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윤병주의 삶과 취향이 담긴 공간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 앞. 무채색 건물의 창문에 忘憂森林(망우삼림)과 20世紀印刷事務室(20세기인쇄사무실)이 선명한 붉은색 한자로 쓰여있다.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이름만으로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두 곳은 사진작가 윤병주가 운영하는 현상소와 인쇄소이다. 하지만 단순히 현상소와 인쇄소라는 업종명만으로 이 공간들을 소개하기엔 부족하다. 을지로 한복판에 자리한 윤병주 작가의 공간에선 더 많은 사람이 사진이란 매체를 향유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고민한 흔적이 깊이 묻어난다.
망우삼림과 20세기인쇄사무실. 공간의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두 곳은 윤병주 작가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20세기인쇄사무실을 논하려면 망우삼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망우삼림을 논하려면 윤병주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 공간에서 확인할 수 없는 무형의 콘텐츠와는 별개로 두 공간을 채우는 사물들 하나하나엔 유년 시절부터 이어온 윤병주 작가의 시간과 경험이 담겨 있다. 20세기. 어린 시절 그가 마주한 시대의 낭만, 그리고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삶의 결핍. 작가의 내면 안에 겹겹이 쌓인 시간은 오늘의 망우삼림과 20세기인쇄사무실 채운다.
Interview with
— 20세기인쇄사무실과 망우삼림을 소개하려면 윤병주 작가님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죠. 소개 부탁드려요.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서른 살에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후 5년간 여러 공모전에 당선됐고 개인전도 몇 차례 열만큼 사진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죠. 사진은 제가 정말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일이란 게 녹록지 않더군요. 미술계에서 하는 작품 활동이 수입으로 연결되진 않았어요. 작업을 지속하기엔 경제적인 어려움이 늘 따라다녔죠. 힘겹게 작가 생활을 이어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결국 돈을 벌어보고자 현상소를 차린 거지요. 그 가게가 지금의 망우삼림입니다. 2018년의 일이에요.
— 망우삼림은 필름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 잘 알려진 공간이 됐죠.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하필 필름 현상소를 열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스튜디오처럼 상업 사진을 찍는 일이 가진 기술을 활용하기엔 가장 좋았지만, 적성에 잘 안 맞더라고요. 제가 호기심이 있는 대상을 촬영하며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구현하는 예술 사진은 상업 사진과 결이 많이 달랐어요. 상업 사진은 의뢰한 분이 원하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그게 심적으로 부담감이 상당했습니다. 적성을 살리며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고민하던 찰나에 필름 현상소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살려보기로 했어요. 당시 주변 동향을 살폈을 때 필름 사진에 관심 있는 분이 늘고 있었거든요. 하나의 작업을 며칠간 끌고 가는 형식이 아닌 하루 단위로 업무를 끝내는 작업 방식도 좋았습니다. 저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 며칠씩 작업 기간이 주어지면 끝까지 미루다가 닥쳐서 일을 마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제 성향을 아는 만큼, 오늘 받은 필름은 당일 스캔해 주는 것으로 바로 마감하는 현상소가 좋겠다 판단했죠. (웃음)
— 망우삼림(忘憂森林)에는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이란 뜻이 담겨 있죠?
네이밍을 이야기하려면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웃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주신 500원, 1,000원으로 비디오를 빌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특히 홍콩 영화를 학창 시절 내내 볼 만큼 좋아했어요. 친구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 저는 늘 동양권의 영화만 본 거죠. 그러다 보니 선망하는 배우도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가 아니라 양조위, 장국영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취향을 쫓았던 것 같네요. 홍콩을 가본 적도 없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네 글자로 된 네온사인 간판들은 제게 그 나라의 상징처럼 각인됐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내 공간이 생기면 네 글자로 된 네온사인 간판을 달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간이 흘러 2018년에 망우삼림을 열며 이를 실현한 거예요.
