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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 세오 Aug 19. 2020

미술치료사는 혼자 활동하나요?

의사, 간호사, 다른 치료사들과 협업이 중요할까요?


미술치료사는 혼자 활동하나요? 저도 처음에 정말 궁금했습니다. 상상 속 미술치료사는 왠지 홀로 프리랜서같이 센터를 차려 일대일 혹은 그룹 치료를 내담자들과 하고 있었거든요. 혹은 삼삼오오 미술치료사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꾸려 각자 치료를 한 공간에서 진행하던가요. 아니면 임상보다는 책이 잔뜩 쌓인 연구소에서 학문 연구를 하는 미술치료과 교수님 이미지라던가요. 저는 미술치료를 배우기 전에는 항상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경험한 미술치료 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참고로 저는 클리닉 미술치료 전문가입니다. 제가 미술치료사로 일을 한 노인병원, 두 곳의 인지학 종합병원, 현재 소아·청소년 정신과의 미술치료 경험을 통해 미술치료사와 다른 팀원들과의 협업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자, 준비되셨나요?




제가 처음으로 일한 노인병원은 한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시설이었는데요. 주로 치매 환자들이 지내며 보호를 받고 미술치료 및 작업치료를 병행해 심신 관리가 되고 있었죠. 노인병원인지라 주로 요양사들이 환자들의 청결과 건강 관리를 했고요, 미술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협업해 예술 파트와 인지 분야를 나누어 개인 혹은 집단치료를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저는 학부 때 200시간만 채워도 되는 (첫) 임상 실습 시간을, 매일 반년 동안 오전과 오후에 각각 다른 내담자들과 미술 활동, 놀이 활동, 독서 활동 등등을 진행했죠. 안전한 학생 신분으로 일자리를 얻었을 때, 최대한 영리하게 이용해 더욱더 많은 임상 기회를 누리려고 한 것이었죠. 결국은 저에게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오전에 출근해 그날 배정받은 환자들 리스트를 확인하며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생각합니다. 보통 오후 세 시부터 한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는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데요. 오후 커피 타임이 끝나면 오후 미술치료 활동을 진행했죠. 가족분들이 방문할 경우, 가족들과 간단한 면담도 주어졌습니다.


제가 일한 기간이 가을 방학 때쯤부터 새해가 지나 연초까지였는데, 그 덕분에 크리스마스, 새해, 연초의 카니발 행사까지 독일의 정말 중요한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죠. 정말 제가 딱 원하던, 미술치료 외에 독일의 문화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독일의 명절인 크리스마스 같이 큰 행사가 끼어 있으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따뜻한 차와 직접 구운 크리스마스 비스킷을 곁들여 즐기기도 하고, 전나무를 주문해 방 가득 전나무 향을 맡으며 크리스마스트리와 리스를 직접 꾸미며 가족 같은 연말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죠. 연말에는 동네 성가대의 방문으로 훈훈한 크리스마스 노래를 라이브 공연으로 관람도 했습니다. "실베스터"라고 불리는 새해는 말할 것도 없고, 카니발 축제에는 마녀 복장, 삐에로 가발, 해적 모자 등등으로 한껏 꾸미고, 화려하게 변신을 한 유치원 꼬마 악동들의 방문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축제의 장을 열었죠. 지금 그때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해지네요. 노인 환자분들의 함박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네요.


큰 행사 외에도 직원 모두 애정을 가지고 노인 환자분들과 방문한 가족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자기 맡은 바를 이행했던 것 같네요. 크게 전체 회의는 없었지만, 저와 담당 미술치료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환자의 병세 및 미술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고맙게도 제가 많은 질문을 수시로 던지면, 담당 미술치료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자신이 경험한 치매 미술치료, 노인 미술치료, 애도 미술치료 등등에 대해 값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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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인지학 종합병원 같은 경우에는 학사 논문을 쓰기 , 임상 실습 학기 전에 지원했었는데요. 저는 이곳에서 일을   있게  엄청난 행운을 얻었더랬죠. 독일 친구들도  병원만큼은 정말 들어가서 일해보기를 원했었지만, 지레 겁을 먹고 지원을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병원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지학 종합병원이라서 그랬을까요?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는 것을 싫어하는 저는, 선택 안 돼도 연습 삼아 지원서라도 보내보자, 라는 마음을 먹고 큰 기대 없이 지원했었습니다. 지원서를 보낸 며칠 후에 담당 미술치료사에게서 러브콜을 받아 굉장히 급하게 베를린에 살 집을 알아보고 기차표도 끊었더랬죠. 정말 제 인생에 손꼽히는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도 앞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원래 채워야 하는 임상 기간인 400시간을 훌쩍 넘어 약 반 년 동안 매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꽉꽉 채워 귀중한 시간을 보냈더랬죠. 세어보니 약 750시간이나 되겠네요.


