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먹는 낙이었다. 다음 날 아침 먹을 것들을 계획하며 잠이 들었고 학교에 가서 바나나 혹은 에너지바를 먹을 생각에 열심히 걸었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저녁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뭐 가끔은 내가 아닌 남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을 때도 있었고 케이크 한 판을 한 번에 해치우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적도 있었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쭉 적고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칼로리, 돈, 건강 따위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 한 판 숟가락으로 먹기, 피자 한 판 혼자 먹기, 물릴 때까지 초콜릿 먹기, 매운 양념치킨 한 마리 먹기, 연어 초밥과 회 배 터지게 먹기, 요거트 한 통 퍼먹기, 크림치즈 한 번에 다 먹기, 도넛 한 박스 혼자 다 먹기, 악마의 초코잼 한 통 퍼먹기, 참치 김밥 배부르게 먹기. 뭐 이런 거. 이렇게 적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나면 반나절은 후딱 지나갔다. 그리고 앉아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실컷 보다가 일기를 쓰면 또 반나절이 지나갔다. 이런 일상이 지겨워지는 어떤 날에는 멜버른에 축제가 열리는지 확인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축제를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영화를 본 날도 있었고 장을 봐서 새로운 음식을 해먹은 날들도 있었다. 과제가 있는 날엔 과제를 하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거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지냈는지, 이런 여유 속에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렸다.
예전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였는데 어느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새로운 취미들이 생겼고 반응이 없더라도 SNS에 꾸준히 내 일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분명 언젠가 내가 그리워하게 될 나날 들일 테니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혼자 무슨 재미로 여행해!라는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할 필요 없이 나에게 맞는 일정을 짜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그 덕에 그 여행지가 애틋함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같다. 혼밥과 혼행의 즐거움을 알아버렸으니 앞으로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여행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젠 정말 혼자서도 잘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