한자 네 자로 지을 수 있는 이름을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현상소’ 하면 으레 떠오르는 OO 사진관, OO 필름, OO 스튜디오처럼 이름 짓고 싶진 않았죠. 현상소로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나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온갖 사전도 살펴보고 홍콩 영화도 다시 찾아봤는데요. 고심하던 찰나에 떠오른 게 대만 난터우 산림시에 있는 숲, 망우삼림이었습니다. 망우삼림은 전에 만난 여자 친구 덕분에 알게 된 곳이에요. 당시 그 친구가 힘든 일이 있어 이를 이겨내고자 대만에 다녀오겠다고 하더군요.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숲이 대만에 있다는 게 이유였죠. 망우삼림은 한국에 잘 알려진 장소는 아니고 대만에서도 인기 관광지는 아니에요. 저도 가봤는데 특별한 게 있진 않았습니다. 나름 제겐 재미있는 추억이고 현상소 이름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거죠.
— 겹겹이 쌓인 기억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네요. 사진은 보통 기록을 위한 매체잖아요. 망우삼림은 오히려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현상소의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맞아요. 사진은 일반적으로 기억하기 위한 매체로 쓰이죠. 그런데 저는 사진의 본래 목적에 물음이 생기더라고요. 헤어진 연인을 잊고자 함께 남긴 사진을 찢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어놔도 기억에서 잊힐 수도 있고요. 들춰보기 싫은 사진도 있기 마련이죠. 지난 경험을 떠올려보니 사진의 역할이라는 게 꼭 기록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종의 역설적인 기능이 망우삼림에 담긴 뜻과 잘 맞닿아 있는 것 같았고, 제가 고집한 네 글자 네이밍과도 딱 맞아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 을지로에 터를 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포와 인쇄소를 비롯한 여러 제작소, 그리고 대림상가까지. 지금처럼 트렌디한 상업 공간은 없었지만, 미술계에 있는 친구들은 이미 10년, 15년 전부터 을지로를 흥미롭게 생각했어요. 저도 20대 때 사진 작업을 하며 자주 놀던 곳이 을지로였습니다. 친구와 대림상가를 비롯해 을지로 일대 아카이빙 사진 작업도 하며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만큼 익숙하죠.
사진 작업을 내려놓고 자영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장사를 하게 되면 미술은 영원히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죠. 주변의 많은 선배가 순수 미술에서 상업 분야로 길을 틀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했거든요. 한 3개월을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을지로로 저를 불러냈습니다. 커피 한잔 사줄 테니 그만 고민하고 일단 나오라고 하더군요.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날따라 일단 나갔습니다. 원래 약속 장소는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앞이었는데 그 출구가 제가 지하철에서 내린 위치에서 가려면 꽤 걸어야 했어요. 지하로 계속 걸으면 공황이 올 것 같아서 당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11번 출구로 나갔죠. 밖에서 걸어가야겠다는 심정으로요. 그렇게 11번 출구로 나왔는데 그 앞에 지금의 망우삼림 건물이 있었어요. 창문에는 ‘임대’라고 선명히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요. 그런데 그 창문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꿈에 그리던 모습이었거든요. 창문을 보자마자 망우삼림 네온사인 간판이 붙어있는 공간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현수막에 적힌 건물의 평수나 위치 같은 정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죠. 약속 장소도 아닌 출구로 우연히 나왔다가 이 건물을 만난 거예요. 그날로 다른 공간은 알아보지도 않고 자금을 마련해서 계약까지 했습니다.
— 망우삼림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특유의 공간 분위기가 압도적이에요. 원색적이면서도 어딘가 빛바랜 분위기. 현상소 이상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자취를 시작한 20살부터 이 가게를 차리기 전까지 제 자취방은 망우삼림과 똑같았습니다. 살던 집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거예요. 요란한 커튼부터 온갖 소품까지. 집을 가게의 형태로 치환한 것이죠. 미술 작품으로 나를 표현해 왔던 것처럼 공간으로 자아를 표현한다는 마음으로 망우삼림을 꾸렸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 같은 공간이죠.
망우삼림은 현상소이자 살롱이 되길 지향해요. 여기를 준비하며 현상소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떠올려 봤어요. 당시 대다수의 손님이 현상소에 오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돌아갔죠. 분명 카메라나 필름에 관해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공간의 분위기가 그게 아닌 거예요. 현상소 입구 앞에 카운터만 딱 놓인 모습 아시죠?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때 아쉬웠던 기억을 망우삼림에서는 해소하고자 했어요. 공간 자체가 광장의 역할을 했으면 싶었죠. 테이블도 몇 개 가져다 두고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림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요소가 모여 망우삼림을 다른 현상소와는 조금 다르게 평가해 주시는 것 같아요.
