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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Apr 06. 2022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

#2017. 03.18

지금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게으른 시기이자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시기이다. 궁금한 것들이 정말 많아서 갔던 길도 되돌아가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잠깐 옆 길로 새 멀리 돌아서 가보고 싶기도 하다.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은 뭐가 어떻게 다른지, 저 나무는 왜 혼자 저렇게 높이 뻗어 있는지, 이 나무는 왜 이렇게 땅딸막하고 뚱뚱한지, 이 꽃은 왜 노란색이고 저 꽃은 왜 보라색인지. 내가 보는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동안은 그러지 못했다. 보면 궁금해져 버릴까 아예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잘난 것도 없는 나는 다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이라도 반짝이기 위해 앞만 보며 아등바등 달려왔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깨달았다. 반짝임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오기 전, 늘 그랬던 것처럼 정말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왔는데 난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키지 않고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려다보는 이 하늘이 궁금하다. 매일 걷는 이 길이 왜 항상 다르게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배추흰나비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다. 나와 한 공간에 존재하는, 그러나 다른 배경을 가진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수업을 듣는지 궁금하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궁금해하며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될 테다. 해야 할 일들은 최대한 미룰 것이고 버스를 타기보단 오래도록 걸으며 이 풍경들을 눈에 담을 것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들의 일상 속에서도 거의 혼자인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가장 먼저 알아차려줄 것이다.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쉬고 싶을 땐 쉬고. 한 없이 우울했다가 또 높이 붕 떠버리기도 할 것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주어진 이 시간들을 아까워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고 누구보다 더 게으른 사람이 될 테다. 지금 이 게으름이 어느 순간 나의 인생에서 결점이 된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며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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