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보인 내 속마음
저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부모님이 불화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의 삶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었지만 부모님은 더 험한 생을 사셨기에 나의 슬픔은 감추고 괜찮은 척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복에 겨운 것 같다고 자책하는 날도 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담담하고 괜찮은 척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살며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너만 유난 떨지 말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엔 이름난 학교, 번듯한 회사, 적기에 결혼해 아이도 낳고 완벽해 보이는 딸이 되어 살아갔습니다.
스스로 내 마음을 돌아본 적이 없으니, 마음은 계속 곪아가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비몽사몽 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신생아를 키우던 그때, 새벽에 깨어있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 부부가 서로에게 잔인한 말을 퍼부었을까.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건 아는 걸까. 두 분의 무심함에 대한 원망도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 지내며 회사에서는 진급을 위해 달리고 하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몸만 자란 성인의 모습 속에 15세 상처만 가득한 채로 울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내 안의 불안과 우울함을 처음으로 밖으로 내보였습니다. 상담사, 의사에게 "나도 힘들고 아팠어요"라고 표현하며 말입니다. 그 속에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하며 당신에 대한 서운함에 친정을 미워하고 외면했습니다. 서서히 내 맘속의 아이를 다독여주고 우울의 터널 끝에 도달할 즈음에야,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매질과 정서적 학대 속에서 기댈 곳 없이 울고 있는 상처받은 7살의 작은 아이가 말이에요. 그 어린아이가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숙명처럼 받들며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당신.
공부를 너무 잘하니 제발 학교 졸업까지만 시키자고…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육성회비도 대신 내줄 테니 학교만 보내달라는 부탁에도 당신의 어머니는 생계를 핑계 삼아 또 한 번 매질하며 학교대신 공장으로 보냈다던 그 시절. 세상 가장 나의 편이었어야 할 엄마가 큰 상처를 주었던 그 시기에…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혹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날들.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0대라 취업을 할 수 없으나 성실함을 잘 봐주셨던 공장 사장님께서 성인에 해당하는 월급을 주며 공장에서 일하게 해 줬고, 십원 한 장 빼먹지 않고 그대로 홀 어머니와 동생들의 학비, 생활비로 보태던 그 나날들… 당신의 꽃 같은 청소년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가끔 과음하고 새벽에 다되어 들어올 때면 짐승처럼 토해내던 그 울분이 당신 속에서 채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의 절망과 막막함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습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당신.
손주를 쳐다보는 당신의 눈빛에서 한없이 깊은 사랑과 함께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료결과를 들으며 덤덤히 본인의 사후 준비까지 다 해두시고, 부득이 남겨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시던 당신. 어찌 보면 당신은 본인의 마지막까지도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짐이 될까 걱정되어 미리 다 준비해 두신 걸까요.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이젠 놓아주세요. '무서웠지. 힘들었지. 정말 대단해. 아주 잘 해냈어. 이젠 괜찮아' 라며 어르고 달래주세요.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기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이 아름다운 현재는 곧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보내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뒤늦게 당신의 사랑을 깨달은 나에게,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은 그대로 인정해 주고, 우리 가족끼리 마음 편하게 서로 다독이며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당신이 만약 내 아이로 태어난다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히고 제일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매일 '예쁘다, 사랑한다, 나에게 와 준 그 자체로 너는 선물이다'하고 말해줄 텐데….
다음 생엔 꼭 나의 아이로 와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웃음 가득한 장난꾸러기로 키워줄게요.
저의 어린 시절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금전적 재산 또한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이 물려준 영리한 머리와 성실함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었어요. 그 덕에 당신의 손주도 똑똑하고 사랑을 맘껏 표현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안아줄 수 있어요.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건 아닌지 죄책감도 들지만, 아직 우리에게 함께 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요. 아빠 덕분에 이젠 돈도 많이 벌고, 아이도 스스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함께 하고 싶었던 소소한 것을 해 나갑시다.
요즘 단풍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매년 단풍으로 물들을 때가 되면 당신과 처음 병원에 함께 가 진료 결과를 듣던 11월 5일의 은행나무 길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아빠 대신 홀로 처방전을 들고 성모병원 건너편의 약국에 가 봉지 한아름 약을 타오던 그 육교 위… 내 마음은 무너지는데 사평대로 양 옆길에 나란히 선 노란 은행나무들은 어찌나 반짝이게 아름답던지요. 내년 단풍 길은 무너지는 마음이 아닌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따듯한 마음으로 함께 서고 싶습니다.
당신 생에 한 순간이라도 행복하고 찬란하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면, 가시는 길에 그 추억으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죄책감을 좀 덜 수 있겠습니다. 조금만 더 오래 명정한 정신으로 함께 해주세요. 조금만 더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내년 봄에도 가을에도 꼭 함께 꽃놀이, 단풍구경도 가고 예쁜 풍경을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읍시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못난 딸 이제서야 이렇게 용기 내어 당신께 편지를 드립니다.
- 2024년 11월 13일 딸내미 올림 -
뒷 이야기....
그렇게 편지를 드리고 답을 받고.. 이틀 만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시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것처럼 폭설이 오던 12월 2일 새벽...
아버지는 그렇게 별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열나는 이마를 물수건을 얹어드리고, 기저귀를 갈며, 불안에 떠는 손을 맞잡고 병상에서 쪽잠 들던 그 시간들... 아버지는 아마도 가시는 마지막순간까지도 짧게나마... 내 아이로 와달라던 제 바람을 들어주시듯... 그렇게 가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참된 용서와 그로 인한 자유로움을 가르치고 떠나신 것 같아... 한없이 울컥합니다.
고통 없는 그곳에선 마음껏 뛰어다니고 크게 숨도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