— 윤병주 작가님의 두 번째 공간이죠? 인쇄소 겸 카페 20세기인쇄사무실이 망우삼림 바로 위층에 문을 열었습니다.
오랜 준비 끝에 2023년 11월 문을 열었어요. 건물의 4층에 있는데 사실 이 자리를 계약한 지는 4년이 넘었습니다. 망우삼림 업무가 정말 바쁘기도 했고, 무언가 여기서 해보고 싶긴 한데 섣불리 시도하기가 어려웠어요. 망우삼림에 대한 기대치가 있으니 두 번째 공간을 함부로 열지 못하겠더라고요. 몇 년째 월세만 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뭐라고 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게 20세기인쇄사무실이에요.
— 인쇄소라고 하기엔 종이도 별로 보이지 않고 알쏭달쏭한 분위기입니다.
사진 앨범을 생각하며 20세기인쇄사무실을 시작했어요. 저희 세대와 제 윗세대는 늘 사진을 인화했어요. 그걸 앨범에 꽂으며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었죠. 이게 경험해 보면 정말 즐거워요. 아이폰에서 추억이라며 예전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도 반가운데, 시간이 지나 종이 앨범을 들춰보는 경험은 그 이상으로 소중하죠.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매체입니다. 많은 현상소 사장님이 동의할 거예요. 하지만 누구에게도 경험해 보라고 권하지 못할 겁니다. 돈이 들고 귀찮은 일이니까요. 굉장히 소모적인 일인 거죠. 현상한 필름조차 찾아가지 않는 시대인걸요.
그럼에도 제가 앨범에 사진을 모으고 시간이 지나 사진첩을 다시 열어봤을 때 느낀 희열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고심한 결과물이 옷에 사진을 인쇄하는 거였죠. 옛날처럼 100장, 200장 인화해서 앨범에 정리하는 건 못 하겠으니, 1년 입고 버릴지언정 20세기인쇄사무실을 찾는 분들에게 사진을 프린트하는 재미를 안겨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사진을 프린트해서 간직하는 경험을 해보는 거죠.
— 옷에 사진을 인화하는 의미에서 인쇄사무실이었군요. 그래서 공간에 티셔츠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고요. 1980~1990년대 무드가 느껴지는 레트로한 공간 무드도 인상적이에요.
레트로가 주목받고 있어 이렇게 연출한 게 아닙니다. 20세기는 제가 살아온 시절 중 가장 낭만으로 가득한 시기였어요. 동시에 결핍의 시기이기도 했지만요. 부모님은 이혼해서 사랑받는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항상 어려웠어요.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친구들이 학원에 갈 때 저는 집에서 비디오만 보고 있었죠. 엄마에게 혼나며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고요. 자아가 형성되던 시절 이것들은 제 삶의 전부이자 유일한 행복이었어요. 제 안의 결핍을 채우고자 집착적으로 그 시절의 사물들을 수집했고, 하나둘 모은 사물들로 공간을 채운 겁니다. 저희 가족이 이민도 다니고 이사를 자주 해서 제가 30살이 될 때까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 전시해 놓은 물건들을 보면 그냥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레트로가 아닌 제 어린 시절 모습과 추억 그대로를 보여준 거예요.
— 망우삼림과 20세기인쇄사무실 모두 작가님의 수집력과 취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듯해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요?
망우삼림의 플립 시계와 20세기인쇄사무실의 IBM 486 DX2 컴퓨터를 소개하고 싶네요. 플립 시계는 대만의 빈티지 숍에서 구매했어요. 가게 사장님이 1980년대에 생산된 시계인데 고장이 났으니 단돈 4만 원에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구매했죠. 고장 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서울 가서 고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수리해서 망우삼림에 걸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이 플립시계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영화 중경삼림에서 보고 너무 갖고 싶었던 시계라고 하면서요. 제가 중경삼림을 100번도 넘게 봤는데 이 시계가 영화에 나온 줄 전혀 몰랐어요. 다시 찾아보니 영화의 한 장면에 정말 나오더군요.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IBM 486 DX2 컴퓨터는 제가 14살 때 처음으로 생긴 486 컴퓨터를 상징해요. 그 컴퓨터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인생을 갈아 넣었죠. (웃음) 그래서 지금도 꿈이 세계일주예요. 제 인생 자체가 게임입니다.
