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국립 신 미술관에서 열리는 <Living Modernity>전
매일 무심코 드나드는 집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본의 도쿄 국립 신 미술관(The National Art Center, Tokyo)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 <LIVING MODERNITY>는 20세기 주거 건축이 일상에 구현한 혁신과 실험을 다층적으로 재조명한다. 전시의 부제목 ‘1920~1970년대의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주거 실험(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에서 알 수 있듯이 본 전시는 모던 주거 건축의 흐름을 따라 일상 공간이 어떻게 삶의 형태를 바꾸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왔는지를 되짚는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전시에서 조명하는 1920~1970년대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19년과 1945년 직후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건축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와 포개진다. 생활 공간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은 전후 건축의 사명이었으며, 복구 과정에서 철근 콘크리트·강철·유리 등 신소재를 활용한 간결하고 기능적인 설계가 주목을 받았다. 또한, 황폐해진 일상을 신속하게 제자리에 되돌려놔야 했기에 불필요한 건축 장식은 자연스레 모두 배제됐다. 거실과 부엌 중심의 공간 구성, 쾌적한 위생 시설, 가족 구성원을 위한 분리된 방을 갖춘 주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주거 환경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대중화된 비교적 새로운 유형의 주택 구조다. 이렇듯 모더니즘 건축은 빠르게 주류 건축 양식으로 확산했으며 주지하다시피 그 잔상은 현대 건축과 우리의 생활에도 깊이 남아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모더니즘 건축은 각 지역의 기후·문화적 맥락과 결합하며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했다. 이번 전시는 ‘위생·재료·창·부엌·가구·미디어·풍경’이라는 일곱 가지 키워드로 다채롭게 펼쳐진 20세기 주거 실험을 깊이 들여다본다. 특히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0.06.~1965.08.27.),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03.27.~1969.08.17.)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 지은 집 14채를 사진, 도면, 모형, 가구, 텍스타일, 식기, 잡지, 그래픽, 영상 등 풍부한 매체로 소개하며 기능적이고 편안한 생활 공간을 만들기 위한 건축가들의 실험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위생’은 건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20세기 초 건축가들의 의지가 돋보이는 키워드다. 감염병에 맞서 건강과 위생을 유지하는 일은 오랫동안 인류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전시에서 조명한 건축가들은 결핵 퇴치를 위해 자연 채광과 환기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밀집이 진행되던 시기, 욕실을 비롯한 위생 설비는 청결한 신체를 통해 건강한 생활 환경을 목적으로 했던 모던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창문’을 모더니즘 건축의 주요한 키워드로 바라본 점 역시 흥미롭다. 모더니즘 이전 서양 건축은 주로 벽돌 등 석재로 쌓아 올린 벽이 구조를 떠받드는 형태였다. 큰 창을 내면 벽체가 과도한 힘을 받아 붕괴할 위험이 있었고 자연스레 창 크기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더니즘 건축에선 강철, 철근콘크리트 등 새로운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대형 창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재료의 발전으로 새로운 주거 환경이 펼쳐진 것이다. 전례 없는 크기의 창은 자연광과 환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내부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외부 경관을 선사했다. 새로운 시대의 창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며, 내외부로 나뉘던 생활의 경계를 허물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1920~1970년대 모더니즘 주택 디자인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건축가들의 ‘일상생활’을 향한 깊은 관심이 느껴진다. 빛과 공기의 흐름을 고려한 창, 위생 개념이 담긴 욕실, 산업화를 반영한 가구 디자인은 모두 ‘삶을 설계한다’는 건축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전시 작품 상당수가 건축가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이는 새로운 건축 개념을 실험하는 최적의 무대로 기능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그들의 작업에는 기능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사는 일’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엿보인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실물 크기로 재현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Row House’(1931) 역시 주목할 만하다. Row House는 중정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립 주택으로 높아지는 도시 밀도에 대응하는 주거 실험이었다. 실제로 건축되지는 않았지만, 이상적인 모더니즘 주거 건축으로 오랫동안 회자해 왔다. 전시 공간 안에 구현된 Row House는 폐쇄와 개방, 구조와 비움, 거주와 이상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주거 실험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집’이라는 개념이 한때 얼마나 급진적이고 실험적이었는지를 일깨우며 오늘의 주거와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살기 위한 집’이 어떻게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전시가 말하는 근대 주거 실험의 본질을 인상 깊게 담아낸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Kazuo Fukunaga
<Living Modernity>는 거장의 이름으로만 기억되던 건축가들을 ‘삶을 함께 고민한 사람들’로 다시금 호명한다. 건축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설계한 집, 주방과 욕실의 위치 하나에도 고민을 담은 설계 방식은 인간 중심의 건축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그들의 사적인 고민이 어떻게 공공의 미학이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전시장에 소개된 14개의 주거 프로젝트는 모두 건축가들이 기능성과 쾌적함은 물론, 삶의 기쁨과 이상을 담아 설계한 공간들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그중 상당수는 건축가 자신이 거주하던 집으로 삶과 창작이 교차하는 실험의 현장이었다. 20세기 주거 실험의 장을 깊게 탐색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매일 머무는 일상 공간이 어떻게 예술적 사고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근대 건축의 거장들이 ‘사는 일’ 그 자체에 품었던 애정과 통찰을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전시는 삶을 위한 디자인이었던 모더니즘 건축이 단지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고 방식임을 증명한다. 사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묻는 감각적인 여정을 지금 도쿄에서 만나보자.
<LIVING Modernity>
전시 장소: 도쿄 국립 신 미술관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전시 기간: 2025.3.19.–6.30.
자료 협조: 도쿄 국립 신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