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손꼽히는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비친족 타인에 쉽게 유사친족 호칭을 사용하고 그러한 관계를 맺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화는 '나라'의 문화라기보단, '민족'의 문화인데(여기서 민족은 남북 분단 이후의 남한 민족주의를 가리킨다.), 중국과 일본, 북베트남 및 북한 등 같은 유교문화권으로 분류되는 민족국가들 사이에서도 우리나라는 독특하리만치 유사친족을 맺는 빈도가 높다. 유사한 문화를 가진 남미와 유럽권 카톨릭 문화는 '대부, 대모' 관계에 있어 일종의 '계약'을 맺는 명시성이 있어, '은근슬쩍' 친밀성을 쌓아가는 한국문화와 차이가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종종 유사친족 호칭이 사용되지만, 이때 유사친족 관계는 '어버이 수령', '어머니 당' 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듬뿍 담겨있어 자생적 문화라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념이야 어쨌든 불특정 타자에 대한 2인칭 표현이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에서 동무, 동지라는 표현은 매우 간편하겠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정과 친족을 기본으로 해서 마을, 지역, 공동체, 국가, 국제질서 단위로 확장되는 도덕을 기본 이념의 하나로 하는 유교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사친족 호칭과 관계의 문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차라리 '시골 문화'의 일부로서 마을 및 지역 공동체에 공동 거주하는 유사친족에게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경우 공동체 단위가 '비친족 타인'이 아니라 정말 '유사친족' 혹은 '친족'에 가깝기 때문에, 유사친족적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되려 정확한 것에 가깝다. 문제는 이촌향도와 도시화, 근대화 및 선진국화가 충분히 무르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문화가 지속되는지에 있다. 실제로 '시골' 단위 생활을 청산하는 고도 발전기를 지난 옆 나라 일본은 유사친족 문화가 거의 사멸되었다. 일본에서 비친족 타자를 부르는 일반 호칭은 상대의 지위의 고하, 귀천을 막론하고 "すみません"으로 통일되었고, 특별히 친한 상대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가족이라는 표시를 호칭에서 빼지 않는다(홍민표, 2019: pp. 176-177).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설사 시골이라 할지라도 애초 이러한 문화가 일반적으로 부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국 공통으로 비친족 타자를 호명하는 '아저씨, 아줌마'(비하의 의도가 없는) 정도에 해당하는 표현들이 존재한다.
왜 한국에는 유사친족 문화가 유별나게 발달해 있으며, 이 문화의 효과는 무엇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언어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의 두 가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둘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지만 말이다. 우선 사회언어적 측면에서 한반도의 성씨와 이름 짓기의 특성으로부터 비롯한 문제가 있다. 일본의 경우엔 서양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게 성씨가 제2의 이름 역할을 할 만큼 다채롭고 여기서 비롯한 ‘呼び捨て’라는 성씨와 이름을 활용한 독특한 호칭체계가 있다. 중국은 가장 많은 성씨가 전체 인구의 7~8%에 불과해 여러 성씨를 골고루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김 씨만 전국의 21.51%(2015년, 통계청)을 차지하고 상위 5개 성씨의 비율은 전체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이 인구학적 조건은 일본처럼 성씨와 이름의 거리감으로 친소를 구별하는 체계나, 중국처럼 ’성+일반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언어적 가능성을 차단한다. 우리나라에서 ’김씨‘나 ’김씨 아저씨‘는 비하적인 표현이고, 여기에는 성씨와 이름이 호칭에 있어 엄격히 구별되는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씨는 이름의 확장처럼 여겨 손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유교 문화가 성씨에까지 미친 것이라 추정한다. 예절의 문제 이전에 그런 호칭으로는 누구를 부르는 건지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적 측면은 우리나라가 독립 내지 광복과 한국전쟁 및 분단을 맞이한 이래 '모두가 공평하게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겪었다는 발전론적 서사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급진적인 근대화로 인해 유사친족을 맺던 '시골 문화'가 채 해체되기도 전에 도시화가 진행 및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혹은 이러한 유사친족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의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집단주의적 끈끈함이 조직의 성과를 좌우하니 빈틈없이 똘똘 뭉치는 게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 얼굴을 맞대는 공간에서 직함이나 직위 등 대체 호칭이 없거나 애매한 경우 유사친족적 호칭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받았고, 심지어는 대체어가 있어도 유사친족 관계의 실질을 유지하곤 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씨가 이름의 역할을 못한 것도 한몫한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에 성씨의 발달과 대중으로의 확산 과정을 중시하겠지만(이 과정이야말로 우리나라 성씨 편중 현상의 해설의 단초를 제공한다) 20세기 초만 해도 신분제의 잔재가 견고한 형태로 산재했었고 20세기 중반의 발전론적 서사로의 전환이 없었다면 지금의 상태로의 변곡점은 어려웠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의 문제는 발전론 이전이 아니라 그다음 세대에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어느새 '족 같은 분위기'라며 조소를 받고, 개인(특히 상대적 약자)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하고 회피하는 개인주의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거대도시에 걸맞은 초집단주의, 초공동체주의적 세계시민의 탄생이다. 이때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끼리의 갈등은 한국식 발전 서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구구조의 허리를 담당하는 '부모세대' 이상만 해도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해 '할머니/어머니/이모/아가씨'가 자연스럽다. 그 호칭을 듣는 당사자 중 일부, 특히 젊은 세대가 기분 나빠한다. '가족같이' 생각해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무안해한다. 이것의 반복...
내가 생각하는 문제 지점은 유사친족 호칭의 사용으로 비친족 타인을 친족관계로 편입시키려는 욕망이 한국문화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호칭은 관계의 실질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사친족의 관계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거나 그 발전주의의 뿌듯함을 대변하던 시기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친족끼리도 가족같이 못 지내는 시대에는 어색하기만 하다. 관계를 앞지르는 호칭이 물질적 수완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가족 같은 회사'는 노동법 잠탈로 이어지기 쉽다. '형님, 형님' 듣다 보면 진짜 가족에서는 평생을 막내처럼 지내온 사람도 왠지 손윗사람 노릇하며 한 턱 내야 할 것 같다. 대뜸 '이모, 삼촌, 누나, 언니' 부르는 사람의 마음에는 '공짜 서비스'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다. '오빠' 소리 하다 보면 여성은 챙김 받기만 하는 존재로 머물게 된다.
본래 가정의 법도이자 수직적 위계질서의 최적화된 안정감을 주창한 유교문화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끼리의 문화였다. 그 권력의 문화를 불특정 타자와 어우러져야 할 사회로 가져오면 어려움이 생긴다는 말이다. 출생 순서에 민감한 것 역시 상속을 기반으로 한 형제의 문화였다. 자원 분배에 대한 인류학적 통찰인 것이다. 나눠가질 자원도 없거나 그 방법이 법규로 정해져야 할 비친족 타자끼리의 법도가 아니다. 물론, 피로 맺어진 것 이상의 실질적인 관계를 비친족 타자와 만들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이들의 관계는 어떤 이데아적 울림이 있다. 그러나 이데아의 본질은 현실에 구현하기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인류가 갈망해 온 관계는 그곳에 있겠지만, 현실은 그것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참고문헌>
홍민표, 2019, "유사친족호칭의 사용실태에 대한 한일대조연구", 日本語學硏究 no.60, pp. 165-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