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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Feb 10. 2020

검찰수사관으로 살아간다는 것

도대체 난 뭘 가진 거죠?         '없는 거 빼고 다'

정부 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14연대 2천여 병사가 남로당 군인들을 중심으로 궐기한 여순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4·3항쟁을 진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이때 사건 가담자로 몰려 경찰로부터 총살을 당한 검사가 있었는데 광주지검순천지청 차석검사 박찬길 검사였다.


박찬길 검사는 그 당시 소신파 검사였다. 박찬길 검사가 근무하던 순천지청 관할의 모 경찰관이 무허가 벌채를 하던 민간인을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산에서 무허가로 벌채를 하던 민간인이 경찰을 보자 지레 겁먹고 도망을 갔고, 자신을 보고 무작정 도망가는 민간인을 그 경찰은 추적 끝에 총을 쏴 쓰러뜨린 후 확인 사살까지 했다.


그 사건을 맡은 박찬길 검사는 경찰관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고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당시 무소불위였던 경찰 권력은 박찬길 검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얼마 뒤 앞서 언급한 여순 사건이 발생했다. 박찬길 검사의 관할권에서 군사 충돌이 터진 것이다. 그 당시 높으신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겠지만 경찰은 이때를 틈타 박찬길 검사를 여순사건의 가담자로 몰아 총살해버렸다.<어쩌다 검찰수사관, 2019>  

   



검찰수사관제도가 만들어진 동기를 말하면서 제가 쓴 책 <어쩌다 검찰수사관>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검찰 내에 따로 사법경찰관이 없던 시기에 경찰이 검사를 총살해 버린 사건이 발생하자 검찰도 검사 외에 수사관제도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이즈음 만들어진 검찰수사관제도는 이제 70년여가 지났습니다.      


검찰수사관은 검사의 지휘에 따라, 검사를 보좌하여, 검사의 명을 받은 수사에 관한 사무, 검사의 소송업무 보좌, 기타 검찰행정업무를 담당한다.

    

경찰관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호를 위하여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경비·요인경호, 대간첩작전의 수행,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의 단속과 위해의 방지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주 임무로 한다.    


행정직공무원 은 국가 또는 지방 공공단체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사전에 나와 있는 검찰수사관, 경찰관, 행정직공무원의 풀이입니다. 일반 행정기관의 어느 말단 공무원도 국장을 보좌하여, 과장의 지휘에 따라, 이렇게 업무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중요하든 중요치 않든 독립된 자신의 업무가 분장되어 있고, 결재를 받을 뿐입니다. 공무원 직종 중 유독 검찰수사관만이 온통 검사 지휘에 따라, 보좌하여, 명을 받은, 보좌업무로 표기됩니다.


검찰청엔 검사만이 독립된 업무를 하는 공무원으로 존재하고, 나머지 검찰직원들은 모두 보조자들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검찰수사관의 업무가 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고, 시험에 응시할 당시부터 알고 들어왔으니 달리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검찰생활 삼십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이젠 좀 ‘검사보조’라는 말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푸념이지요. 이 나이면 뭐 푸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요.    




근 30여 년을 근무하면서 스쳐간 기관장만 약 30여명,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대략 제가 계속 근무한 연고지 청 기준으로 검사만도 약 200~300명가량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근무하던 검사가 이동을 하면 또 다른 검사실로 근무명령이 내려지고, 검사가 전담만 바꿔도 또 다른 검사실로 이동합니다. 검사가 1주일 이상 교육이라도 가면 다른 검사실로 보근 명령이 내려지고, 검사가 해외연수를 가면 또 다른 검사실로 이동을 합니다. 검찰수사관과 검사는 질기게도 연결되어 있으나 철저하게도 신분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검찰수사관은 최고위급 까지 승진해도, 아무리 소규모청일지라도 기관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동문회장은 할 수 있으려나요. 순경으로 들어가면 지서장이라도 하고, 행정직 공무원은 최소한 면장, 동장이라도 합니다. 검찰수사관으로 입사하면 정년퇴직 시 까지 검사라는 또 다른 세상의 무게를 견뎌 내며 결국 보좌인으로 퇴직을 합니다. 검찰수사관의 숙명이지요.     




검찰수사관 생활을 하다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가족, 얼굴도 모르는 사촌형님, 초등학교 졸업한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창이라는 사람, 이웃집 형님이 아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안부 전화면 고맙고 감사하겠지만 모두가 사건 아니면 소송, 싸움, 교통사고, 음주운전, 이런 등의 상담전화입니다.


검찰수사관이 그 모든 사건들을 어떻게 다 알거라고 그리 전화들을 해서 물어보는지. 형사사건 관련 문제라면 그래도 어찌 설명이라도 해주겠는데 민사소송, 부동산다툼, 이혼 위자료 문제는 제발 좀 안 물었으면 하는데도 답을 해줄 때까지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습니다. ‘음주운전에 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하긴 처벌받아야지. ‘술 마시다 상대방에게 맞았는데 상대방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냐?’ 어떻게 하긴 너도 한 대 때려, 경찰에 고소하던지, 그도 싫으면 그냥 꾹 참고 ‘앙까징끼’ 바르고 말던지. 답도 아닌 답을 해주기도 지겹습니다. 다행히 3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차츰 차츰 이런 전화가 줄어듭니다. 대답이 시원찮으니 전화가 줄고, 대답하는 노하우도 길러지니 전화하는 사람들이 점차 없어지는 것이지요. 검찰수사관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승진은 언제 하냐, 시청에 근무하는 아무개는 벌써 과장 달았다고 하던데 넌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몇급이냐, 뭐 사고 친 거 있냐? 내 친구 아들은 이번에 부장검사 됐다더라, 매번 만나는 친구, 선배들 그리고 부모까지 걱정 아닌 고문을 합니다. 사고 친 거 없다고, 검찰이 원래 그렇게 승진이 늦다고, 나도 언제 승진될지 모른다고, 그 친구 아들은 검사라고, 검사하고 나하고는 다르다고, 몇 번을 답해줘도 만나면 또 물어봅니다. ‘너 오십대 중반인데 국장 달았니?’ 국장이 뭔데. 된장, 고추장은 알아도 국장은 뭔지도 모른다. 이런걸 겪고 낼 모레 정년이 되어야, 그리고 그 사람들이 포기를 해야, 그 물음도 끝이 납니다. 검찰수사관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천지는 만물에 있어 좋은 것만 다 가질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뿐이다.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구름은 쉬 흩어진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다. 기특한 재주와 빼어난 기예로 뛰어나게 되면, 공명이 떠나가 함께하지 않는 이치가 그러하다.’<이인로 파한집>    


좋은 것만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난 뭘 가진 거죠?  ‘없는 거 빼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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