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막연한 미래보다 소중한 지금

에필로그 : 막연한 미래보다 소중한 지금


도서관 근처에 있는 단지에서 무증상 확진지가 한 명 나왔다. 매일 검사하는데 확진자는 어떻게 나오는 건지 신기할 정도다. 해당 단지의 일부 출입문은 철문으로 막혔고, 확진자가 나온 동은 고위험군, 주변에 있는 동은 중위험군으로 봉쇄되었다.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으로 자유를 누린다.


이런 시절에 무언가 계획하는 일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시절이고, 해야만 하는 일은 미루지 말아야 하는 시절이다. 언제 어떻게 변수가 생길지 몰라서 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시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에 집중하는 일이다. 과거의 아쉬움은 돌이킬 수 없고, 현재의 소중함은 놓치기 쉽고, 미래의 희망은 막연할 때가 많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 것뿐이다. 이런 시절과 상관없이 '지금'은 언제나 소중했다. 다만, 너무 익숙해서, 내일도 똑같은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중국과 한국과 중국에서 코로나 19 시대를 통과하며 얻은 교훈은 간단하다. '범사'라는 평범한 날들과 '지금'의 귀함이다. 아무 날도 아닌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 하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끊임없이 지나치는 유한한 순간들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지금이라도 당장 고국에 갈 수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 갔다가 국경 봉쇄라도 되면, 코로나 19에 확진이라도 되면 어쩌나 싶어 스스로 만든 또 다른 국경을 넘지 못한다. 언제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애써 극복하고 싶진 않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잠시 내려놓고, 어찌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평범한 날들과 그렇지 않은 날들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이제는 어떤 전망에 기대지 않는다. 코로나 19가 언제 종식되는 것인지, 정책이 언제 바뀔지 막연한 희망을 품지 않는다. 가장 힘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막연한 희망 사이에 갇혀 사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간대가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는 아픔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어느 이름 없는 이방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준 이들의 평안을 빈다. '안녕'이란 귀한 말을 건넨다.


언제 어디서 인가 '안녕'하며 인사를 나눌 때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힘든 시간을 견딘 아내와 아빠의 부재를 고스란히 경험한 준서와 내 빈자리를 채워주신 한국에 있는 모든 가족과 내 곁을 지켜주셨던 소중한 분들에게 감사의 안녕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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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과 계절을 느끼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안녕하길

2022.10.28. 만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