업이 있어요. 저 먼저 갑니다. 오늘도 즐거웠어요, 한 작가님 강연 잘하세요.


초록색 번호판을 단 하얀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연식이 꽤 된 그의 차를 보며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려면 검소해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차도 작고 검소하게 사는데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게 왜이리 어렵냐는 우스개 소리를 주고 받았다.


시영아, 이참에 대학원 공부 해볼래?


애들은 누가 보고 돈은 누가 버나.


선배님 말 들어보니 대학원 공부, 아니 학위가 필요할 것 같아. 다들 고만고만한 스펙이라면 학위있는 사람이 눈에 띄겠지. 아 나 너무 속물 같았어? 이런거 보면 나도 시스템에 쩌든 사람 같네.


자기 말 뭔진 알겠어. 학위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도 분명 있겠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걸 하면 또 뭔가를 놓칠 것 같아서.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먼저 생각나는 걸 보니 공부하긴 글렀나봐. 그런데 이래놓고서 몇 년 뒤에 후회하는 거 아니야? 그때 자기가 공부하라고 떠밀 때 할 걸, 이러면서.


회사 오래 다닐 거 아니면 밖에서도 자길 받쳐줄 이력이 필요하잖아. 한국에선 학위가 가장 강력하고.


아직 잘 모르겠어. 그래도 공부하라고 해주니 뭐 고맙긴 하네


우린 하나니까? 시영이 잘되면 나도 이렇게 운전만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걸 셔터맨이라고 하던데. 오늘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셔터맨.


잠시 뒤 강연장에 도착하자 얼굴이 익은 몇몇이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들뜬 기분으로 강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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