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쓰기를 합니다

결국 써봐야 알 수 있는 것

by 한시영


그간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전 작업이 기억과 감각에 의존해 재현에 힘을 썼다면, 지금은 내가 가진 경험이 사회와 맞닿은 지점을 포착하고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 재현을 넘어서서 나라는 개인이 종교와 만난 경험을 여러 방면에서 재해석을 해야 하는 작업이다.


시작은 교회 안의 책모임이었다. 그때 나는 교회 식당 한 켠에서 전광훈 현상의 기원이라는 책을 가지고 모임을 하는 중이었는데 바로 뒷편에서는 ‘종북 좌파‘라는 말이 들리는 유튜브가 큰 볼륨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 현장의 기이함. 나는 마치 방송에서 언급된 좌파가 된 듯 눈치를 보며 책모임을 이어 나갔다. 그 시간이 내게 꽤나 강렬했던지 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신론이 지적표준이 된 시대에, 한국에 사는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30대 여성으로서 한국 교회에 다니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두 딸을 키우며 성평등이 가장 더딘 영역인 교회에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나처럼 성차별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체득하고 체화할까봐 겁이 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매주 교회에 나간다. 가서 아이들은 성경을 읽고 매주 만나는 친구들, 이모/삼촌, 선생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똑같다는 말을 해준 이들은 이 땅을 밟은 선교사들 아니었나. 망한 이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전도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에게 역할과 직책이 맡겨진 일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 소외된 여성은 주로 과부였고. 그 당시 여성과 아이, 소외된 이들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였을까. 선교가 목적이었겠지만 교육, 의료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그들이었다.


해방 이후 냉전 체제의 거점이 된 남한이 미군정 하에 정부가 수립되고, 반공/친자본/친미 성격을 가진 정권과 더불어 미국 선교의 영향 아래 기독교 또한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권력과 밀월 관계를 이어오며 온갖 특혜(군종제도, 수감자 선교제도 등)를 받은 종교지만 1970년 민주화 탄압 국면에서는 어땠나. 활동가들을 종교의 우산 아래 품어 보호했으며, 긴급조치 발동으로 대학 학생 운동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선 것도 이 종교 아닌가…


여전히 경계인의 마음으로, 여전히 복잡한 심경으로 교회를 나간다. 이 마음을 언젠가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아직 두 편밖에 쓰지 못했지만, 이 글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써야 알 수 있는 것. 끝까지 끈덕지게 이 주제를 쓸 끈기가 있는지,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지, 맥락들을 짚고 재해석할 능력이 있는지는… 결국 써봐야 알 수 있는 것.


교회사를 다룬 책부터 논문까지.. 생전 읽을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책들에 허우적대고 시간에 쫓겨 겨우 쓰고 겨우 먹고 겨우 잔다. 1월은 아마 새로운 글쓰기와 공부, 이 패턴에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것 같다. 시간이 모자라니 자꾸만 운동을 미루고 잠을 설친다. 오늘 밤은 푹 자고 싶다.


서울역 눈사람이라는 책을 샀다. 요즘 머리 식힐 때 틈틈이 읽는다. 서울역의 노숙인들이 수업을 듣고 쓴 글을 엮어 펴낸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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