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문화적이다

‘문화 민주화’와 ‘문화 민주주의’ 사이의 온도 차이

by 김나영
베토벤을 모른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무채색인 건 아닙니다

예술의 전당 메인 홀,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흐르는 팽팽한 정적을 기억합니다. 연주자의 손끝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터져 나올 때, 객석의 우리는 숨소리조차 죄악이 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박수를 쳐야 할 타이밍을 놓칠까 봐 프로그램 북을 연신 뒤척이고, 혹시나 내 휴대폰 벨소리가 이 신성한 흐름을 깨뜨릴까 몇 번이고 전원을 확인하죠.


그곳에서 우리는 정성껏 차려진 예술이라는 잔치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지만, 동시에 단 한 마디의 참견도 허락되지 않는 철저한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단 몇 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심리적 장벽은 에베레스트보다 높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완벽한 예술 앞에서 진정으로 문화적이라 느꼈을까요, 아니면 완벽하게 소외되었다 느꼈을까요?


‘문화 민주화’, 예술의 성벽을 낮추려는 선의의 노력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나 기관이 정해준 고급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곧 문화생활의 정점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이른바 문화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의 시대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확산된 이 담론은 “위대한 예술은 인류의 자산이기에, 소수 권력층만 누려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수직적 확산

: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클래식, 오페라, 순수 미술 등을 바닥까지 골고루 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화 향유권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주도하여 박물관 문턱을 낮추고 소외 지역에 공연단을 보내왔습니다.

공급자 중심의 시선

: 여기에는 좋은 문화부족한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등급이 존재합니다. 예술가는 창작하고, 전문가는 비평하며, 시민은 그저 잘 차려진 상을 맛있게 먹는 수혜자가 됩니다.

선의의 한계

: 아무리 티켓 가격을 낮춰도, 그 예술이 내 삶의 맥락과 닿아있지 않다면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남의 잔치일 뿐입니다. 문화 민주화는 객석의 숫자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실제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문화 민주주의’,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예술적 해방

반면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는 시선 자체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예술을 ‘바깥에서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안에서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수평적 공존

: 베토벤의 교향곡만큼이나 동네 노인정에서 울려 퍼지는 민요 가락과 청년들의 서툰 랩 가사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문화적 우열을 가리는 대신, 다양성자기표현에 방점을 찍습니다.

참여와 결정권

: 시민은 단순히 박수 치는 관객에 머물지 않습니다. 무엇을 문화라고 부를지, 우리 동네 예산을 어떤 축제에 쓸지 스스로 결정하는 문화적 주권자가 됩니다. 직접 붓을 들고, 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일상의 정치학

: 예술을 미적인 즐거움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도구로 봅니다. 소외된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문화는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뜨거운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당신의 콧노래는 이미 예술입니다

질문을 던져봅니다. 베토벤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 비문화적인 존재인가요?


문화 민주주의는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답합니다. 문화 민주화가 ‘예술을 향한 통로’를 넓히는 일이었다면, 문화 민주주의는 ‘나 자신이 이미 예술’임을 깨닫게 하는 혁명입니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기대어 흥얼거리는 콧노래,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냉장고 위 메모, 주말마다 모여 나누는 이웃들의 수다는 이미 충분히 예술적입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문화적이며, 단지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 ‘허락’을 받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 ‘공동의 온도계’를 꺼내 듭니다

‘공동의 온도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화려한 무대 위의 조명이 아니라, 우리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서, 낡은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그리고 이름 없는 평범한 이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온기를 측정해 보려 합니다. 고급과 저급이라는 낡은 이분법의 성벽을 허물고 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 바로 ‘함께 살아가고 창작하는 즐거움’을 기록하려 합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몇 도였나요? 거창한 교향곡은 없어도, 당신의 일상이 그 자체로 하나의 빛나는 문화가 되는 그 뜨거운 연대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