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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오 Jun 03. 2019

고양이, 나

고양이와 나: 지배자와 피지배자

이제 나는 고양이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전의 나는 전생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친한 회사 동료인 N씨가 나를 위해 빌려다 준 고양이에 관한 에세이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타인의 집에서조차 나는 방 곳곳의 문을 열어 두려 하고, 바닥에 놓여 있는 비닐 봉지를 무심코 반가워 해 버린다. 내 고양이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 정도라니, 나 좀 고양이 때문에 바보가 된 것이 아닐까, 하고 고양이에게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7년 전 처음으로 나에게 온 첫 번째 고양이.


고양이를 반려하게 된 지도 올해로 17년이 지났다.


그 시간은 아마도 고양이들에게 가장 변화가 많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다. 예전에는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왜 개가 아니고 고양이죠? 하는 질문에 열심히 답을 찾아야만 했다. 요즘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일이라는 듯한 반응을 본다. 와, 정말 좋겠어요, 어떤 고양이죠? 나만 고양이 없네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인식의 변화만큼이나 고양이를 위한 용품이나 서비스 또한 무한대로 늘어나는 현상을, 나는 지난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한 덕에 꽤나 똑똑이 지켜볼 수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했던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만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많은 생각과 시야와 외계를 경험했다. 그 사이 나의 첫 번째 고양이는 고양이 별로 돌아갔고, 나는 나의 두 번째 고양이와 함께 세 번째 고양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적어도 나는, 고양이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많은 시기들을 무리 없이 보내고, 비교적 안전하고 건강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단지 그들이 내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에.




나의 두 번째 고양이는 11년 전, 세 번째 고양이는 2년 전에 나를 만났다.


그 긴 시간 동안 물론, 나에게서 전혀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고양이에 대한 마음, 고양이와 함께 해야만 하는 시간들, 그리고 그들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는 내 모든 자리들은, 누군가는 지겹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못한 여전히 그대로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흩뜨려 둔 모래알들과, 자고 일어난 이불의 폭 패인 자국, 장난스럽게 깨물지 않을 듯 깨무는 작은 이빨들, 잠에 취해 귀가를 반기지 않는 무심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옆에 와 있는 작은 몸짓들. 그런 그들의 존재와 일부를 나는 아직까지도 퍽이나 좋아 못 견디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한 지난 시기를 돌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고양이들과 함께 해서 정말 다행이었네, 하고. 




나는 고양이들에게서 삶을 배웠다. 아직도 미스터리는 많지만, 어느정도 이제는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생각할 줄도 알게 됐다. 이른바 집사 18년 차의 나는 베테랑 집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향한 곧은 애정과 그들을 교본 삼아 삶을 살아가는 겸허한 자세만큼은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아닐까.


에세이에서는 고양이와 함께 하지 않은 인간의 시기를 B.C(Before Cat)로, 고양이와 함께 한 인간의 시기를 A.C(After Cat)으로 나누었다. 이 얼마나 멋진 분류인가, 하고 나는 감탄했지만, 어쩌면 B.C와 A.C가 그 작가만큼 크게 다르지 않는 나라는 인간은, 고양이의 지배라는 의미에서 D.C(Domination of Cat)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어쩌면 고양이들과 함께 할 17년 후에 올지도 모를, 고양이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게 되어 버렸다. 


언제 도래할지 알 수 없는 그 때에, 나는 나의 고양이들에게 감히 나를 선택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나에게 준 모든 것들을 돌려 주겠다고 해야지. 너희가 나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들을 이번에는 내가 보답하겠다고.


지금의 고양이들에게, 나는 매일같이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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