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상
오랜만에 아주 좋은 영화를 봤다.
개인적으로 박찬욱을 봉준호보다 높게 치고 좋아한다.
봉준호는 사회학과 출신답게 사회적인 것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박찬욱에게 사회는 개인에게 걸려있는 제한 정도에 불과하고, 결국 이야기를 이끄는 건 개인의 충동과 선호 등이다.
이 영화를 봉준호의 <기생충>과 비교하는 경우가 좀 있는 거 같은데, 감독 스타일에 따라 작품이 많이 다르므로 비교해보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만수인지 만수르인지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는 25년 동안 한 직장, 한 분야에서 일을 하여 내집마련도 하고 가족도 생기고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아침에 실직한다.
고임금의 숙련 노동자여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유지하던 그와 그의 가족들이 순식간에 형편이 안 좋아지는데, 이 모든 것은 만수와 그의 가족들이 가장의 임금에만 유지하는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가장의 노동력으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생충의 가족과 다른 점이다.) 노동자 계급의 특징답게 자본의 축적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임금이 끊기자마자 생활상이 추락해버린다.
만수는 7080년대 수준의 노동의식을 가지고 있어, 일종의 장인정신일지는 몰라도 숙련 노동자들끼리 뭉쳐서 자신들의 노동력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정년과 임금만 보장된다면 노조할 권리를 포기하는 협력 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지 공장 관리직 이외에는 먹고살 길을 생각도 못하는(못하도록 되어버린) 사람으로, 쁘띠-부르주아 같은 재테크 돈놀림 하나 없이 내집마련을 한 한국에서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만수는 그의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재취업을 희망하는데, 어설프게 경쟁하며 새출발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동종업계 경쟁자만 없애면 자기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란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차례차례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가족과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나가고 기존의 '가부장' 인격을 지키려 하는데, 실상 일련의 살인사건들은 만수의 심리적인 만족감만을 구성할 뿐 '문제해결(재취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설프고 도덕적 역겨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건의 살인사건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전에 희생시킨 목숨들이 그냥 '아까워서' 진행되는 '면접'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경쟁에서 가장 역할을 수호하는 결론에 이르도록 만수의 심리상태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실제 사건으로 보자면 너무나 어설프게 이루어지고 경찰들이 거짓말 몇 마디에 넘어가는 모습에 살인사건은 실제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만수의 인격에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성민이 연기한 인격은 (오랜 실직 생활에 무기력하며) 제지 공장 재취업에 미련을 가지고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하는 불통의 자기 자신이고, 차승원은 중간관리직 이상으로 일하며 고임금을 받아 (딸에게 비싼 음악 교육을 시키는 등) 사회적 체면을 가지고 있던 자기 자신이고, 박희순은 (술을 좋아하는)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가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셋을 모두 죽여 가장이라는 '사회적 인격'을 회복하는 것이 일련의 플롯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너무 딥하게 정신분석학적으로 가는 것은 잘 동의하지 않고, 비유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으나 그 경우에도 만수의 내면 심리, 즉 '자기 자신과의 면접'을 위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보다는 설득력 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만수의 젠더인데, 가부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만수가 남자여야만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남성성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그것에 의미를 되살리며 심지어는 일정 부분 위로까지 건냈다는 것이다.
가장이 아닌 남자, 가장이 아니게 된 남자는 비참하다. 이건 개인의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가 경제력 없는 남자를 남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영화가 판치는 가운데, 여성의 성공 스토리, 자존감 채우기 스토리를 홍보하는 내용은 쌔고 쌨지만, 이들이 성공적으로 가족을 책임진다는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여성은 어디까지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뿐, '가장'의 역할을 떠안지 않는다. 이런 성향이 심리적인 건지 사회적인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별짓거리 다하면서 편하게 사는 가족구성원들이 한순간에 사회로 내몰려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 가족 전체가 불행해진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어보여도 사실이다.
가장이라는 책임은 임신할 수 없는 남자의 책임감이다. 그리고 가장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없을 때 남성성이 위협받는다는 건 당연하다. 임신할 수 없는 여성에게 궁극적인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과 같다. 가족의 경제생활을 주로 책임질 수 없는 남자들은 거세된 것과 같은 감각을 가진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만수는 '가족을 지키는 전쟁'에 빙자해 자신의 남성성을 지키고자 분투한다. 보고 있자면 애잔하며, 이 영화가 만수 가족에게는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만수의 와이프가 결국 배신하지 않고 만수의 잔인한 행동까지 품고 믿어주고 비틀린 '가족애'로 장면 가득 채워지며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만수는 다시 자신의 '남자다움'에 환호성을 지른다.
이렇게 유지되는 가부장제는 '남녀평등' 같은 허울좋은 구호로는 대체될 수 없다. '가모장'과 같은 것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몇몇 여자들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신체구조에서 오는 자연적인 특질, 여성만이 임신할 수 있고, 주로 남자의 노동력이 더 쓸모 있다는 점에서 오는 불가결한 사회구조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박찬욱 영화 중 가장 사회적이었고, 제목값을 하는 것이었다. '어쩔수가없다.'
물론 만수의 문제해결 방식은 전혀 어쩔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애초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있는 개인의 어쩔 수 없는 행동.
그러나 사회가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해서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만수가 옳거나 그르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만수는 그냥 그렇게 되어 있는 인물인데, 자신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인 것이라고 퉁치기엔 만수는 너무나 개인적인 인물로, 자기 자신과 그 가족 이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무신경하고 무감각한 인물이다. 어떤 구호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나오지 않고, 사회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자신의 심리적 만족감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소설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외국 소설 원작임을 발견했다. 어쩐지 제조업 장인이 아파트도 아니고 마당딸린 주택에서 호의호식하더라고.. 한국 감성은 아니었다. (비오는 날 집에 신발 신고 들어가는 것도...)
공장 들어가면 인생 끝나는 줄 아는 기생충 가족들이 진짜 한국 감성이라면 한국 감성이지.
아무튼 오랜만에 의미 있는 영화를 봐서 재미가 있었다~
이런 영화들이 자주 나와준다면 한국 영화를 계속 좋아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