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김동식 <문어>

by 이메리




나는 SF 영화를 좋아하는 이과생 친구를 뒀는데, 그 애는 <스타 워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한국에서는 SF 영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한탄을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슬쩍 웃고 말거나 화제를 돌렸다. 나야 뭐, 국어와 영어가 백이면 수학과 과학은 육십 점쯤 맞던 학생. SF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장르니까 한 번 봐볼까 싶다가도 웅장한 배경음악과 멋들어진 로고, 기하학적인 생김새에 기가 죽어 관두곤 했다. 책을 읽을 때도 기생 동물 이야기는 읽으면서 SF만은 피해 가던 나는, 우연히 디딘 땅에 발이 푹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한국 베스트 셀러 코너에는 SF 소설들이 진열돼 있다.



SF는 기존의 현실과 과학적 공상을 합하고 발전시켜 새 세계를 만드는 장르다. 모든 창작물은 다들 비슷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지만, SF가 하나의 장르로 구분된 까닭은 과학적 공상의 가미에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SF 소설들은 과학적 공상이 적게 들어가는데도 환상성이 강하다. SF 마니아인 내 친구는 다루고 있는 SF의 농도가 너무 옅어서 아쉽다고 했지만, 이전까지 SF에 벽을 느끼던 나는 친절한 SF에 마음을 빼앗겼다. 뒤이어 읽은 우리나라 최초의 SF 소설이라는 <완전사회>에서는 주로 쓰인 단어는 좀 다를지언정 전하는 메시지는 현재 이루어지는 소수자들에 대한 담론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해 고도화된 문명, 시대의 발전이 급선무라는 이유로 미뤄뒀던 문제들에 직면하고, 고민하는 물결. 이러한 구조의 세계가 요즘의 SF 베스트 셀러 책장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만약 과학적인 능력치를 최대로 충족시켜놓으면, 그러니까 사람들이 더 똑똑해지고 사는 게 편해지면, 더 이상 다른 데 쓸 힘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자연히 순번이 밀려났던 이들의 생각을 할까? 그런 질문들이 한국식 SF의 유행을 일으킨 것 같다. 현재 사회에서는 어떤 인물의 어떤 상황을 데려와 시뮬레이션해도 답을 찾을 수 없거나, 혹은 사색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SF 소설을 읽는다. 이 책은 시간은 부족한데, 무겁지 않게 세상을 걱정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김동식의 문어는 SF를 재료로 한 넌센스 퀴즈, 일종의 사이버펑크 우화 같다. 각각의 단편들은 아주 짧고 대사가 많아 먼 우주와 미래의 이야기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좀비, AI, 외계인, 그들은 우리와 어느 정도 닮았으면서 우리가 경외하거나 두려워하는 이질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우리와 어느 점이 닮았고 어느 점이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왜 그들을 두려워하나. 나는 그것들이 바퀴벌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퀴벌레는 인간은커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던 옛날부터 지구상에 살았다. 바퀴벌레와 인간은 둘 다 잡식성이고, 번식력이 좋다. 가만히 붙어 있다가 신문지나 살충제를 집어 드는 소리가 나는 순간, 쏜살같이 도망친다. 바퀴벌레는 인간 근처에 살며 인간을 피하고, 인간은 바퀴벌레를 두려워한다. 바퀴벌레는 차고 많은 해충 중에서도 제일가는 유명세를 자랑하고, 인간은 바퀴벌레 박멸법을 연구한다.



기생 생물에 관한 책에서 바퀴벌레와 에메랄드는쟁이벌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에메랄드는쟁이벌은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자르고, 죽지 않을 만큼만 독을 주입해 잔인하게 이용한다. 산 채로 땅굴에 갇힌 바퀴벌레 다리 사이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깨어난 새끼 벌들은 살아 있는 바퀴벌레의 내장을 뜯어먹으며 성충이 된다고. 우리가 그 과정을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은 모든 현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고착된 최적의 생존법을 행할 뿐이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아 매일같이 선악을 구별한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 ‘신은 아주 많다, 하지만 담을 수 없다.’와 외계식 면책 쿠폰처럼, 인간은 미지의 것에 강렬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느낀다. 당장은 쓸모없을 수도 있는 끈질기고 유약한 목표와 연구들이 이어져 우리를 만들었다. 바퀴벌레는 아직도 우리 곁에 살고 있고 틈틈이 공포를 주지만, 그들은 우리를 발아래 둘 수 없다.



