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온도>전
디자인, 예술, 공예가 일상에 온전히 스며든 모습을 선보이는 전시 <일상의 온도>가 에임빌라 라운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변화하는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소개해 온 ‘오브제후드 갤러리’와 빈티지 가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에임빌라’가 공동 기획했다. 전시를 기획하는 삶을 살아가고,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두 팀의 소소한 대화는 이번 전시의 모티프가 된다.
오브제후드와 에임빌라는 ‘우리의 일상에 예술, 디자인, 공예가 더 많은 사람에게 편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은 없을까?’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한다. 바로 공예, 회화, 디자인 가구 등 예술이 우리 삶 속에 무척이나 가까이 와있다는 것. 그들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디자인과 예술을 일상생활에서 누리며, 그것을 사용하고 바라볼 때의 즐거움을 모두와 나누고 싶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었다.
화이트 큐브의 갤러리는 들어서는 순간 세상과 단절어 작품의 오라Aura로 가득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순백색의 벽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환경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보이지 않는 유리 벽과 흰색 가벽으로 채워진 정제된 세계에서 아티스트의 작업을 조명하는 일을 잠시 내려 놓는다. 대신 오롯이 일상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며 작품이 나의 삶과 공간에 녹아 들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의 온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서로가 느끼는 온도는 어떨지 화이트 큐브 틀 밖에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생활이 스민 일상 공간이라는 점에서 에임빌라 라운지는 그 어느 전시장보다 적절하다. 이곳은 에임빌라 정계원, 이경신 대표가 실제 신혼집으로 사용했던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다. 삶의 온기가 묻어나는 이곳에는 이들의 취향이 한껏 담겨 있다. 따스하고 실용적인 매력을 가진 핀란드, 덴마크 북유럽 가구와 개성 강하고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브라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1960~1980년대 빈티지 컬렉션들이 마치 나의 집에 자리 잡은 것처럼 자연스레 연출되어 있다.
특히 본 전시에서 에임빌라는 알바 알토Alvar Aalto와 같이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빈티지 가구 외에도 여러 시대에 걸친 디자이너 미상의 가구를 재조명한다. 대표적으로 덴마크에서 제작된 ‘이름 없는(unknown)’ 의자가 있다. 이 가구는 은은한 다운 핑크 컬러와 포근한 조직감이 매력적이며 황소의 뿔에 해당하는 헤드 부분과 등받이의 버튼 간격 그리고 팔걸이 부분 시트의 비례까지 전체적인 비율과 디테일이 상당히 멋스럽다. 이름 없는 의자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접한 크리에이터들은 여기에 각자의 해석과 개성을 더해 또 다른 신선함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작업은 특정 시대의 디자인 사조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디자인 가구 외에도 예술, 공예 작품이 일상 속 공간에 스며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대표적으로 2인조 아티스트 쉘위댄스의 작업은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 넣는다. 가정용 장식품을 만드는 이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접점이 만들어내는 정취에 관심을 두고 재료의 물성을 이용해 그 접점을 분재화한다. 주변의 나른한 움직임, 잉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 쉘위댄스 작업은 ‘미약한 기능을 가진’이란 범주 안에서 빛과 바람이 흘러가는 순간, 주변의 불완전한 상황들을 매듭지어 나가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의 과정을 반복한다.
옻칠 텍스처가 인상적인 강정은 디자이너의 오브제도 공산품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브랜드 ‘VONZ’의 설립자로서,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 공간과 감정의 풍요로움을 끌어내는 오브제 작업을 한다.
오브제를 이용해 ‘공간의 풍요로움’을 창출하고, 그 공간을 접하는 대상을 ‘감정의 풍요로움’으로 유도한다. 물리적으로는 유리에 옻칠과 자연 소재(볶은 나뭇 가루, 흙, 두부, 종이, 금박, 염료 등)를 섞어, 반복적으로 쌓고 갈아내는 과정으로 독특한 텍스처를 표현한다.
강민성 작가의 달항아리는 시대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매력이 엿보인다. 작가는 “맨 처음 달항아리를 보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힘을 느꼈다. 그저 나도 만들어보고 싶고, 가져보고 싶고, 궁금했다. 그래서 나만의 것을 찾으려 만들기 시작했다."라며 작업 동기를 전했다.
어떠한 사물을 사용하며 생기는 행동 패턴이 곧 습관이 된다. 스튜디오 유릴리는 ‘제자리’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사물을 들이면서 생기는 새로운 습관, 경험을 일상에 유도한다. 화병과 받침대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형태 그 자체가 오브제가 되며 비로소 있어야 하는 곳, 두 사물이 맞물리는 곳이 ‘제자리’가 되는 것이다.
제자리 시리즈는 상단 화병과 하단 받침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유리로 제작된 상단 화병은 꽃이 담기는 부분을 제외한 상, 중, 하부의 구조를 동일한 색감으로 구현하기 위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다. 하단 받침대는 경기도 포천에서 나오는 포천석으로 우리에게 건축 토목용 재료로 익숙한 화강석이다.
오브제후드가 큐레이션 한 9명의 아티스트는 한자리에 모여, 우리 삶에 소소한 행복을 더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살아가면서 맺거나 스치며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캔버스로 옮겨 담은 김인혜 작가의 회화 작품을 시작으로,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진 기물들을 선보이는 공예 작가 김동완, 강정은, 강민성, 박나혜, 스튜디오 유릴리, 쉘위댄스, 정수경, 허이서의 다채로운 오브제가 일상의 감도를 높인다. 이들의 오브제엔 쓸모가 더해지며 생활 속 공예를 완성한다. 집에 고이 모셔두는 공예품이 아닌 일상에서 함께하는 기물이라 할 수 있다.
살펴본 것처럼 <일상의 온도> 전시는 오브제후드와 에임빌라 두 팀의 작은 물음에서 시작됐다. ‘일상에 예술, 디자인, 공예가 더 많은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은 없을까?’ 이들이 던진 질문에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부터 동시대에 주목받는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가 각자의 대답을 공간에 펼쳐 놓는다. 생활의 감도를 더하는 다채로운 풍경이 궁금하다면 지금 전시를 찾아보자. 전시는 오는 3월 17일까지.
<일상의 온도>
기간 | 2024년 1월 25일 - 3월 17일
운영 시간 | 수요일 ~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 화 휴무)
장소 | 에임빌라 라운지(부산 해운대구 좌동순환로 420 2층)
참여 작가 | 김인혜(회화), 김동완(공예), 박나혜(공예), 허이서(공예), 강정은(공예), 강민성(공예), 스튜디오 유릴리(공예), 셀위댄스(공예), 정수경(공예), 녹지(플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