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Festival
일요일에 박스힐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하루나가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며 내게 올 수 있으면 오라고 말했다. 간다고 말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9시쯤 되었겠거니 하고 눈을 떴는데 11시 45분이었고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박스힐은 아시안타운 같았다.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들렸으며 중국 가게가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한식당과 일식당을 볼 수 있었다. 아리가 박스힐에서 산다고 했는데 이런 느낌의 동네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축제가 열리는 시청 앞으로 가자 마자 타코야끼를 사먹었다. 5개에 4달러, 물가 비싼 호주에선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덕분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2달러짜리 녹차 맛 빵과 다이후쿠까지 사 먹을 수 있었다. 다이후쿠를 한 입 베어 물자 물컹한 식감에 한 번, 팥과 크림이 이루어 내는 달콤한 조화에 두 번 반해버렸다. 일본이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은 참 정성스럽게 잘 만든다. 하나 더 사 먹을까 고민했지만 원래 아쉬울 때 그만두는 것이 여운이 오래 남으니 이 달콤한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갔던 축제들처럼 그냥 작은 행사일 줄 알았는데 이 축제는 생각보다 컸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도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유창하게 일본어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대체 뭐가 이 사람들을 일본 문화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일까. 어떤 매력을 느끼기에 Japan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을 반짝이며 흥분하는 것일까 매번 놀라면서도 참 부럽다.
사실 하루나를 보러 이 곳에 온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쭉 둘러보고 나니 할 것이 없었다. 다행히 하루나와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는데 하루나는 아이들을 위한 요요와 낚시 행사를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본 여름 축제에서는 풍선에 물을 살짝 넣어 고무줄을 매단 요요 놀이와 금붕어 낚시를 주로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하루나는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꽤 하기 때문에 평소에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만나지 않는데 그 설명을 들으니 정말 하루나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주로 뭐해? 라는 질문에 꽤 당황했다. 글쎄,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더라? 집안일도 좀 하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글도 쓰고 요리도 하고. 정말 심심한 날에는 하이포인트 구경도 갔다가 페이스북에 들어가 혹시 오늘 열리는 축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심심하게. 어쩔 때는 하루가 너무 길어서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싶은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하는 하루나도 운동을 하거나 하이포인트에 간다고 했다. 인터넷이 무제한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도 마음껏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잠깐의 대화로 하루나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하루나는 몇 번이고 이제 7월이 되면 친구들이 다 떠난다며 슬프다고 말했다. 그 동안은 괜찮아,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을 했지만 오늘은 슬프다는 그 말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하루 종일 말 할 사람도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처음엔 좋을 수도 있지만 반복이 된다면, 아파도 걱정해줄 사람이 없고 귀찮아도 나 혼자 집안 일을 다 해야 한다면 외로움에 지쳐버릴 것 같다. 그래도 이런 활동을 찾아 나서는 하루나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학기 말이라 과제도 많을 텐데 언제 이런 걸 알아봤을까 짠하면서 부럽고 질투도 난다. 좋은 친구를 둔 덕에 나도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트레인을 타고 돌아 오는 길 무심코 바라본 창 밖은 정말 예뻤다. 큼직한 집들, 빨간 단풍나무, 파란 하늘, 한적한 거리, 가을의 멜버른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오래도록 창 밖을 바라보며 트레인을 타니 괜히 설렜다.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 본 보라 빛 노을은 쓸쓸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6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두워져 버린 길이 맑은 하늘을 부각하는 별 빛 덕에 무섭지 않았다. 괜히 기분 좋아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