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 센터장을 추모하며
통신단 무선소대장으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 루싸가 근무지역을 덮쳤다. 보통 비가 300미리 정도 오면 홍수가 나는데 이틀 사이에 700~800미리가 왔으니 홍수가 나도 크게 났다. 일단 유선통신은 전부 두절되었고 기지국이 침수되었는지 핸드폰도 전부 먹통. 남은 것은 FM통신이었으나 암호 코드 변경시기가 되자 그마저 먹통. AM은 평소에도 신뢰하기가 어려웠으니 태풍 때는 더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통신수단이 전부 먹통인 상황. 통신망 확보하느라 이틀을 밤을 새워 꼬박 대기하면서 상급 부서에서 계속 침수 현황(행정)을 파악하라는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인근 특공대에서 무선이 들어왔던 것은 한참 정신이 없을 때였다. 민간인 사상자를 구했으나 고립되었으니 헬기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옆에 있던 담당자에게 몇 번을 전달했지만 바쁜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 모두들 살짝 미쳐있었는지도 모르지. 나도 제정신도 아니고 좀 답답하기도 해서 그랬는지 직접 육군항공부대에 무전을 날려서 헬기 요청하고 사람들 구했다는 답을 듣고 안도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 약간의 보람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듯 평상시의 군생활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나름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장교로 지원하였지만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초급 장교였던 나는 행딩크 사단을 이끌던 카리스마 행보관(원사)에게 치이고, 이대로 건들지 말아 달라는 말년 병장에게 치이느라 입대 전에 상상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최대한 소대원들을 보살피고 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그렇게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비록 군생활 중에 태풍이 불었을 때 같은 드라마틱한 일은 드물었지만, 복무 기간 동안 소대원들 중에 죽는 사람 없이(다친 사람은 있었다. 돌아보면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고) 제대하게 된 것만도 큰 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고 하니, 최근에 돌아가신 윤한덕 응급센터장님도 그러하고, '골든아워'의 저자 이국종 교수 역시 자신의 책에 몸도 아프고 눈도 한쪽이 안 보인다고 하면서 정작 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말해 보기 위해서다. 아마도 응급의료센터에서는 아까 내가 언급했던 2~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곳일 것이다. 닥터헬기에 실려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위급한 환자들일 것이고 그러면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거의 매일 수십 명의 위급한 생명을 구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다 보면 그 과정이 고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사명감과 숭고한 의식이 생겨나고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떠날 수가 없게 되는 것 같다. 의사들은 생명을 다루니까 그들의 소명의식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이 들면서도, 환자를 그저 사물로만 대하는 것 같은 일부 의사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왜 이렇게 상반적인지와 왜 같은 의사인데 저들의 처우는 저리 열악한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무관심하다. 일단 응급실에 누워있는 사람이 나나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고 너무 어렵고 참혹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경향도 있다. 응급외상센터의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고 병원들은 환자들로부터 돈을 많이 가져가는데도 이러한 상황 개선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선듯 납득하기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 희생자가 생기거나 세월호, 석해균 선장 등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그때 잠깐 웅성거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관련 예산은 언제나 부족하고 눈의 띄는 것은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공약과 예산들이다. 나는 비록 의료 현장에 있지 않지만 응급센터 예산을 늘리고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이 영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이슈화되면서 '튜링테스트'(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분 안될 정도로 개발되었는지 하는 테스트)라는 용어가 이슈화된 적 있는데 그 튜링이 이 튜링 맞다. 그는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굉장히 선구적인 인물이지만, 동성애 전력으로 인하여 그것이 알려지자 정부 컴퓨터공학연구소 부소장직에서 해임되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였으며 40대 초반에 자살했던 불운의 인물이다.
이미테이션게임이라는 영화를 보면 앨런 튜링의 업적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에니그마'라는 독일군 암호화 기계를 해독하여 아군 사상자를 줄이고 사실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업적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의 몸 조차 돌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고투해야 한다는 상황은 넌센스에 가깝다. 넌센스 같은 상황인데도 그들이 그런대로 버텨주니까 누군가는 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버텨주니까 그냥 유지는 되고, 그것은 그냥 괜찮은 일이 된다. 그래서 전쟁터 같은 응급센터를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고귀한 희생도 '그냥 괜찮은 일' 혹은 그저 '불편한 진실' 정도로만 여기게 되고, 나라에서도 지금처럼 때우기 식으로 응급센터를 유지하고 있다.
응급센터 현장에 있는 의료인들의 짐을 누군가 수학자 튜링 같은 입장에서 덜어주어야 한다. 꼭 그들처럼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굳이 현장에 서 피 튀기는 전투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펜대와 머리만 굴려서 응급센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함다면 의롭고 숭고한 일을 한 것이다. 이미 현장에선 의료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다음 상대에게 공이 넘어가야 한다.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무원분들께 펜대 좀 굴려 달라고 부탁드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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