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
늦은 저녁, 친구의 전화가 왔다.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친구는 남자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내게 쏟아냈다. 친구의 연애는 일종의 피크닉 같았다. 서로 사랑의 수제 샌드위치를 만들고 교환해 먹는 일. 한 사람이 맛있어져라, 행복해져라. 하고 돌탑 쌓듯 재료를 올리다 보면 다른 사람은 입에 넣기 부담스럽다. 이제부터 너랑 샌드위치 교환 안 할래. 친구는 윽윽 소리를 내며 참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말하는 내내 울음이 삐져나왔다. 두 시간 동안 말하다 멈추고 울고, 말하다 멈추고 울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빠르게 괜찮아졌다. 외로움의 환승역은 연애, 사랑의 종착역은 연애인 걸까.
나는 사랑을 한 적이 없다. 연애는 몇 번 해봤어도 그들을 가족만큼 생각하거나 친구만큼 아끼지 않았다. 상대는 그때그때 달랐어도, '우리'들은 서로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철학 속에 사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자주 만나 같이 맛있는 걸 먹고, 웃긴 게 있으면 같이 봤다. 친구의 연애가 수제 샌드위치라면 내 연애는 편의점 샌드위치, 잘 쳐주면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집 출신 같았다.
영화는 폴이 애스터에게 보낼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양면성이라고 느꼈다. 만화에서 주인공이 고민할 때 마음속에 있는 천사와 악마를 그려서 표현하듯이 인간과의 양면성, 지구에서 인간들을 두고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양면성을 대사와 장면의 대비를 이용해 나타내고 있다. 양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세 키워드를 꼽아봤다. 완전함, 지옥, 클리셰.
1. 완전함
영화의 시작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이 팔이 넷, 다리도 넷, 머리 하나에 얼굴이 둘인 완벽한 형태였으나 자신을 숭배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신들이 둘로 쪼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완전함을 잊어버렸기에 늘 사랑을 갈망한다. 이 부분이 직접적인 장면으로 나타나서 좋았다. 물에 누운 엘리와 애스터 둘의 모습은 완전한 인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똑 닮은 사람만을 사랑하진 않는다. 애스터는 본인과 정반대인 폴의 모습에 안정감을 느끼고, 엘리가 쓴 편지엔 못 느꼈다고 말한다. 아예 똑같은 샌드위치를 교환할 필요는 없다.
2. 지옥
공부를 잘하는 엘리가 장학금과 아빠 걱정에 다른 지역 좋은 학교에 가지 않고 스쿼하미시에 남는다는 걸 선생님이 말린다. 스쿼하미시는 지옥이라고, 헬(hell)쿼하미시야. 애스터와의 데이트를 위해 폴에게 속성 강의를 할 때, 엘리가 지옥의 문 얘기를 한다. 세 명의 죄수가 있었으나 지옥의 문을 열어줘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폴은 그게 바보 같다고 말하지만, 엘리는 그 죄수들의 심정을 안다. 엘리가 지옥을 택하는 죄수이기 때문에.
3. 클리셰
아빠가 트는 영화를 폴과 같이 보면서, 기차를 쫓아가는 남자와 기차 안에서 눈물 흘리는 여자를 보고 엘리가 질색한다. 폴은 낭만적이잖아, 하지만 바보 같아. 진부해. 로 뭉개버리는 엘리. 그렇지만 마지막 기찻길에, 폴은 바보같이 엘리의 기차를 따라 달리고 엘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겪기 전엔 진부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전부 같은 방식으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모습이 된다.
여태 본 하이틴 로맨스 영화 중 제일 진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가장 좋았다. 대부분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내 연애와 닮아서 가볍고 자극적인 맛이 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고를 보고 이것도 그런 맛이겠거니 틀었으나, 이 영화는 모든 주인공이 각자 준비한 샌드위치인 수제 만두와 타코 소시지를 교환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먹게 된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안 맞는 유리구두에 발을 맞출 필요는 없다. 우린 한 명은 유리구두, 한 명은 스니커즈를 신고도 같이 걸을 수 있다. 모든 사랑의 종착역이 연애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