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코로나19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일상의 많은 모습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니 기업들은 이에 따른 언택트untact 서비스를 내놓고 있으며,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매너로 여겨진다. 스페이스비이Space B-E 갤러리에서 지난 4월 20일부터 오는 6월 12일까지 열리는 <Nature, Conversations(자연, 그리고 우리가 이어갈 대화)> 전시는 모두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해 보이는 지금, 잠시 멈추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 “자유로운 인간의 길은 무엇인지” “자연과의 공감은 무엇인지”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두에게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미 170여 년 전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이라는 호수에 홀로 거주하는 모험을 시작하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며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대자연(Nature), 호수 월든(Walden)에서 소로우가 얻은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2016년 닻미술관에서 기획된 전시 <월든으로부터>에서는 사진작가 엘리엇 포터, 데이비드 엘링슨, 주상연, 커크 크리펜스 & 그레첸 르마이스트레 등과 함께 인간의 지성과 자연의 영감에 대해 논하였다. 이번 전시 “Nature, Conversations“는 닻미술관의 월든 전시의 일부를 스페이스 비이 공간에 재구성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예술로 창작해온 닻프레스의 출판물을 통해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자연을 소재로 한 컬러사진의 대가 엘리엇 포터Eliot Porter와 월든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사진가인 주상연Sangyon Joo은 그들의 렌즈로 기록한 월든 호수의 모습을 전시장에 옮겨 놓는다. 특히 주상연이 여러 번 호수를 방문하여 촬영한 9장의 이미지에는 호수 표면에 그려지는 바람의 결, 지속적인 움직임과 고요함, 순간과 영원, 시공간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파동이 음악처럼 흐른다. 월든 호수의 이름은 World in Pond(월드 인 폰드: 호수 속의 세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중간적 속성을 지닌 작은 세상으로서의 월든을 필름에 담는다.
한편, 5대째 벌목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성장하며 환경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캐나다 출신의 사진가 데이비드 엘링슨David Ellingsen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업하는 커크 크리펜스Kirk Crippens, 그레첸 르마이스트레Gretchen LeMaistre는 나무 사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묻는다.
데이비드 엘링슨은 그의 선조들에 의해 베어진 나무 둥지를 소재로 치유와 성찰의 메시지를 담은 설치작업이 바로 <최후의 자리: The Last Stand> 시리즈이다. 그는 잘린 나무 밑동을 천으로 감싸주거나, 죽은 나무에 배경을 치고 영정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환경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자성의 태도가 담긴 실천적, 자기 고백적 작업은 시각적으로도 강렬하다.
커크 크리펜스와 그레첸 르마이스트레의 공동 작업 <살아있는 옹이: Live Burls> 시리즈는 국립공원의 훼손된 나무를 찾아 4년 동안 기록한 결과물이다. 오래된 나무의 옹이(Burls)는 아주 귀해 밀렵꾼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작업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와킨스와 머이브릿지를 계승한 8×10인치 대형카메라와 흑백 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이미지가 절제된 감정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이 사진들은 인간의 모순된 상처와 현대 소비사회의 모순을 대면하게 하는 실증의 힘이 있다.
전시에서는 엘리엇 포터, 주상연, 커크 크리펜스, 그레첸 르마이스트레의 사진 작품 외에 닻프레스Datz Press의 출판물과 틸테이블Teal Table의 식물 설치 작업 ‘Commune with Nature’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닻프레스는 사진가와 디자이너, 북아티스트가 함께 일하고 있는 창작 공동체로서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책을 만들며, 전시 기획 등의 활동을 전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닻프레스 팝업 스토어를 열어 수공예 기반으로 한정 수량 제작되는 사진집부터 그래픽북까지 섬세하고 아름다운 아트북을 선보인다. 또한,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틸테이블의 식물 작업은 관람객이 이미지를 넘어 더욱 직접적으로 자연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170여 년 전, 콩코드 지역의 월든 호수를 바라보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던졌던 자연과 인간을 향한 질문은 위로와 희망이 필요한 지금, 더 큰 울림이 되어 전시장에 펼쳐진다. 네 작가의 사진 작품, 닻프레스의 출판물, 그리고 틸테이블의 식물 작업까지 자연과의 공감은 무엇인지 묻는 다채로운 작품들 속에서 일상 속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 Nature, Conversations (자연, 그리고 우리가 이어갈 대화)>
참여작가: Eliot Porter (엘리엇 포터), Sangyon Joo (주상연), David Ellingsen (데이비드 엘링슨), Kirk Crippens & Gretchen | LeMaistre (커크 크리펜스 & 그레첸 르마이스트레), Datz’s Collab. Artists
전시일시: 2020년 4월 20일(월)–6월 12일(금)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26길 14 윤현상재 Space B-E 3F
운영시간: 월–토(매주 일요일 휴관) / 9:00–18:30(토요일 9:0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