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미음「명사」 입쌀이나 좁쌀에 물을 충분히 붓고 푹 끓여 체에 걸러 낸 걸쭉한 음식. 흔히 환자나 어린아이들이 먹는다.≒보미(표준국어대사전 중에서)
처음 입원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마지막 날이었다. 겨울 방학숙제를 하지 않아 한바탕 혼난 오후였다. 점심밥을 대충 먹고 밀린 방학 숙제가 끝나가고 있었다. 살짝 배가 고팠고, 이미 숙제를 다했지만 덩달아 혼났던 여동생에게 떡볶이가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그리고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방학숙제하는 게 지겨워졌기 때문이었다. 냉장고를 뒤져 떡볶이 떡과 고추장과 어묵 쪼가리 몇 개도 찾아냈다. 문제는 설탕이었다. 양념통에 설탕이 없었다. 부엌 찬장을 아무리 뒤져도 설탕은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숙제 아직 다 못한 것 들킬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찬장을 뒤지고 뒤지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부엌 창고의 제일 위층의 한 구석에서 하얀 가루를 발견했다. 나는 설탕 추정 물질을 한수저, 두 수저 듬북을 떠서 떡볶이에 뿌렸다. 그리고 유난히 맵고 달콤하지 않은 떡볶이를 먹었다.
엄마는 한참 후에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우리를 보았다. "방학숙제는 다했지?"라고 묻다가 설탕이 집에 없는데 어떻게 떡볶이를 만들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설탕을 찾아 넣었다고 말하며 부엌 창고에서 찾아낸 설탕 추정 물질을 보여 드렸다. 엄마의 눈이 확장되었다. 엄마는 나와 여동생을 핸드백처럼 옆구리에 끼고 응급실로 달렸다. 우리가 떡볶이에 넣어서 맛있게 먹은 것은 설탕이 아니라 그 당시 바퀴벌레 퇴치용으로 유행하였던 '붕산'이었다. 아주 가끔 부엌에 출현하는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엄마는 붕산을 손에 닿지 않는 부엌 창고의 제일 꼭대기 가장 구석에 숨겨 놓았고, 나는 귀신 같이 숨겨져 있던 붕산을 찾아내서 떡볶이에 넣고 맛있게 먹었던 것이었다.
입원을 했다. 나는 음식을 게워냈다. 무섭게 생긴 선생님들이 왔다 갔다 하며, 위세척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자고 했다. 지나가는 의료진들이 나와 내 동생을 쳐다볼 때마다 제네들 떡볶이에 붕산 넣어 먹은 애들 이래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선생님은 하얀 종이 위에 우리가 넣었던 양의 대여섯 배 이상이 되는 많은 양의 흰 가루를 가져와 너희 이만큼을 먹지는 않았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더니 이게 치사량이라고 그 의사는 말했다. 치사량- 먹으면 죽는 양. 내가 볼 때는 우리가 먹은 양은 그 양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지만 '죽는 양'이라는 말에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나는 큰 죄를 진 것 같아 고개만 푹 숙였다. 정말 부모님께 미안했다. 다행히 위세척은 안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고 수액을 맞으면서 증상을 관찰한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엄마는 우리의 옆에서 며칠간을 함께 해주셨다. 다행히 나와 내 동생의 상황은 심각하지 않았다. 다만 복도를 걸을 때마다 다른 환자와 의료진의 '떡볶이' '떡볶이' 하는 놀리는 소리는 들어야 했다.
며칠을 굶은 후 처음 다시 먹게 된 것은 미음이었다. "식사요" 하며 병동으로 보내진 식판에는 옛날 문풍지를 부칠 때 바를 것 같은 흰 풀죽같은 미음이 간장종지 만한 그릇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한입을 떠 입안에 넣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미세한 쌀 냄새가 올라왔고 구역질이 나왔다. 구역질의 원인이 붕산 때문인지, 미음의 낯선 맛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미음이 도대체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 말하자 의료진들은 "그럼 떡볶이 먹을래?"하고 놀렸다. 아무것도 먹기가 싫었지만 놀리는 게 싫어서 미음을 끝까지 떠서 삼켰다. 하루 미음을 먹다가, 죽을 먹었고, 곧 밥을 먹었다. 그리고 퇴원을 했다. 마지막 먹었던 밥은 맛이 있었다. 며칠을 굶어서였는지 아니면 몸이 좋아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쌀알 한알 한 알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학교에 갔고 친구들에게는 몸이 아팠다고만 이야기했다. 떡볶이에 붕산을 넣어 먹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기가 조금 창피했다.
요즘도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자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설탕을 넣을 때마다 설탕통을 유심히 바라보고 확인한다. 그리고 그때 엄마의 마음을 생각한다.
회진을 돌다가, 수술 회복 후 처음 미음을 먹던 환자가 물어왔다. 가뜩이나 구역질이 나는데 미음이 너무 맛이 없어서 더 못 먹겠다고. 환자의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장 종지만 한 스테인 레스 그릇에 담긴 식은 미음에 숟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정말 미음 맛이 없죠. 그래도 조금 지나면 죽 드시고 밥 드실 수 있을 거예요." 환자는 먹어보겠다고 말한다. 미음을 먹고 죽을 먹고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들을 보면 나는 알아간다. 붕산 떡볶이를 먹고 입원한 후 미음이 맛없다고 투덜거리던 어린 나의 투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돌이켜 본다.
많은 환자들은 이야기해준다.
"처음에는 못 먹었는데 먹다 보니 넘어가고 이제는 힘이 난다고."
결국은 이겨내는 그들을 나는 응원한다.