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마워요
고등학생 때 졸음이 가득한 눈을 부릅뜨고 애꿎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공부했던 것은,
늦잠 자고 싶은 것 꾹 참고 주말마다 학교에 갔던 것은 하루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어서 이기도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랬던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행하겠노라고, 내가 보고 싶은 예쁜 세상들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하며 버텨왔다. 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만큼 나의 삶에 많은 부분은 차지한다.
어릴 적 기억은 없지만 네 살 무렵까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였는지 돌이켜보면 여섯 살 나에게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었고 할아버지 품에 안겨 앉아있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서럽게 울던 것도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옆자리를 사촌동생에게 뺏기던 날, 나보다 9살이나 어린 그 아이가 참 얄미웠다.
유치한 질투라 해도 좋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라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6살, 할머니는 나에게 ‘할미가 죽고 나면’이라는 말을 하셨고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바보 같은 고민인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가 정말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 년에 서 너 번 정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다 울면서 일어나기도 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될 정도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시는 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지하철 타고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나는 그다지 많이 찾아뵙지 않았다. 과제가 많아서, 시험기간 이어서, 다음 주면 추석이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대며 자꾸 미뤘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뵈러 갈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다만 늘 생각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가끔 내가 먼저 전화를 드리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은 나도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자신했었다.
오만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식들 불편하다며 집에 잘 오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런 분들이 손녀가 집에 놀러 왔다가 고작 안약을 두고 갔다고 먼 길을 운전해 돌려주고 가셨다. 괜히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배탈이 나서는 병원도 안 가고 걱정만 시킨 못된 손녀인데 다 낫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걱정이 되셨는지 3일 동안 매일 같이 이제 배는 괜찮냐며 전화를 하셨다. 평소에는 잘 틀지도 않는 에어컨을, 전기장판을 손녀가 온다고 하면 몇 시간 전부터 틀어 놓으신다. 비싼 과일에, 고기반찬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던 적이 있다. 일요일에 엄마, 아빠와 함께 찾아뵙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수업이 일찍 끝났던 화요일에 전화도 안 드리고 몰래 할머니를 찾아갔다. 잠깐 화장실에 가셨는지 텅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세상에 그렇게 할머니가 행복해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니 여기 어째 왔는데?라고 말씀하시며 방긋 웃으시던 얼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할머니는 아파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면서 괜히 손녀에게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라 하셨고 내일이면 퇴원하신다며 수업이 없으면 할머니 집에서 자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셨다.
고민을 했다. 할머니 퇴원하시는 걸 보고 싶기도 했지만 과제가 너무 많았다. 삼촌이 할머니 퇴원하실 때 오신다고 했다는 핑계로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주말에 더 무리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럴 수 있었지만 나는 선뜻 그러겠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할머니보다 소중한 건 없었는데 그러겠다고, 오랜만에 할머니랑 같이 자겠다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번 학기에는 추석을 빼고도 3번이나 할머니를 뵈러 갔다고 나를 합리화시켰다.
이 날 난 정확히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분들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늘 내 시간이 있을 때, 할머니가 생각날 때 가끔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찾아가도 되냐고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를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못 거신 것이다. 바쁜데 방해될까 봐.
춥다고 계속 들어가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할머니는 횡단보도 앞까지 데려다주시며 다 큰 손녀 횡단보도 다 건너는 걸 보고 나서야 들어가셨다. 8시, 9시면 주무시던 할머니께서 손녀가 혼자 잘 도착했는지 걱정이 되어 9시가 넘어서 잘 도착했느냐고 전화를 하셨다. 나는 또 할머니를 잊어버렸는데 할머니는 계속 내 걱정을 하신 것이다.
전부 중의 하나와, 전부는 그런 차이이다.
그 전화 한 번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참 끝까지 못됐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여행 가겠다고 3년 전 그렇게 큰소리 뻥뻥 쳐 놓고는 나는 지금 혼자만 넓은 세상을 보고 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산에 오를 때마다, 이 맛있는 것들을 나만 먹고 있을 때마다 자꾸만 생각이 나서, 보고 싶어서, 가슴이 아릴 만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