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대신 세상의 문장을 펼친 이유

음표가 그려내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을 정책의 언어로 채워가는 여정

by 김나영
들어가며 :
일곱 개의 음표가 채워주지 못한 질문들

연습실의 조명 아래서 가장 행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연주회를 준비하며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수만 번 같은 마디를 반복하던 시간들. 그때의 저에게 세상은 오직 아름다운 음표로만 구성된 완벽한 우주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시선은 악보 너머, 악기를 든 사람들의 ‘내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선율이 우리의 일상도 지켜줄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이 무대 위에서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밖 우리의 삶 속에서도 든든한 뿌리가 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하모니를 만드는 주인공이었지만, 무대 뒤의 현실은 아직 그 하모니를 뒷받침할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서로를 믿기에 생략했던 계약서,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묵묵히 견뎌온 기다림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마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현실적인 빈틈들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정성껏 빚어낸 선율이 우리 자신의 일상도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음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동료들이 더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연습실의 평온함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의 문장들을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낭만의 언어를 넘어, 생존의 문장을 읽기로 한 결심

무수한 음표 속에서 맥락을 찾아내던 그 시선으로 세상을 지탱하는 ‘시스템’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예술가가 왜 그렇게 딱딱한 정책이나 행정에 매몰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데이터와 정책 지표들은 결코 차가운 숫자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곁에서 함께 악기를 든 이들의 소중한 꿈을 지켜줄 방패였고, 누군가에게는 내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만드는 든든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습실 안의 아름다운 선율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제도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예술은 더 큰 힘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보를 덮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법안과 정책 보고서들을 펼쳤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세상에 필요한 문장으로 옮겨 적는 일은 저에게 있어 또 다른 방식의 합주이자 가장 치열한 연습이었습니다.


마무리하며 :
선율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다리를 꿈꾸며

이제 저는 악보와 세상의 문장을 동시에 펼쳐 둡니다. 음악이 주는 감동과 그것을 지탱하는 현실 사이, 그 깊은 간극에 튼튼한 다리를 놓으려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들이 그 다리의 첫 번째 벽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이 길이, 마침내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세상으로 이어질 때까지 이 긴 호흡의 연주를 지속해보고자 합니다. 선율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저는 오늘도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문장을 써 내려갑니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