종합병원인지라 각 과 특색이 드러나는 다양한 미술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그리고 몇 번의 정신과 미술치료 경험을 했죠. 아무래도 가장 값진 순간은 팀 회의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제 담당 멘토이자 대표 미술치료사와 다른 실습생들과의 교류는 정말 많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팀 회의에는 담당 의사들, 간호사들, 그리고 다양한 치료사들로 회의실이 꽉 찰 정도였는데요. 다른 치료사들은 음악 치료, 마사지 치료, 동작 치료 등등 이었습니다. 회의 중에 저에게 미술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 차례가 될 때 살며시 손을 들어 그 환자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미술치료에서 어떠한 발전을 보였는지 혹은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떨리는 목소리와 부끄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나름대로 열심히 회의에 참석했더랬죠. 회의는 보통 담당 의사들에 의해 진행이 됩니다. 정말 처음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종합병원의 하얀 가운을 입으신 최소 30년 경력은 가진 것 같은 내과, 외과 의사 선생님들이 앉아계셨기에, 너무 긴장했었죠. 그와 동시에 문화적 충격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권위적으로만 느껴지던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는 다른 치료 분야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경청하시고 질문도 하시며, 한낱 임상 실습생 겸 미술치료사에게도 격려해주시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면서 동시에 충격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아,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하, 정말 가능하구나! 하고 말이죠.


특히나 의대 학생들이 병원에 실습을 많이 왔는데, 그분들도 꼭 미술치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더라고요. 다른 분야를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며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수업으로 짜여 있었다는 점이 너무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죠. 저의 멘토였던 미술치료사분은 경력이 꽤 오래된 베테랑 미술치료사였는데, 그분의 배려로 저는 이러한 모든 과정에 참여해 바로 곁에서 살아있는 통합 의학을 경험할 수 있었죠.


*


저는 석사 졸업 직후 일 년의 집중적인 클리닉 미술치료 인턴 과정을 한 인지학 대학병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 시작도 정말 행운의 연속이었답니다. 시간을 잠시 돌려, 학사를 마친 직후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그때 저는 정말 절망을 했습니다. 이제 막 미술치료 학사를 졸업했는데, 이제 막 미술치료가 무엇인지 알 듯 말 듯한 데,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방향을 잡기 위해 저는 큰 결심을 합니다. 이 시기에 한국에 잠시 들어가 한국의 미술치료를 경험해야겠다고 말이죠.


제가 행한 곳이 한국의 차의과학대학교였는데요. 이곳에서 이 주 간의 짧은 인턴 과정을 거쳤더랬죠. 총 다섯 군데의 병원에서 각각 두 번씩 방문해 미술치료 참관을 하게 되었는데요. 꽤 인상 깊었습니다. 너무나 다 좋았던 과정이었는데, 한 가지 정말 아쉬웠던 점은, 미술치료사들은 미술치료사들끼리만 일하는구나 였습니다. 저는 노인병원과 베를린의 인지학 병원에서 한 환자를 담당하는 모든 인력이 팀으로 일을 하는 시스템을 배웠기 때문에 너무나 의아하게 다가왔죠. 각 병원에서 공동으로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나 의사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이 점이 저를 다시 독일로 이끌게 되었던 것 같네요.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때까지 겪은 독일 미술치료, 즉, 내가 경험한 노인병원과 인지학 종합병원의 미술치료 세계가 단지 사막의 신기루였는지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저는 우선은 석사 연구 논문을 위해 교육 쪽에 도전했고, 석사 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아쉽게도 좋은 성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막의 진짜 오아시스가 나타났죠. 클리닉 미술치료를 제대로 배우고 동시에 미술치료사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사실 이 정보는 학사 때부터 미리 알고 있었지만, 외국인 처지에서 비자가 너무나 중요했기에, 저는 사실 오래 일할 직장을 더 원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은 딱 일 년짜리였기 때문이죠. 그래도 큰맘 먹고 행운을 거머쥐기로 했죠. 월급도 나오고, 집도 병원에서 준비해 주기 때문이죠. 참고로 매우 싼 방값으로 개인 아파트를 받는 게 계약의 일부였죠. 베를린 인지학 종합병원과 비슷하게, 설마 해서 보낸 지원서를 보고 담당 미술치료사가 바로 인터뷰 날짜를 이틀 뒤로 잡아줘, 지원서를 보낸 다음 날 기차표를 끊고 다음다음 날 인터뷰를 보러 가게 된 것이죠. 결과는 물론 합격이고요. 이렇게 저의 인지학 종합병원 경험이 또 시작됩니다.


제가 일 년 동안 일하게 된 과는 정신건강의학과와 통원환자 담당 미술치료 두 개의 과였습니다. 일거양득이었죠. 앞에 소개한 베를린의 인지학 종합병원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팀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진행이 되었고, 모든 담당 의사, 간호사, 치료사들이 이번에는 미술 치료실로 와서 회의했죠. 벽에는 환자들의 그림을 날짜 순서대로 걸어두어 그분들도 그림과 흙 작업의 진행 과정을 한눈에 확인하기 쉽게 전시해 두었죠. 담당 의사들은 환자들의 세세한 일생과 병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미술치료 때 나타난 작업의 결과물과 환자의 병명과 한 사람으로서의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회의도 깊게 이루어졌죠.


