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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홍 Apr 27. 2023

비글과 표창장

나의 학창시절에게


오후 3시, 사무실에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처럼 두 눈이 감겨온다. 그럴 때면 난 늘 그랬듯이 경건하게 이어폰을 끼고 온몸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그렇다, 난 사무실에서 춤을 추는 취미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박치인 몸으로 남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건 아니고 잠이 오거나 지루할 때 몰래 노래를 들으면서 제자리에서 혼자 들썩거리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못 봐줄 취미지만 사실 이건 내 오래된 습관이다.

 이팔청춘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고백하건대 학창 시절의 난 인간 닥스훈트(4대 악마견 중 하나) 였다. 복도에서 물총 놀이하다가 혼나고, 도서관에서 자기 계발서 대신 잘못 주문한 야한 소설책 훔쳐 읽다가 벌 받고, 점심시간에 급식 안 먹고 담 넘고⋯. 참 별 짓을 가지가지도 했는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판서할 때 몰래 일어나서 춤추고 뒤돌면 모른 척 앉는 게 맨날 하는 짓이었다. 지금껏 업무시간마다 춤을 추는 버릇도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이게 나야~

 그렇게 살아온 덕분에 중학생 시절 성적은 300명 중 200등 안에도 못 드는 일이 일상이었고 교실에서 말썽이 일어나면 억울하게 범인으로 찍히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커닝 사건인데 때는 중학교 2학년, 사회 선생님의 수행평가 시간이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었는데 하필 내 자리 근처 누군가가 그 무서운 선생님의 시험시간에 부정행위를 했고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게 나와 내 앞자리 친구였다. 이후 교무실로 끌려가면서 용의자들에게 선생님은 수행평가 점수가 몇 점인지 물었는데 50점 만점인 시험에 내가 17점을 받았다고 답하는 바람에 부정행위 혐의를 벗게 된 것이었다(…) 부정행위를 한 애가 17점에 불과할 리 없으니 대답과 동시에 밝혀진 범인과 세 사람 사이에 흐르던 정적, 일그러지던 진짜 범인의 표정과 나에게 교실로 돌아가라던 선생님의 말투까지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1..7..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말썽꾸러기 옆에는 비슷한 친구들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성질이 지랄 맞기로 유명한 닥스훈트 옆에는 그에 비견되는 비글들이 있었다. 개인차는 있었지만 같이 복도에서 뛰다가 넘어지고 교무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벌 받던 동료들이 있어 가끔 구박은 받았어도 학교가 싫지는 않았다. 그 혈기 왕성함을 함께 해줄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우울증에 걸렸으리라.


 하지만 뻔한 성장 드라마가 그렇듯이
인간에게는 철드는 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고등학교라는 첫 입시를 앞두고 시작한 진로에 대한 고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말썽꾸러기 학창 시절과의 작별을 의미했고 그렇게 비글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생전 처음 하는 공부에 칠판을 봐야 할지, 선생님을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던 금수에 가까운 인간은 이후 인고의 시간을 거쳐 적어도 학교에서 만큼은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갔던 듯싶다.

 그리하여 내 길지 않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꼭 밤과 낮처럼 양면적인 장면들이 떠오른다. 교실 앞에서 엎드려뻗쳐하고 맞던 모습과 졸업식 날 전교생 앞에서 모범상을 받던 모습. 근래의 인생은 후자의 삶처럼 으레 사회인으로서 마땅한 행동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 궁금하다. 그때 함께 철없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다들 잘 지내기는 하는지.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들을 다시 보기란 어려운 일일 테지만 한 번쯤 그때 그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 시절이 무작정 그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 같은데 너희는 어떻냐고, 어른은 책임질 게 많아 보여 싫다던 너희들도 나와 같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난 너희들과 멀어지고 단상 앞에서 받은 표창장보다 수업시간에 나눠 본 인터넷 소설이 더 즐거웠노라고. 그래서 아마 나는 또 혼이 나겠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랑 또 그렇게 사고를 치고야 말 것이라고. 그러니 혹여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장난기로 반짝이던 눈, 철없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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