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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 세오 Aug 21. 2020

코로나 19, 현대 미술치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전 세계 곳곳 코로나 19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좀처럼 이 그림자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네요. 이미 안고 가야 할 숙명처럼 다가온 것만 같습니다. 가난한 자이건 부자이건, 권력을 가진 자이건 그 권력을 쥐여준 국민이건,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환자이건, 학생이건 선생이건, 사회의 틀 속 한 사람을 나타내던 명사가 코로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죠. 코로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그저 한 인간입니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미술치료사라는 직업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 19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맞은 게 약 3월 말 때쯤이었으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있었고, 거리에 나가면 코로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들 안하무인 하게 변함없는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었죠. 동양인으로서 저는 솔직히 처음으로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따가운 눈총을 받지는 않았지만, 미디어에서 접한 다른 나라의 혹은 다른 도시의 인종차별적인 사건을 읽고 나면, 거리에 나가기가 무서워지더군요. 사실 병원으로 출근하면서도 내심 걱정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민자 가족 이외에 꽤 많은 독일인 가족들이 내원했기에, 혹시나 동양인이라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눅이 들었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팀 회의 때에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하는 팀원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전문 미술치료사로서 내담자와 가족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과에서 일하는 팀원들이라 그런지, 의연하게 감정적이지 않고 팩트만 따져가며 논리적으로 토론을 하는 모습에, 제가 이제껏 읽은 대다수의 미디어 글들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며 다른 시각에서의 관점을 어떻게 논리적인 말로 풀어내는지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4월은 정말 정신없었습니다. 록다운과 동시에 사회적 거리 유지를 정부에서도 권고하며 우리 병원도 약 열흘간 문을 닫았죠. 전화 업무만 하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족과는 통화로라도 안부를 물으며 그 상황에 필요한 일을 지시해 주었죠. 4월 말, 부활절 방학이 끝나고, 사회적 거리 유지는 유지하되 병원 진료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몇 바뀐 절차는 있었죠.


우선 환자가 오면 제일 먼저 손을 씻습니다. 보험 카드를 환자가 직접 카드 읽는 기계에 넣었다가 빼는 과정을 거치죠. 대기실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낍니다. 상담실 안에는 단 두 명만 출입할 수 있고, 책상 위에는 유리로 된 보호벽을 설치했죠. 상담 시 자리에 앉으면 내담자가 동의하는 선 안에 마스크를 빼고 상담을 진행합니다. 미술 재료는 사용 뒤 소독을 하고요.


이 절차는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아직 확진자나 접촉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요. 4월에서 5월 넘어갈 즈음 다른 병원에서는 확진자와 접촉자가 발생해 병원 문을 일시적으로 닫아야 했죠. 지역 내에서는 병원들끼리 허물없이 의견을 주고받고 팀으로 일을 하기에 서로서로 상황을 보고하는 연락은 계속했습니다.




록다운 이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다들 마스크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까지도 어김없이 새로운 내담자들과 가족,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진료 예약을 했죠. 도움의 손길이 유지될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대부분은 잔뜩 긴장한 채로 약속 시각에 나타났습니다. 예전부터 꾸준히 오던 내담자들과 가족 혹은 관계자들은 코로나로 인해 상담 환경이 바뀌었지만, 놀라지 않고 모두 이해심 많게 협조적이죠. 이제는 알아서들 손부터 씻고 대기실에서 자리를 잡아 기다립니다. 가끔 청소년 내담자들은 마스크를 잃어버리고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있죠. 이들은 어김없이 코로나가 무섭지 않으며 자신들은 바이러스에 걸리나 마나 상관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경향이 있죠. 손이라도 씻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꼬마 내담자들 같은 경우에는 절차는 잘 지키지만,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기에 화를 많이 내죠. 특히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을 초대할 수 없다며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립니다. 독일에서 특히 생일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거든요. 조그만 입에서 코로나에 대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내뱉으며, 자신의 솔직한 의견도 곁들여 똑 부러지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사실 그 순간 놀라움에 감탄만 나옵니다. 솔직한 감정 표현과 논리적인 말솜씨는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의 역할이 크지 싶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그림자도 있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점이 정신과에 오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요.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히"라는 단어가 폭력적으로 다가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졌습니다. 이제껏 "당연히" 여겨졌던 사소한 것들도 "당연하지 않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죠. 손을 강박적으로 씻던 이들이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정상 범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던 이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숨통이 트였다고 합니다. 사회적 부적응자로 혹은 학교에서 낯가린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에게 이제야 자유로운 순간이 다가왔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무너져버린 아슬아슬한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이들과 함께 어떻게 중심을 찾아가야 할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 모든 사태로 인해 세상을 더 깬 눈으로 바라보게 된 점은, 극미한 장점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네요.




독일은 이제 여름방학이 끝나갑니다. 주마다 방학 기간이 다르기에, 이미 개강을 한 주도 많죠. 제가 사는 주는 다음 주에 학교가 다시 시작됩니다. 많은 이들이 몇몇 금지 지역 외에 다른 햇빛이 많이 나는 나라로 여행을 갔다 왔죠. 모든 학교는 현재 다시 정상화를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그룹 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 학급을 다시 한 그룹으로 모아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죠. 앞으로 지켜봐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이미 바뀌어버린 일상에 이전의 삶이 어땠는지 벌써 까마득해집니다. 현대 미술치료의 미래도 걱정이 되고요. 한국에서는 많이들 온라인으로 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온라인 세상에 아직은 거부감을 보이는 대다수의 독일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은 토론을 거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온라인 속 모니터 뒤의 세상을 아직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나, 나와 그 사람의 공기 기류를 미묘하게 바꾸며, 목소리의 떨림, 손동작, 바람에 흩날리는 체취 등등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다가와 진단을 내리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단지 전화 통화로, 화상 통화로 모든 것을 잡아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부모 상담 혹은 청소년과의 상담을 전화로만 진행을 많이 해 보았는데 비대면의 답답한 부분이 많았죠. 아이들은 아직 전화 통화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요.


아직 저희는 한 방에 치료사와 한 명의 내담자 혹은 가족이나 관계자, 이렇게 딱 두 명의 사람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절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함께 왔을 때는 따로 시간을 반 반 나누어 상담을 진행하죠. 짧은 시간 내에 새로운 방책이 자리 잡아서 모두 적응도 잘하고 시스템적으로도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그 뒤에는 아쉬움만이 남죠. 의사와 치료사가 한 팀으로 상담을 진행했던 값진 순간의 그리움이요.


많은 치료사분이 온라인 매체 연구에 고군분투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직 저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접촉의 소중함을 너무나 알기에, 어떻게 새로운 변화에 미술치료 본질을 적용해 녹여낼지 매일 고민입니다. 느리지만 연구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현대 미술치료의 미래는, 정말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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