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프글로스
러프글로스는 지난 2020년부터 연남동 골목에서 특유의 편안하고 세심한 감도로 커피, 빈티지 가구를 매개로 한 브랜드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리고 지난 6월, 러프글로스는 약 4년의 세월을 보낸 연남동 공간을 정리하고 연희동에 새롭게 문을 연다. 짧지 않은 시간 브랜드를 운영하며 연남동의 러프글로스를 애정하는 단골이 많이 생겼음에도 빈티지 가구 큐레이션, 팝업 전시 등 소개하는 콘텐츠에 좀 더 적절한 환경으로 이동을 결정한 것. 이전의 러프글로스가 다소 복잡한 가정집의 공간 구조를 가졌다면 새롭게 옮긴 곳은 단순하고 넓은 평면을 가진 구조가 특징적이다. 물리적 공간에 맞게 콘텐츠에 변화를 주며 브랜드의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한 러프글로스. 더 깊어진 감도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영광 대표를 만나 공간을 채우는 것들에 관해 물었다.
Interview with
— 러프글로스rough gloss를 단순 직역하면 ‘거친 광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이밍에 담고자 했던 의미가 궁금합니다.
무코팅 무광택의 용지를 통틀어서 러프글로스지라고 합니다. 인쇄용지 종류 중 하나죠. 종이의 거친 느낌이 살아있으면서 인쇄하면 광이 잘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희 공간은 본래 전반적으로 러프한 무드였어요. 그 위에 조명처럼 빛이 나고 매끈한 사물들을 소개했죠. 공간의 특징이 러프글로스지의 특징과 잘 부합하기도 했고, 제가 오랜 기간 편집 디자이너였던 만큼 개인적으로 익숙한 종이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게 됐죠.
— 러프글로스roughgloss를 중심으로 러프마켓rough market과 러프 파츠 서비스rough parts service까지. 다양한 브랜드 활동을 전개하고 있죠. 각각의 브랜드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소개해 주세요.
브랜드의 시작은 카페입니다. 즉 카페의 이름이 러프글로스였어요. 카페에서 조금씩 소개하고 판매하던 빈티지 가구가 확장되며 러프마켓이 됐고요. 그리고 순전히 저희의 필요로 카페 내부 곳곳에 금속 재질의 집기를 제작해 배치하기도 했는데요. 많은 분이 이 집기들에 대한 구매 문의를 하시면서 러프글로스 자체 제작 집기들을 소개하는 브랜드로 러프 파츠 서비스가 생겨난 거죠. 카페로 시작했던 러프글로스는 이제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러프마켓, 자체 제작 집기를 선보이는 러프 파츠 글로스, 그리고 팝업 전시 등 다양한 기획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외연이 확장됐습니다.
— 김영광 대표님은 본래 그래픽 디자이너로 오랜 기간 활동하셨죠. 카페, 빈티지 가구, 팝업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전반을 다루는 러프글로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마어마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에요. 가장 큰 이유로 10년 정도 그래픽과 편집 디자인을 하니 싫증이 나더라고요. 좀 지쳤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죠. 커피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디자인 감각을 살려 이쪽으로 새로운 일을 펼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차근차근 러프글로스를 구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 싶어서 그날로 정리했고, 바로 러프글로스를 시작했습니다.
— 러프글로스 공간의 무드, 러프마켓에서 큐레이션해 선보이는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 러프 파츠 서비스에서 제작하는 유용하면서도 간결한 미감이 돋보이는 사물들까지. 김영광 대표님이 추구하는 미감, 큐레이션의 기준을 묻고 싶습니다.
간단해요. 제 취향에 맞아야 하죠. 저희 집에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고나 할까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가 싫어하는 것은 러프글로스에서 소개한 적이 없어요. 마음에 맞는 사물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들여오고 있습니다. 한정된 국가의 가구를 대량으로 바잉하는 빈티지 스토어와 달리 취향에 맞는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가구를 바잉하는 점은 러프글로스만의 차별점으로 볼 수 있죠.
취향에 맞게 선별한 사물을 단순히 공간에 가져다 두는 것으로 저희 일이 끝나지 않아요. 실생활에서의 쓰임, 다른 사물과의 조화와 배치를 세심하게 신경 쓰며 가구와 오브제를 전시하죠. 큐레이션 한 사물을 쇼룸에 대강 가져다 두기만 하면 구매자는 이를 집에 가져가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할지 막막해합니다. 이때 단순한 디스플레이가 아닌, 저희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가구를 사용하면 좋을지 제안한 모습에서 좀 더 실질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죠.
— 최근에는 브랜드 팝업도 선보이기 시작했죠?
주로 러프글로스에서 관심을 두는 분야의 팝업을 열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팝업은 플랜트 스튜디오 ‘무경계’와 함께 했어요. 스튜디오만의 시선으로 디자인한 식물들을 선보였죠. 두 번째 팝업은 세라미스트ceramist ‘크리스토’의 작품을 조명했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제작한 화분과 화분 받침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다음으로는 출판사 ‘하버프레스’의 도쿄 아트북 큐레이션 팝업을 열었습니다. 팝업을 통해 도쿄에서 예술이 소비되는 모습을 함께 나누고자 했죠. 곧 아주 작은 식물을 소개하는 팝업을 열 계획이니 기대해 주세요.
— 2020년 11월 러프글로스가 연남동의 끝자락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지난 2024년 2월 연남동 러프글로스의 영업을 종료했어요. 그리고 지난 6월 22일 이곳 연희동에서 러프글로스 두 번째 챕터의 시작을 알렸죠. 연희동에 새롭게 둥지를 틀며 운영에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이사를 오며 카페 규모를 줄이고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러프마켓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연남동 시절엔 커피가 메인 콘텐츠였죠. 아무래도 카페를 목적으로 처음 러프글로스를 열었다 보니 러프마켓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다만 앞서 소개했듯이 공간을 운영하며 러프마켓의 비중이 점점 커졌어요. 카페와 빈티지 가구 모두를 가져가기엔 힘에 부치더군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결국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러프마켓, 즉 쇼룸 운영에 좀 더 집중하고자 연희동으로 이사를 결정했어요. 공간을 옮기며 카페는 아예 정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커피를 목적으로 공간을 찾는 단골도 많이 생겨 완전히 닫지는 못했어요. 대신 커피머신 없이 핸드드립 중심으로 카페를 좀 더 축소한 거죠. 여기에 더해 연희동 쇼룸에서는 팝업 전시도 열며 좀 더 풍성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 앞으로 러프글로스를 찾는 분들이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세요?
러프글로스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반드시 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러프마켓의 빈티지 가구, 독특한 형상의 식물들, 러프 파츠 서비스의 집기들까지. 집, 상업 공간 등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이디어를 얻고 싶을 때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라요. 오시는 분 모두 편안하게 콘텐츠를 즐겨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