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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n Jul 10. 2024

실험적 인쇄 방식이 담긴 포스터를 선보이는 가게

오큐파이더시티

을지로 청계 상가 가열 312호. 오락기기 등 각종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모인 청계 상가에 시선을 끄는 포스터 숍이 있다. 가게 내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의 포스터는 공간에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바로 그래픽 디자이너 강주현의 취향과 안목이 담긴 포스터 숍 오큐파이더시티 Occupy The City(이하 OQC)가 지금 소개할 그 가게다.

Occupy The City 전경 | ©월간 디자인


Interview with 강주현

그래픽 디자이너, 오큐파이더시티 대표


-OQC는 현직 그래픽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포스터 숍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흥미롭다. 강주현 디자이너의 이력이 궁금하다.

2015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4년이 좀 넘었다. 주로 도록, 포스터 등의 전시 관련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상업적인 활동으로는 웹 사이트 디자인도 한다. 지면과 웹을 모두 다룬다. 2016년부터는 건국대학교 등에 나가 그래픽 디자인 교육도 하고 있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비정기 간행물 <티포찜머>를 2013년부터 매년 1~2호 정도 발행하고 있으며, 지난 7월에 티포찜머 8호가 나왔다. 가장 최근에는 국립 한글 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전시에 참여했다.

강주현 디자이너의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참여 작품_모아쓰기 Syllabic Grouping_2019  | ©국립 한글 박물관

포스터 숍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오큐파이더시티는 어떤 뜻이며, 어떤 콘셉트로 운영되는가?

직역하자면 ‘도시를 점령하다’인데, 포스터라는 미디어 자체가 이전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현재는 그 목적이 조금은 와해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과거에는 포스터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었고, 상업적인 광고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자기표현의 수단,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프로파간다까지 모두 포함하는 매체였다. 과거의 그것처럼 도시 곳곳에서 포스터가 단순히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던지는 일상적인 수단으로써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 지었다. 더 구체적으로 포스터 숍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타이밍이 2016년이다. 당시 광화문 광장의 집회에서 매주 몇백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종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은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남겼다. 그때 종이라는 물성이 여전히 힘을 가진 유효한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2016년, 도시를 점령했던 포스터와 피켓을 보며 만든 이름이 ‘오큐파이더시티’다.

Occupy The City 전경 | ©Occupy The City

을지로에 포스터 숍을 연 이유는 무엇인가?

제일 큰 이유는 월세다. 2016년 처음 세운 상가에 왔을 때는 지금처럼 정비되기 이전이라 데크도 기울고 구조적으로 위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세가 저렴하면서도 도심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했다. 세운 상가라는 메가 스트럭쳐 mega structure가 주는 압도감도 인상적이었으며 이곳을 건축한 김수근도 좋아한다. 손님들을 도대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로 오게 하는 것도 흥미로운데, OQC를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뜬금없고 맥락 없는 이곳에 왔다.


가게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지역 상인들이 OQC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지역 상인분들이 딱히 관여하지는 않는다.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툭툭 물어보는 정도이고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신다.

스위스 거리의 포스터들 | ©Occupy The City

인쇄 매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포스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스위스는 포스터를 향유하는 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포스터 자체를 매우 일상적인 매체로 여긴다. 길거리 곳곳에 포스터가 있고, 이 종이 매체를 위한 규격화된 유닛의 벨트포맛weltformat(960x1,280mm) 광고판도 잘 발달했다. 그러한 환경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사실 우리나라 거리의 포스터는 인증이 안 돼 있으면 제거되는 일이 빈번하다. 포스터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표현의 제약이 많은 점도 아쉽다.

일상적으로 포스터를 향유하는 스위스 풍경 | ©Occupy The City

아직 한국에서는 포스터를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지 못한 것 같다. 국내 디자이너들이 주도적으로 포스터를 즐기는 문화와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를 향유하는 대상은 디자인 전공생 혹은 디자인 업계 관계자에 국한된 것 같이 보인다. 일상 속에서 그래픽 포스터를 즐기는 문화가 확대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서 명료하게 짚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 보이는 포스터 문화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포스터를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매체로 여기기보다는, 마치 예술 작품처럼 포스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렇다.


한편, 최근 디자이너 중심으로 열리는 포스터 페스티벌들은 상업적인 맥락이 배제된 디자이너의 자기표현 수단이고 여기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인쇄해야 할 포스터 가짓수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인쇄 품질도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인쇄 공정을 고민하며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그들의 SNS, 디지털 디바이스에 업로드하기 위한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인쇄 품질이 너무 낮다 보니, 결국 스크린에서 보이는 포스터와 실제 출력된 포스터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반면에 스위스에서 열리는 포스터 페스티벌은 디자이너가 긴 호흡을 가지고 인쇄 공정까지 깊이 있게 고민하며 작업한 포스터 위주로 전시한다. 아니면 무빙 포스터처럼 스크린 내에서 활발한 인터랙션을 만드는, 철저한 디지털용 포스터를 선보이거나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다수의 포스터 페스티벌은 앞서 언급했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런 부분이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실험적 인쇄 방식이 돋보이는 포스터가 OQC를 채운다. | ©Occupy The City

강주현 디자이너만의 포스터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디자인적인 개인 취향도 반영하지만, 실험적 인쇄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담긴 포스터를 많이 선보이고 있다.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한번 찍을 때 대량생산되는즉, 공정을 거치는 매체다. 어떤 인쇄 공정을 거쳐서 나오는지에 대해 초점을 많이 두려고 한다. 특별한 색상, 특별한 안료, 그리고 특별한 기법들이 사용된 포스터 중심으로 선정한다. 디자이너들이 인쇄 제작 공정과 포스터에 대한 물성을 모두 이해하고 어떻게 이를 디자인 안에 녹여내는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고민이 담긴 포스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7년에 포스터 숍을 오픈했으니 가게 운영을 한 지 2년이 흘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고객과의 에피소드가 있을 듯하다.

사실 판매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딱히 에피소드가 없다.

<티포찜머> 8호, 강주현 디자이너가 2013년부터 비정기적으로 제작하는 타이포그래피 간행물이다. | ©Occupy The City

특별히 애정 하는 포스터가 있다면?

<티포찜머> 8호와 거기에 실린 포스터들. <티포찜머> 8호는 포스터와 출판물의 경계를 흐려보고자 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다. 책의 한 페이지가 포스터가 될 수도 있고, 펼침 면 자체가 포스터가 될 수 있다. 특히 인쇄 공정으로는 팬톤 별색 12색이 사용되어 제작 가능한 인쇄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강주현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피크닉 Piknic의 전시 포스터들 | ©Piknic

독자들이 일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포스터를 추천해달라.

문화공간 피크닉 Piknic의 전시 포스터를 추천한다. 지금 열리고 있는 <페터 팝스트 Peter Pabst: WHITE RED PINK GREEN>전도 그렇고 피크닉 전시 포스터들이 디자인적 완결성이 높고, 일상적으로 쉽게 구하고 향유할 수 있는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Occupy The City | ©월간 디자인

앞으로 OQC의 계획은 무엇인가?

OQC가 을지로 세운 상가에서 10년을 버티는 것. 현재 2년을 버텼다.


OQC의 운영 시간을 정리해달라.

포스터 숍의 재정비를 위해 10월까지 일시적으로 휴무 중이다. 이후의 운영 시간은 OQC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occupy_the_city를 확인하면 된다.


<오큐파이더시티 Occupy The City>

위치 |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160 청계 상가 가열 312호

영업시간 |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지 @occupy_the_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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