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이교시 국어, 경험을 발표하고 글로 쓰는 시간.
말하고 싶어서 난리가 난 친구들을 다독인다.
“이 놈들아. 이제 제발 그만 말하고 글로 써. 다 두세 번씩 발표했잖어. 선생님도 더 말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다고.”
“선생님! 제가 상하농원 가서 봤는데….”
“아니, 그만.”
“아니.. 양이 원형탈모였는데요, 여기가 이렇게….”
“……”
삼교시, 외부강사님이 진행하는 인권교육 시간, 피피티 화면에 뜬 소중함이라는 문구를 보고 말을 좀 더듬는 서 군이 말한다.
“서.. 선생님, 저.. 저희 엄마가 형아랑 저를 낳았을 때 어.. 세..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했거든요. 그 마음이 소.. 소중함인 것 같아요.”
사교시, 선생님의 사전 투표에 동행하여 지방선거의
현장 견학하기.
“너희들, 거기 가서 기호 사번 ㅇ ㅇ ㅇ 외치면 안 돼. 투표장 가서도 외치면 아이스크림 안 사준다.”
“네, 선생님. 밖에 나와서 걸으니까 너무 좋아요!”
오교시, 아이스크림 먹으며 다음 주에 있을 문화유산 답사 계획을 세우는 시간.
OO 읍성 답사 계획 세우기’라고 칠판에 쓰자, 받아쓰기에서 백 점을 받아 어깨가 치솟는 녀석들이 말한다.
“와, 띄어쓰기 많다~!”
“어? 선생님, 컴퓨터에는 OO읍성 이렇게 붙어있네요. 선생님 띄어쓰기 틀렸으니까 우리처럼 다섯 번 공책에 쓰세요.”
“……. 너는 뽕따 그만 먹어, 내가 사줬으니까!”
알림장을 쓰고 난 방과 후. 일인 일역 갱신이 늦어지자 민원이 들어온다.
“선생님, 이거 역할 왜 안 바꿔주세요? 저 계속 우유 당번인데……!”
“김 군아, 근데 너보다 선생님이 우유 상자 더 많이 비운 거 알지?”
속은 있어서 말 떨어지자마자 초승달로 변하는 통통한 그 녀석의 눈두덩.
알림장을 다 썼는데 나가지 않고 몇 판을 부르는 어제 배운 영어노래.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솔 도! 선생님, 저희 영어 노래 대회 나가면 일 등 하겠지요?”
“아유~ 잘하네. 너무 잘하니까 이제 그만 가면 좋겠어.”
뽑아도 뽑아도 어디선가 자라나는 잡초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어린이들과의 하루.
출근하자마자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정신없이 지워나가는 업무와 수업, 그 사이에 예고 없이 사소하게 피어나는 녀석들의 사랑스러움이 좋다. 마흔이 코 앞인 담임을 (매우 유치한) 열 살로 만드는 꼭 여름 같은 너희들이, 선생님은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