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유한 내면을 만나는 전시
공예, 가구, 일러스트, 회화, 설치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기획 전시를 선보여 온 갤러리 오브제후드. 부산의 수영강변에 자리 잡아 예술이 일상에 스민 풍경을 만들어 온 오브제후드가 기장군의 아난티 코브로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3일, 오브제후드 재개관전 <본질을 찾아서: FIND TO NATURE>의 오프닝과 함께 갤러리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됐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표현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들려온다.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과 거기에서 오는 쾌락에 익숙해진 인간이 멈추지 않고 새로운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자극으로 가득한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그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의 근본적인 의미를 잊은 채 정처 없이 떠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모습이다. 이런 순간 필요한 것은 자극과 혼란의 틈을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원래의 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균형을 찾는 시간이다. 소란함에서 잠시 눈을 돌려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오브제후드는 이번 전시로 나의 심연에 귀 기울여 보는 순간을 선사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이시산, 윤위동, 김동형, 한재혁 네 작가는 물성과 의미를 바탕으로 실존하는 자연과 실재하는 현상 그 속에 숨어있는 본질의 의미를 각자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관람객이 자신의 고유한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함께 한다.
건축용 자재인 아크릴릭 필러와 한지를 사용하여 비움과 채움에 대한 작업을 전개하는 김동형, 본디 모든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극사실주의로 그려내는 윤위동, 스테인리스와 자연에서 발굴한 돌을 활용하여 가구를 만드는 공예가 겸 설치미술가 이시산, 한지의 제작 과정을 역행하여 재료를 만들어 관객의 성찰과 깨달음을 끌어내는 한재혁. 네 아티스트의 작업은 집요하게 본질을 탐구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닮았다.
오브제후드의 류경 디렉터와 신가영 큐레이터는 <본질을 찾아서: FIND TO NATURE>의 기획 의도와 갤러리의 새로운 시작에 담긴 더 풍성한 이야기를 전했다.
― 푸른 중정이 인상적이었던 오브제후드가 기존에 머물던 수영강변을 떠나 이제는 푸른 바다를 마주한 기장의 아난티 코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봄의 시작과 함께 오브제후드가 재개관했어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대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류경 일상에 예술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오브제후드의 방향성에 맞추어 아난티 코브로의 이전은 또 한 번의 새로운 발돋움이라고 생각해요.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뒤로는 산이 어우러진 지리적 특성을 가진 이곳은 국내외 다양한 지역에서 매년 수많은 여행객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죠. 저희는 여행의 시작을 예술과 함께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드리고자 해요.
― 여행이 공간의 주요한 키워드일까요?
류경 제게 여행은 특별한 순간을 조우하는 시간이자 영감을 충전하는 시간이에요. 제 여행길엔 늘 미술관과 갤러리가 포함되어 있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작품들은 제게 치유와 치환의 과정을 선사해 주었어요. 이러한 값진 시간이 쌓여 오브제후드를 만들게 됐고요. 이곳을 찾는 분에게도 ‘여행(Journey)’이란 일상의 틈에 오브제후드의 공간과 전시가 더해져 또 다른 형태로 여행을 기억할 수 있길 바라요. 현재에 집중하며 나를 돌아보는 환기(Refresh)의 순간을 만나, 새롭게 사유하고 영감을 얻는 시간으로 남길 기대합니다.
― <본질을 찾아서: FIND THE NATURE> 전시는 오브제후드의 재개관전인만큼 더욱 공을 들였을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를 첫 기획전으로 선정한 이유는요?
신가영 새로운 공간 준비를 하며 앞으로 어떤 전시를 선보이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방향성을 고민할 때면 언제나 초심을 다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오브제후드가 처음 개관할 때 지향햤던 가치를 들여다보았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에 휴식과 여유를 동반한 예술을 선사한다는 그 마음을 새로운 공간에서도 전하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 역시 오브제후드가 추구하는 가치의 본질에서 출발했습니다.