이 병원에서도 실습하러 온 정신과 학생들과 의대 학생들이 미술치료를 받아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 환자들 틈에 섞여 미술치료 실습을 진행했죠. 저를 제외한 또 다른 네 명의 미술치료 임상 실습 인턴들이 각 과에 배치되어 있었는데요, 저희는 일 년 동안 미술치료사로서 병원에 취직이 되어 있었고, 일하며 틈틈이 수업과 시험도 진행하는 탄탄한 프로그램을 경험했습니다.


이 외에도 의대생들과 정신과 학생들, 그리고 우리 미술치료사 임상 실습생들 다섯이 함께 굉장히 특이한,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값진 수업을 경험할 수도 있었죠. 예를 하나 간단히 들자면, 실제 입원 환자 한 분을 강의실로 모시고 와 그분의 일생과 병을 앓고 난 뒤 변화까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질문 시간을 가진 뒤 환자분을 다시 병실로 돌려보냅니다. 그 뒤 우리는 모두 눈을 감고 각자 떠 오른 이미지상을 공유한 뒤, 그 이미지 간의 공통점과 연관성 등을 찾아내죠. 활발한 토론이 끝난 뒤, 환자의 병명과 한 사람의 일대기의 연결 고리에 관한 이야기도 깊이 있게 나누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떠한 진단을 내려야 좋을지, 어떠한 처방이 적절한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되죠. 정말 모든 수업이 가슴 깊이 와 닿았고, 그중 하나였던 수업의 이 한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병원에 온 환자를 단지 "당뇨에 걸린 60대 노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도 들어보며 삶과 병의 관련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여유와 시간을 저희에게 선물해 준 것과 마찬가지였죠. 흔쾌히 이러한 수업에 참여해 주신 여러 명의 환자분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네요. 이 외에 정말 감동적인 수업도 많았답니다. 제가 경험한 기가 막힌 미술치료 사례도 정말 많고요. 이 내용은 미술치료 사례를 다룰 때 실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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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아·청소년 정신과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팀 회의가 열립니다. 의사, 다른 치료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히 어려운 사례나 진행에 차질이 있는 사례 등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죠. 분기별로 외부에서 강사분을 초빙해 "인터비지온"이라고 하는 살짝 이름을 바꾼 슈퍼비전도 진행하고요. 현재 우리 팀에서 정말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은, 혼자 짐을 짊어지지 않고 함께 그 짐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서로서로 배려와 존중을 하고 있죠. 어려운 사례는 누구에게나 맞닥뜨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전공 분야 관점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냅니다.




자, 정말 압축에 또 압축해 엑기스만 글로 담아두었네요. 적다 보니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떠올라 따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인상 깊은 사례는 고이 모셔두었다가 따로 인텐지브하게 알려드리려고요. 괜찮겠죠?


오늘의 이야기는 '미술치료사는 혼자 일을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저의 상상과는 달리 직접 겪어 본 미술치료의 세계는 정말이지 팀워크가 중요한 분야였습니다. 한 내담자를 담당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한데로 모이는 그런 팀워크요. 물론 개인 센터를 운영하는 프리랜서 개념의 치료사들은 다른 환경에서 일하시기에 다른 조건을 가지고 계시겠죠. 하지만 개인이 센터를 운영하기 이전에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팀워크를 경험하신 분만이 한 단계 더 깊은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는 경험 속에서만 환히 빛을 내니까요.


미술치료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죠. 한 내담자가 미술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이 환자의 몸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최근에 방문한 병원의 의사와 통화하는 것도 저는 미술치료 진단을 내릴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전에 환자와 비밀 유지 동의서에 담당 의사 이름을 써 놓았다면 말이죠. 혹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내원했을 때, 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도 필수죠. 이렇게 한 내담자를 둘러싼 인물들이 단합되어 함께 팀으로 움직여야 미술치료건, 상담 치료건, 다른 치료건 그 치료 효과가 더 있겠지요. 미술치료 한 회기 이외의 시간은 그 네트워크상의 인물들과 함께 보내게 될 테니까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미술치료사의 동료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동이나 청소년일 경우 담임선생님, 학원 선생님, 부모, 최근 방문한 병원의 의사 혹은 입원 환자의 경우 담당 의사와 간호사도 미술치료가 진행되는데 중요한 인물들이 아닐까요? 성인의 경우, 파트너나 담당 의사 혹은 마찬가지로 입원일 때는 담당 의사와 간호사도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배운 미술치료는 모든 진단 과정과 치료 과정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유되고요. 물론 환자의 동의가 있는 선 안에서만이겠죠. 경험에서 우러난 제가 믿는 미술치료의 힘은 그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고군분투할 때 빛을 발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여러분들은 미술치료사와 다른 분야의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이상적이라고 생각할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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