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지조차 몰랐던 나의 어린시절 상처와 용서의 흐름
차가운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한파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눈도 쌓이고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런 겨울이었다. 그때의 내 나이가 정확히 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단칸방에 세 식구가 살며 연탄을 때고 살았고, 연탄불로 데워진 물로 온 가족이 온수를 아껴가며 씻던 그런 겨울날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퀸사이즈 정도 될 법한 두꺼운 솜이불에 세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누워 잠들었다. 연탄불의 뜨거운 온기가 바로 느껴지는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누워 지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다던 두껍고 무거운 목화솜이불속은 처음 들어가면 차가운 촉감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지만 금세 체온을 품어 포근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단칸방, 이불속은 따듯하지만 콧등에는 찬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그런 보금자리에서 세 식구는 모여 잠을 청하곤 했다. 훗날 생각해 보면 그 이불속이 우리 가족의 세상살이 모습과 퍽이나 닮았었다. 변변찮은 직업이나 집은 없었지만, 식구라는 그 이름으로 똘똘 뭉쳐... 고단한 세상 속에서의 고난을 잊듯 그렇게 이불속에서 따스운 잠을 잘 때만 세상을 잊곤 했다.
이불속에 있을 때면 우리 가족은 따듯했고 모자람이 없었다.
소란은 늘 이불 밖, 집 밖에서 터져 들어왔다. 아버지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늘 사달이 났다. 평소의 엄하고 말 수도 별로 없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횡설수술한 모습에 한쪽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찡그린 표정, 한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에 소주병과 알 수 없는 안주들이 들어있었다. 그 안주라는 것들은 대개 아버지의 죄책감과 맞바꾼 것들이었다. 술이 아니었다면 용기 내지 못했을 가족들이 좋아하기를 기대하고 산, 값비싼 제철이 오기 전 과일이었거나, 시들 시들하고 떨이로 싼값에 떠넘길법한 흐리멍덩한 과일을 비싼 값을 주고 사온 그런 것들이었다. 그 과일로나마 가족들의 기분을 풀어보려는 듯이, 혹은 그의 죄책감을 씻어보려는 듯이...
그렇게 사온 과일들을 먹지 않고 가족들이 주눅이 들어 피하면 아버지는 그렇게 서운함을 토로하며 소주를 병째 마셔댔다. 세상에 대한 억울한 갈증을 풀어대듯 그렇게 소주를 물처럼 마셨다.
늬들도 다 똑같다며... 이 세상 다 똑같다며... 그렇게 병째 소주를 나발 불고는 코를 골며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이불이든, 거실바닥이든, 누운 그곳이 잠자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나마 내가 집 안에서 안락하다고 느꼈던 이불속마저도 그에겐 자리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있고 집이 있었지만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 집에서도 이불 한 장 덮지 못한 채 노숙을 했다.
그가 잠들기 전까지 나는 집에 없는 척을 하거나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숨죽여 울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럴 때면 동화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잡혀온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용기와 지혜를 짜내서 탈출하는 그런 모험담들. 어쩌면 이 집안에서 그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아버지를 괴물처럼 생각하며 자립하여 도망가기만을 바랬던 그 동화의 주인공은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동화 같은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날 리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원한적 없이 세상에 태어났고 즐거움과 행복 넉넉함보다는 결핍과 불안을 먼저 배웠던 그 어린아이.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은 엄마의 목화솜이불처럼 따듯하지만 숨 막힐 듯 무거운 것이었고, 적당한 온기를 느낄 새 없이 너무나 뜨겁거나 냉골처럼 차가워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