— 사연 없는 물건이 없을 것 같네요. 비스듬히 기운 천장 아래에 설치된 영상도 눈길을 끌던걸요?
기울어진 천장 때문에 활용하기 어려운 공간이었어요. 창고로 쓰자니 아깝고, 물건을 전시하자니 그것도 애매했죠. 고민하다가 미디어를 바닥에 깔아서 보여주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도시 풍경을 위에서 바라보는 탑뷰(top view)의 도트 게임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80, 90년대에 제작된 도트 게임들이요. 그래서 탑뷰로 도시를 연출한 게임을 엄청나게 찾아봤어요. 온갖 게임을 디깅한 끝에 게임 버전의 포켓몬스터가 유사한 뷰 타입으로 도시를 보여줬지만, 너무 미래 도시 느낌에 숲도 많이 나와서 기대에 완벽히 부합하진 않았죠. 결국 발견한 게 이 도트 게임이에요. 제가 의도적으로 편집해서 도시 풍경만 재생되고 있지만, 사실 이 게임은 선정적인 장면이 일부 포함된 성인용 게임이에요. 원하는 도시의 모습을 연출하고자 어쩔 수 없이 선택했습니다.
— 지금까지 두 상공간의 운영자로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사진작가로서 작업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불특정 다수의 가정에 방문해 공간과 사람을 필름 사진으로 찍고 있어요. 향후 2, 3년간 진행할 프로젝트죠. 최근에 일본을 다녀왔고, 올해는 스페인에서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즐겼던 대항해시대를 이제 사진으로 펼치는 거죠. (웃음) 이 게임을 해보면 군인, 해적, 모험가 등등 많은 직업이 나와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직업은 모험가였습니다. 모험가는 세계를 항해하며 피라미드 같은 새로운 문물을 발견하죠. 저도 게임 속 모험가처럼 전 세계의 공간과 사람을 찍으며 어떤 발견을 하는 거예요. 나라마다 다른 삶의 양식, 사람의 모습, 공간의 풍경과 조우하며 이를 아카이빙 하는 거죠. 모험의 끝에선 기록을 모아 전시를 열 계획입니다.
— 사진을 매개로 다채롭게 활동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삼십 대 초반 사진 작업을 할 땐 카메라를 수도 없이 팔았습니다. 작업할 땐 빚 내서 카메라를 사고 작업이 끝나면 되팔았죠. 그래야 빚을 갚거든요. 전시를 열고자 하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은 필요한데 대학원 시절 돈이 어디 있겠어요. 삶을 정말 꾸역꾸역 살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상소라는 자영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평생 사진 작업을 못 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돈을 벌게 되니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일에 치여서 시간이 없어 못 하는 거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이젠 카메라를 되팔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장비는 살 수도 있고요. 너무 설레는 거죠.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살아가는가 생각해 보면 확실히 돈은 제게 완벽한 만족감을 주지 못해요. 돈보다는 작업을 하며 생각을 표출하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끼죠. 얼른 전시를 열고 싶은 이유입니다.
— 윤병주 작가의 대항해사진전을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끝으로 작가님의 공간을 찾는 분들이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세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라고 물어보실 때 가장 기분 좋아요. 제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과 다르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을 인정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망우삼림을 카피한 공간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이미 10곳도 넘게 제보받았습니다. 불확실성을 담보로 한 사업을 피하고자 확실히 검증된 아이템을 따라 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제가 고심해서 만든 공간을 쉽게 흉내 내서 만든 곳들을 보면 허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저 역시 레퍼런스로 삼은 이미지가 있겠지만 어떻게든 제 안에서 재창조해서 선보이고자 애썼고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어요. 요즘은 누군가의 사업 아이템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고 있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고요. 비슷한 컨셉의 공간으로 넘치는 요즘, 망우삼림과 20세기인쇄사무실을 찾아 정말 재밌다는 기분을 갖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망우삼림(忘憂森林) & 20세기인쇄사무실
주소 | 서울시 중구 을지로3가 346-3, 3층 & 4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