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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 세오 Aug 10. 2020

저는 미술 치료사입니다.

제 얘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저는 미술 치료사입니다. 미술 치료사라. 대중 매체를 통해 이 낯선 단어를 들어보신 분들이 분명 있을 텐데요. 여러분은 미술치료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어떤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르시나요?

A4 지에 연필 한 자루를 쥐여주며 제시된 단어를 그리면, 그 그려진 그림만으로 미술 심리치료사가 마음을 훤히 들여다본다고 알고 계시는가요? 아니면 집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집 대문의 손잡이가 없으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람을 그렸을 때 귀를 그리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의미일까요?


미술치료란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단어 그대로 미술과 치료가 융합된 새로운 상담 매체입니다. 미술로 상담 치료를 진행하는 이들을 일컬어 미술 치료사라고 하고요. 저는 그중 한 명인 새내기 미술 치료사입니다. 제가 미술 치료사 앞에 새내기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햇수로나 임상 시간으로나, 사실 저는 숫자로만 보면 숙련된 미술치료사입니다. 하지만 미술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늘 새롭더라고요. 같은 병명을 가진, 같은 나이의, 같은 성별의 사람일지라도 살아온 인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증세를 보이고 다른 치유법이 요구되곤 하니까요.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미술치료사인 저는, 미술 치료라는 틀 안에서 한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사람이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일이 왕왕 발생하죠. 우리 모두에게는 내면의 얼굴이 여러 개 있죠. 페르소나라고도 하는데요. 내가 되고 싶은 나, 남이 보는 나, 인정하기 싫은 나 등등 내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각각의 상황에 맞는 나를 보여주게 되죠. 간혹 자신이 전혀 모르던 나를 발견했을 때 혼돈에 빠져 절망하시는 분들도 아주 많답니다. 자신의 한 페르소나를 마주 보려 하지 않고 타자화시키며 경멸하는 사람도 있고요. 내면의 페르소나를 미술이라는 매체로 표현을 하며 진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길이 미술치료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습니다. 마치 거울과도 같은 역할이죠.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조성모의 가시나무 가사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는 너무나 많은 자아가 있습니다. 가끔은 내면의 자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죠.  안에 누가 살고 있나 말이죠.  다른 자아가 밤사이에 탄생하지는 않았나,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자아가 다시 깨어나 활개를 치지는 않았나, 누군가와만 마주치면 나타나는 나의 다른 모습이 언제  나타나나. 모든 자아가 결국  자신입니다.  자신을 알고 나면, 천방지축 자아, 멜랑콜리한 자아, 어른스러운 자아 등등 가지각색인 자아들을 어떻게 다루어 함부로 날뛰지 않게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컨트롤 타워를 손에    있죠. 그때 비로소 평안한 ,   다운 나로서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있죠. 오직  자신만이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알면 알 수록 더 모르겠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거겠죠. 사랑도 하고, 배신도 하고, 상처도 받고, 극복도 하고, 망각도 하고, 또다시 사랑도 하고요.


유충이 변태 과정을 겪어 화려한 나비가 되듯이, 우리도 언제나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과정을 살아가고 있죠. 미래에만 치중하게 되면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두려움이 커져만 가고요, 과거에만 집착하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후회와 미련이 커지기 마련이죠. 흔히 말해 꼰대가 되는 지름길은 과거에 집중하는 것일 테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몽상가들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수 있겠죠. 지금 현재를 살라고 하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닐 테죠. 과거가 어떻든,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든, 지금 내가 한 발 내딛는 이 순간이 나의 인생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 될 테고, 이 행위가 결과론적으로 나의 미래를 조각하게 되겠죠. 그렇다고 현재 나의 한 발 한 발에 너무 무게를 두고 신중하게 살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식물과 같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양분을 나의 환경으로부터 빨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만 집중을 한다면, 분명 활짝 피는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게 되겠죠.

 

온전히 지금의 나와 내 환경에 집중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가장 쉬워 보이는 일이 사실은 가장 어렵기도 하죠. 가만히 명상하듯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저이기에, 저에게 맞는 수식어는 새내기가 어울릴 수도 있겠죠? 오늘의 나는 어제와는 다르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도 다를 테니까요.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든 하지 않던 나는 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하는 성장은 모두 다르니까요. 미술치료사인 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껍질 한 껍질을 벗으며 건강히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눈에 보이고 쉽게 다룰 수 있는 매체로 이끌어 주는 동반자이기도 하고요.


미술 치료라는 매체는 절대 그려진 그림만으로는 그린이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그려지는 과정, 그리고 그려진 작업에 관한 대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하죠. 사람이 없는 미술치료란 존재할 수가 없죠. 미술치료는 두 사람 혹은 두 존재에 신뢰라는 다리를 서로 간에 잇고, 그 믿음으로 치유라는 길에 함께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죠.


제가 미술치료사로서 어떠한 성장통을 겪고 견뎌냈으며, 오늘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들려드릴까 합니다. 아마 다른 다양한 미술치료사들의 이야기 중 하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여기 이곳에 담백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글로 제 경험을 풀어낼 터이니, '아, 이렇게 미술치료를 하는 미술치료사도 있구나', '이 사람도 이런 매체를 사용하는구나!', '저럴 때는 나는 이런 매체와 이야기를 전달했을 텐데' 등등 여러분들에게 전해질 울림도 함께 공유해 주시면 더욱더 푸르른 이야기의 장이 되겠지요.


이상, 새내기 미술치료사 프라우 세오였습니다.

제 첫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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