작년부터 꾸준하게 들려오는 이슈에도 주목했어요. 불경기부터 충격을 안겨주는 각종 사회 문제까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과도한 피로감이 쌓인 것으로 보였어요. 불필요한 피로감은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과 생각을 흐리기 마련이죠. 그럴수록 스스로를 다잡아 균형을 찾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혜안을 얻기 위한 해답은 모든 생명의 근본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본질을 떠올리며 자기 내면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본질을 찾아서: FIND THE NATURE>라는 전시명에는 이러한 기획 의도가 담겨있어요.
―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보며 하나의 가치를 이뤄내기 위해 묵묵히 수련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신가영 기획전에 함께한 김동형, 윤위동, 이시산, 한재혁 네 작가는 모두 인위와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합니다. 자연에서 얻은 소재를 작품에 녹여내죠. 한지, 모래, 돌처럼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자연물이 네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는 거예요. 전시를 보시는 분 모두 알게 모르게 일상에 스며든 부정적인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 하시길 바라요.
― 공간을 기획하며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류경 오브제후드는 언제나 어떤 것과도 단절되지 않는 소통의 공간이 되길 추구합니다. 소통이라는 큰 방향을 가지고 외부와 내부가 분리되지 않도록 공간을 디자인했어요. 소통을 제한하는 경계나 구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지향한 거죠. 전면에는 창을 배치해 갤러리 내부에서는 외부에 면한 드넓은 바다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또한 외부에서도 공간 내부를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삶에 녹아있다는 것을 공간으로 그려냈죠.
― 전시에 참여한 이시산 작가는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함께 했다고 들었어요.
류경 맞아요. 이시산 작가가 이끄는 프랙티스스튜디오가 공간 디자인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의 작업 방식처럼 공간을 구축할 때도 조형미를 추구하면서도 공간의 개별적 고유성을 잘 나타내주었어요. 특히 마감 소재를 최소화한 점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새하얀 캔버스 위에 작품을 시작하는 것처럼 다채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품을 수 있도록 신경 썼죠. 전반적으로 자연과 어울림, 전시 공간의 기능성,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계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 오브제후드는 그간 동시대의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감도 높은 전시를 펼쳐왔죠. 갤러리로서 추구하는 앞으로의 여정이 궁금합니다.
류경 오브제후드는 계속해서 ‘예술의 본질’을 전달하는 소통의 창구이자 메신저가 되고자 합니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예술의 기능에 있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요. 예술은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이는 예술이 가진 순수한 본질이에요. 이를 통해 나와 상대방, 내가 속한 사회와 공간, 그리고 자연과 환경에 대해 더욱 깊이 사유하며 이러한 과정의 끝에서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게 되죠.
메신저로서 오브제후드는 동시대 아티스트를 위한 전시 기획과 더불어 작가 후원 레지던시, 예술을 통한 치유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와 소망이 있어요. 우리 삶 더 깊숙이 예술이 함께할 수 있도록 오브제후드만의 속도로 나아가려 합니다.
― 앞으로 어떤 전시가 진행될 예정인지 살짝 귀띔해 주신다면요?
신가영 다음 전시로 오브제후드 전속 아티스트인 김혜영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로움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고독, 고립을 주제로 빈집과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있어요. 동양의 재료와 유화로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 특유의 거친 풍경 속으로 관람객을 초대하죠. 조금 더 몰입도 있는 전시로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계속해서 새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니 편하게 찾아 향유해 주세요.
― 다시 시작하는 오브제후드를 찾는 분들이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세요?
신가영 올 한 해는 쉼이 되는 예술을 기반으로 나에 대한 사유, 삶에 대한 고찰, 주변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생각해 보는 기획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사고를 멈추는 단순한 쉼도 좋지만, 휴식을 하며 생각의 회로를 바꾸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환기가 될 거예요. 외부로 향해 있던 불필요한 사고와 사유를 내면으로 방향을 틀어 스스로를 다지는 거죠. 이처럼 갤러리에서 나의 본질을 만나는 값진 휴식을 경험하고 돌아간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본질을 찾아서: FIND TO NATURE>
주소 |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268-31 아난티코브 상가 1층, 오브제후드 갤러리
전시 기간 |2024.04.13 - 05.03
운영 시간 | 매일 11:0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