바퀴벌레처럼 눈앞의 먹이와 번식, 생존만을 생각했다면 우리는 몇 만 년이고 정체되어 똑같은 생활에 머무르다, 에메랄드는쟁이벌 같은 천적이 나타나면 금방 멸종했을 것이다. AI, 외계인, 좀비가 덜 번성하기만을 바라며. 공공의 적이 생기면 사람은 한 편이 된다. 피가 도는 몸을 맞대고 고민하는 순간,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던 것들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SF 소설은 우리에게 더 거대한 문제의식을 던져, 개개인 간의 마찰과 이해할 수 없는 서로를 잠깐 잊게 한다.



<좀비력 발전>에서는 좀비가 된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인간으로 돌릴 방법을 아는데도 함구하는 박사와 아들이 대립한다. 좀비를 이용하는 데 익숙해졌으니 돌아가지 말자는 생각은 아들을 당황케 한다. 박사는 아들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이 멀쩡한 인간을 노예 삼던 시대를 기억한다. 너는 그 시대를 모르잖아. 또한, <평범한 사람도 훌륭해지는 행성>에서 외계에 가서 도덕을 가르치고 모두 자기 말대로 이뤄지는 능력을 얻은 과거의 인간이 결국 최악의 독재자가 됐음을 암시하며 끝난다.



<뺨 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에서는 미래에 인간을 지배할 인공 지능 로봇에게 미리 뺨을 맞아두면 인공 지능이 복종한 인간이라고 판단해 살려줄 거라고 말하는 박사가 등장한다. 반신반의하며 뺨을 맞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을 이미 노예로 확정 짓는 태도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뺨을 맞는 대신 악수를 해도 똑같이 적용되도록 수정하자 사람들은 줄지어 악수했다. 의미는 똑같은데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이 달라지니 쉽게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선 미래를 상상하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떠올리게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같은 뜻일지라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살며 지나친 것들을 부드러운 문어 다리로 가리킨다. 우리는 불쑥 튀어나온 낯선 문어를 일단 응시한다. 문어는 웃으며 우리와 눈을 맞추고, 먹물로 그림을 그린다.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야기들은 부드럽게 다가와 우리의 생각 연료가 된다.



<기분 저장기>에서는 단 한 순간의 기분을 저장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어 원한다면 언제든, 몇 번이든 과거에 느낀 기분을 버튼만 누르면 반복해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합격 순간 등을 담다가, 남의 기분을 저장할 수 있게 기계가 해킹되자 남의 기분을 담기 위해 뛰어다닌다. 현실도 그렇다. 깨져보는 걸 허락받지 않아서 실제로 부딪치기보다 남의 후기, 남의 평가에 심하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직접 빚은 기억과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직 전성기가 안 온 것 같아 기분 저장을 망설이던 이들은 더 나은 내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와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이유기도 하다. 하늘 나는 자동차와 캡슐에 싸인 도시 대신 어릴 적 보던 만화 영화 OST 앨범과 캐릭터 빵이 재출시되는 2022년이다. 누구도 이런 미래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어쨌든 살고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혁신을 겪으면서. 여전히 지구에는 많은 희망과 그만큼의 절망이 필요하다. 우리는 최선이 아닌 세상을 살기에 최선을 꿈꿀 수 있다.



김동식 작가는 SF라는 특이한 향신료를 이용해 우리가 지금껏 나태하게 지나쳤던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톱니바퀴 같던 첫인상, 하지만 SF는 요즈음 무엇보다 부드럽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생명의 권리와 어디까지가 상호작용이고 이용인지, 우리는 과학 혁신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끝없이 생각해야 한다. 지구는 둥글다, 지금 진리가 된 말들은 예전엔 헛소리로 치부됐다. 이 책은 아직 증명할 수 없는 문제들과, 증명됐으나 소수의 똑똑한 이들 말고는 모르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은근하게 전한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지구는 둥글다. 펼쳐진 김동식의 문어발이 지구에 진득하게 달라붙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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